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욕설한 것인가?" 훅 들어온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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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손흥민이 욕설은 한 것일까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그가 내민 핸드폰에는 약 50여분 전 찍힌 손흥민의 모습이 있었다. 교체 아웃 직후 아쉬워하며 머리를 감싸쥔 채 뭐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필자의 머리 속에서 조금씩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시작이구나. 이번에는 '태도(attitude)' 인가.'

사진캡쳐=스카이스포츠SNS

시간을 잠시 돌린다.

3일 오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토트넘과 애스턴빌라의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경기. 손흥민은 부상을 털고 돌아왔다. 3경기를 뛰지 못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는 후반 들어 도움을 기록했다. 사실 전반은 다소 아쉬웠다. 상대팀 오른쪽 풀백 매튜 캐시는 기를 쓰고 손흥민을 막았다. 손흥민은 무리하지 않았다. 상대가 수비를 갖추면 볼을 돌리면서 기회를 노렸다.

후반 들어 손흥민은 공격력을 끌어올렸다. 후반 4분 캐시를 앞에 놓고 헛다리 드리블로 흔들었다. 틈이 생기자 왼발 크로스를 올렸다. 반대편에서 달려드는 존슨 앞에 정확하게 배달됐다. 존슨은 골로 화답했다. 이어서도 손흥민은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 몸은 가벼워보였다.
그때였다. 후반 11분 선수 교체 사인이 들어갔다. 대기심이 들어올린 교체판에는 '7'이 선명했다.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을 빼기로 했다. 손흥민은 벤치를 바라본 채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교체가 맞냐는 의문이었다.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교체아웃됐다. 팬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격려했다. 그래도 손흥민의 아쉬움은 풀리지 않았다. 벤치에 들어간 후 손흥민은 격정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는 중계 방송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기가 끝났다. 토트넘은 4대1 역전승을 거뒀다. 손흥민의 동선을 눈으로 따라갔다. 벤치에 있던 손흥민은 자리에서 나와 피치 위로 걸어갔다. 토트넘과 애스턴빌라 모든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서로를 격려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는 듯 했다.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에게 다가갔다. 손흥민과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서로 포옹하며 등을 토닥였다. 여느때와 같았다. 큰 문제는 안되는 듯 보였다.

그 사이 일부 영국 매체들은 불을 키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영국 기자들은 자신들의 소셜 미디어 상에 손흥민의 행동을 이슈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매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흥민이 화내는 듯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며 논란을 유도했다.

기자회견장.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나왔다. 경기에 대한 평가 그리고 빌라전 승리에 대한 의미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그리고 손흥민의 교체 이유, 손흥민의 격앙된 반응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질문의 의도는 뻔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이를 가지고 논란을 키울 셈이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잘 대처했다.

"부상에서 막 돌아왔기 때문에 다 뛰게 할 필요는 없었다. 지난 웨스트햄전에서도 손흥민은 60분을 뛴 후 피로감을 느꼈다. 이번에는 55~60분 정도 뛰게 하려고 했다."

"(격앙된 리액션에 대해)평소의 쏘니와 다른 점을 못 느꼈다. 몸상태가 괜찮은데 교체되는 것을 좋아할 선수는 없을 것이다. 이걸 가지고 손흥민과 논의할 필요는 없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바로 믹스트존으로 향했다. 그리고 영국 기자들이 필자를 포함한 한국 취재진에게 달려왔다. 그 영상을 보여주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설명해달라고 한 것이다.

사진출처=만돌tv

정신을 차렸다. 신중하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판단을 해야 했다. 영국 매체들과 기자들이 보여준 SNS 상의 행동들. 기자회견장에서 뭔가 '깔만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늬앙스가 다분한 질문들. 이를 봤을 때 섣부른 대답은 논란을 키울 수 있었다.

팩트에 집중하기로 했다. 화면만 봤을 때 손흥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필자는 독순술(讀脣術, lip reading)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영국 기자들은 집요했다. 그래도 뭐라고 하는 지 느낌도 없느냐고 물었다.

다시 한 번 손흥민의 영상을 봤다. 그리고는 "한국말로 '왜'라고 하는 것 같다. why가 한국말로는 '왜'이다. 내가 말하는 모양을 봐라. 'why'나 '왜'나 비슷하지 않느냐"고 했다. "욕설은 하지 않았나"고 물었다. 정말 집요한 모습이었다. 필자는 "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정확하게 욕설을 하는 듯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본 그대로 이야기했다. 결국 그 기자들은 자신의 SNS에 '한국 기자는 손흥민이 '왜 나를 교체했는가'라고 말하는 듯 하다고 답변했다'고 적었다.

손흥민의 입모양에서 욕설을 했다는 증거나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설령 욕설에 가까운 말(가령 에이씨나 아이씨)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이야기해 줄 필요는 없다. 분명 필자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면 영국 매체들은 손흥민을 비난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했을 것이다. 주장이 되어서 자신의 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욕설을 하면서 팀분위기를 흐려놓았다고, 그리고 이는 올바른 주장의 태도가 아니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손흥민이 주장이 된 후 조금의 꼬투리라도 나오면 삐딱하게 보는 매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 국적의 기자로서 손흥민은 객관적으로 취재해야 할 대상이다. 동시에 보호해야할 대한민국의 보물이기도 하다. 굳이 논란 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다. 아쉬우면 영국 기자들이, 영국 매체들이 한국어를 배우면 된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전철로 30여분 거리에는 런던대학교(University of London) 동양아프리카학 스쿨(SOAS :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이 있다. 그곳에는 한국학과가 유명하다. 한국어도 잘 가르쳐준다. 거기서 걸어서 20분 거리에는 주영한국문화원도 있다. 세종학당을 운영중이다.

P.S. 이 날 믹스트존에서 손흥민의 인터뷰는 없었다. 필자를 포함한 한국 취재진이 감독 기자회견을 듣는 중 빨리 퇴근했다. 평소보다 빠른 퇴근이었다. 이 날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는 페이커를 포함한 SK텔레콤 T1 선수들이 손흥민의 초대를 받고 찾아왔다. 이들은 전날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린 롤드컵에서 우승했다. 손흥민은 이들의 팬이다. 경기 후 이들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빨리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괜히 인터뷰를 했다면 영국 언론들이 이 상황을 물을 것이고 더욱 논란을 크게 키웠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