'시발점'이 욕? 청소년에 '탕후루' 물었다면 문해력 논란 생겼을까?
"심심한 사과", "금일 휴업"
라디오 애청자인 나는 며칠째 라디오마다 쏟아내는 청소년의 낮은 문해력 이야기를 듣고 있다. 문해력이 주요 방송 소재가 된 이유는 지난 7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한글날을 앞두고 전국 5848명의 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교총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중3이 수도 뜻 몰라', '6학년이 성명을 모릅니다'"라고 맨 앞에 쓰고, 사례에는 "곰탕을 실제로 곰을 사용해서 만드는 줄로 알고 있어. 우리나라에 곰이 그리 많아요?"라는 질문을 받거나 "사건의 시발점(始發點)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욕하냐고 했다" 등이 쭉 열거되어 있다. 그 외에도 ',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하거나 '사흘'을 4일로 알고 있다는 예도 나왔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을 10명 중 2명꼴로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2021년부터 이런 논란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정말 교총 조사 결과대로 학생들의 문해력은 낮은 것일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2021년에 OECD에서 발간한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기르기(21st-Century Readers: Developing Literacy Skills in a Digital World)'를 보면, 보고서는 한국 청소년들의 문해력 수준은 전반적으로 높지만, 읽기 평가에서 최하위 수준을 보인 분야를 짚었다. 한국 학생들이 지문의 사실과 의견을 구분 못하고, 공짜 휴대폰을 준다는 피싱메일에 답신을 많이 보냈기에 나온 결과다. 디지털 문해력은 '성명'이나 '수도' 같은 단순한 어휘력 부족이나 문장 해석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 판별 능력과 비판적 읽기가 가능한지 평가한다.
일반적인 학업에서의 문해력은 낮지 않다고 한다. OECD의 2022년 학업성취도조사(PISA) 읽기 영역의 전체 순위는 OECD 국가 중 6위나 된다. 즉, 교총이 조사한 것과 같은 몇몇 한자어, 격식어를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유튜브 같은 디지털 공간에서 나온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능력이 청소년만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비청소년들은 디지털 문해력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유튜브의 가짜뉴스에 중독돼있는 나이든 보수층 집단의 문제는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진 바 있다.
문해력은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문해력 논란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된 청소년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한글날을 맞아 교사 집단인 교총에서 비청소년의 입장에서 문해력을 조사했기에 나온 참담한 결과다. 세대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적 교류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주로 온라인이나 또래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사용하는 평상어에 익숙하다. '심심한 사과나 위로' 같은 말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다. 그냥 친구에게 "진짜 미안해"라고 하지,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라는 말을 사용할 일이 있겠는가. 이러한 말들은 회사나 비청소년들이 장례식장에 갈 때 사용한다. 비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러한 장소에 가지 않더라도 독서를 많이 하면 알 수 있는 단어는 맞다. '곰탕'도 학생들이 자주 접하는 음식이 아니다, 만약 '탕후루'를 물어봤다면 이를 모르는 중년이나 노년도 꽤 많지 않겠는가.
그 외에도 '시발점', '금일', '두발' 같은 한자어는 현재의 청소년들은 한자를 의무적으로 배우는 세대가 아니므로 모르기 쉽다. 청소년들은 '금일' 같은 한자어보다 '오늘'이라는 순우리말을 더 자주 쓴다. 그렇다 보니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 한자교육을 해야 하지 않냐는 말도 나온다. 교총은 왜 한글날을 맞이해 순우리말이 아닌 한자어를 주로 예로 들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문해력이 낮다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목적이었을까? 아무튼 한자어도 외래어지만 학생들이 더 많이 사용하는 외래어는 영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조사의 유의미성은 더 떨어진다.
누구의 시선에서 나온 비판과 해법인가
이번 조사는 청소년의 언어 사용 방식과 비청소년의 언어 사용 방식을 대등하게 두고 접근하지 않았다. 교사인 비청소년이 사용하는 언어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이 SNS에서 사용하는 '리트윗'이나 '페친'을 이해 못하는 비청소년도 꽤 많지 않을까. 결국 누구의 언어를 기준으로 했느냐,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봤는가를 드러낸다. 사회 전체의 문해력 향상은 다양한 세대와 정체성을 가진 집단의 교류가 원활할 때 가능하다.
문해력의 하락이나 독서량의 저하는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소통이 잘되어야 의사결정이든 일의 집행이든 오해 없이 제대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해력은 개인 역량 강화만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사회 구성원들과 협력과 소통을 잘하려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디지털 문해력이든 일상생활에서의 문해력이든 간에, 문해력을 높이려면 개개인의 언어 능력을 높이는 것 외에도 집단 간의 교류와 의사소통이 활발해야 한다. 다양한 세대와 정체성을 가진 집단의 교류가 중요하다. 다양한 세대와 집단이 교류할 수 있는 기회나 장소가 많을 때 사회 전반의 문해력이 높아질 수 있다. 개인이 독서를 많이 한다고 사회 전반의 문해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키즈존'이 상징하듯 청소년과 비청소년의 공간은 서로 점점 분리되어 가고 있다. 여전히 "어른들 말하는데 왜 애들이 끼어드냐"는 권위주의가 팽배한데 어떻게 서로의 언어와 문화가 교류되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서로의 언어와 소통 방식을 배울 수 없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자극도 생기지 않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 최근의 문해력 낮은 청소년이라는 비아냥이 우리 사회 전체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언론이나 방송의 보도행태다. 아무리 교총의 보도자료를 뿌렸다고 해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보도했다. 물론 많이 확산된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청소년에 대한 비하'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청소년들은 동등한 동료시민으로 바라보기보다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후퇴되고 있는 학생 인권과도 맞닿아 있다. 충남학생 인권조례 폐지나 서울학생 인권조례 폐지 시도 등에서 나타나듯이, 과거보다 학생들을 인권의 주체로 여기기보다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청소년인권 후퇴 경향이 청소년 비하성 보도를 확산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청소년 비하가 비아냥을 넘어 학생 인권 침해로 이어질 것 같아 우려스런 상황이다. 교총은 보도자료에서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 '스마트폰, 게임 등 디지털 매체 과사용'(36.5%), 독서 부족(29.2%), 어휘력 부족(17.1%)이 응답자가 많았고, 문해력 개선 방안으로는 독서 활동 강화(32.4%), 어휘교육 강화(22.6%), 디지털 매체 활용 습관 개선(20.2%)이 응답자가 많았다고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교총은 응답 결과에 발표에서 한발 더 나아가 "디지털기기 과의존‧과사용 문제를 해소하는 법‧제도 마련"을 보도자료에 넣었다.
이는 지난 8월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과 연결된다. 16세 미만의 청소년일 경우 청소년의 SNS 과몰입을 예방하기 위해 SNS 일별 이용 한도를 정하고, 중독을 유도하는 알고리즘 허용 여부에 대해 반드시 친권자 등의 확인을 받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된 법안이다. 법안을 발의하면서 조정훈 의원은 공공연하게 국가인권위원회가 휴대폰의 일괄 수거는 인권침해라고 권고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덕수 총리도 "인권위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생각과 아직 SNS 중독이 병리적 현상으로 확립되지 않았다며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두 가지의 접점을 찾도록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청소년 SNS 통제안이 지속적으로 논의됐다. SNS 중독은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님에도 청소년들만을 제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차별적이고, 청소년들은 헌법적 권리인 통신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지난 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초중고 학생들의 동의 없는 휴대폰 일괄 수거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기각한 것은 정부와 여당의 이러한 논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인권위 결정문을 봐야 알겠지만, 점점 초점이 학생들의 휴대폰 등 전자기기 사용제한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SNS 중독은 10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20대는 더 많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제공하는 한국미디어패널 조사보고서 '세대별 SNS 이용 현황'에 따르면 밀레니얼세대(만 25~38세)의 83.5%가, Z세대(만 9~24세)의 72.4%가 SNS를 사용했다.
현대사회에서 휴대전화는 단지 통신 기기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개인 간의 상호작용을 활성화시키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도구다. 단지 10대라는 이유로 통신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는 사고는 청소년이 사회적경제적 발언력이 적은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인권의 주체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의 휴대폰 일괄 수거한다는 것은 권위주의적 통제다. 지난 10년간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했듯이, 학생의 휴대폰 일괄 수거는 헌법 18조의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며, 유엔아동권리협약 16조에 명시된 어떠한 아동도 사생활, 가족, 가정 또는 통신에 대해 자의적이거나 위법적인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통신에 대한 청소년들의 권리를 '문해력 향상'을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 아니 정말 그렇게 한다고 문해력이 향상될까. 2021년 OECD에서 짚은 디지털 문해력의 기본인 비판적 능력이다. 청소년 차별을 내면화하는 교육에서 비판적 능력이 향상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국내외 인권 기준을 근거로 학생들의 휴대폰 일괄 수거는 사생활과 통신의 권리 침해라고 주장해도, 통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교육제도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이 향상되기 어렵다. 권력이 있는 교육 관료들과 기득권 비청소년의 의견만이 관철되는 현실에서 비판적 문해력이나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일은 오히려 불필요한 일도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문해력 운운하며 청소년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독서를 안 하고 문해력이 낮은 사람은 비청소년이 더 높다는 결과를 되짚어보길 바란다. 학생의 독서량은 비청소년의 10배나 된다. 각종 방송에서 쏟아지는 청소년 문해력 사례에 담긴 청소년 비하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비판적 읽기가 부족한 우리 사회 문해력의 한계가 아니겠는가!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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