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행정에 ‘님비’현상까지…소외된 이웃 품던 ‘밥퍼’ 어디로?

김지은 기자 2024. 9. 2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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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
무료급식 봉사 ‘밥퍼’의 위기
지난달 26일 밤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 뒤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보인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36년 전 서울 청량리에서 노숙자에 식사 대접…36년 새 1400만 그릇 나눔 공동체
초고층 주상복합 등 주거환경 ‘신세계’ 급변…치안·집값 구실로 이전 민원 봇물
서울시·동대문구 건축물 등록 태만…돌연 ‘무허가 건물 사용 중지’에 앞길 막막

칼바람이 볼을 스치던 1988년 초겨울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할아버지, 진지 드셨어요?” 찬 바닥에 온종일 웅크려 있던 함경도 출신 노인을 외면하지 못한 신학도는 노인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대접했다. 다음날엔 노인의 친구들 것까지 다섯 그릇 값을 치렀다. 해가 바뀌고 전도사가 된 그는 아예 버너와 코펠을 들고 다니며 역 광장에서, 청량리 야채시장 쓰레기 더미에서 굶주린 이들을 위해 물을 끓여 컵라면을 나눴다. 그때도 ‘거지들을 몰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인쇄소 창고 한편에 세운 교회 간판은 바닥이 제자리인 듯 걸핏하면 내동댕이쳐졌고, ‘거지 소굴’을 운영하는 청년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는 인근 상인들의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 청년은 이제 예순여섯이 돼 희끗한 머리를 쓰고 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밥을 1400만 그릇 넘게 나누는 동안 ‘밥퍼 최일도 목사’는 유명 인사가 됐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손에는 따뜻한 밥, 국, 반찬이 담긴 식판이 쥐여졌다. 역대 대통령, 영부인, 시장, 국회의원들은 ‘인증 사진’을 찍으려고 문턱이 닳게 다녀갔다.

하루 2끼 600인분의 밥

지난달 26일 다일공동체 이사장인 최일도 목사(왼쪽)가 홀몸노인과 노숙인들을 위해 점심 한끼를 제공하는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외국인 자원봉사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기록적인 열대야가 계속되던 지난달 27일 아침.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동 553, 554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 건물 안, 이미 50여명의 노인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7시가 되니 식당 안쪽 벽을 따라 ㄷ자로 줄이 만들어진다. 7시3분, 배식이 시작됐다. 메뉴는 야채죽, 잡곡밥, 김치, 삶은 달걀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밥퍼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이아무개(78) 할아버지는 지하철로만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금천구 독산동에서 왔다. 그는 경기 동두천에서 오는 일흔일곱살 할아버지, 충남 천안에서 오는 아흔살 어르신 이야기를 하며 “여기가 그냥 밥 얻어먹는 데가 아니에요. (누가) 안 오면 왜 안 오나 서로 물어”라고 말했다.

밥퍼의 배식은 하루 두번 이뤄진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인 점심 나눔은 서른 해를 훌쩍 넘었지만 아침 나눔은 지난해 2월 시작됐다. 하루 500~600인분의 식사가 준비된다. 혼자 식사 중인 신아무개(77) 할머니는 밥퍼 뒤쪽 용신동에서 40년을 살았다. “혼자 사는데 3~4년 전 척추를 다쳤어요. 밥해 먹기 힘들어서 오기 시작했네요.” 9년째 밥퍼 ‘단골’인 아흔넷 서아무개 할머니도 동네 주민이다. 손에 쥔 커다란 빈 캔 봉지를 내보이며 “내가 용돈벌이로 캔을 주워서 청량리 쪽에 파는데 (밥퍼에 오는) 사람들이 그걸 알아서 이렇게 주워다 준 거야”라며 환하게 웃는다.

7시45분, 배식이 끝을 보였다. 밥퍼 마당 입구 쪽에 앉아 담배를 태우던 몇몇은 부슬비에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다들 점심때 또 온다고 했다. 밥퍼는 여전히 이웃들에게 따뜻한 끼니를 나누며 매일 아침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알고 성원했던 곳, 허기진 이들에게 36년간 따뜻한 밥을 나눠준 공동체가 지금 ‘범법자’로 몰려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해 밥퍼 뒤편에 들어선 초고층 주상복합단지가 있다. 청량리역으로 가는 굴다리 너머에 세워진 40~65층짜리 단지에는 2800가구가 입주했다. 청량리에 펼쳐진 이 ‘신세계’는 밥퍼를 둘러싼 분쟁의 큰 축이다.

자영업 봉사자에게 “장사 다 하셨네요”

지난 5월8일 ‘밥퍼’에서 열린 어버이날 효도 잔치에서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밥퍼는 불법 단체입니다”, “신원불명의 사람들(을) 끌어와서 동네를 우범지대로 만드는 거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노숙자가 없어지지를 않네요. 정말 밥퍼 때문입니다 ㅠㅠ” 지난 7월 밥퍼 뒤편에 새로 이사 온 이웃 900여명이 가입된 단톡방에 올라온 내용 중 일부다. 말뿐이 아니다. 올봄 밥퍼에 봉사를 간 개인사업자 박아무개씨는 입주자 대표자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불매운동 대상이 됐다. 밥퍼 봉사를 했다는 이유로 업체 상호가 공개되고 “저분이 맞다면 뭐 장사는 다 하신 거네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박씨는 “밥퍼 때문에 집값이 떨어진다고…”라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한달에 한번 밥퍼에 봉사활동을 가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박씨 같지는 않다. 조직적이고 강도 높게 제기되는 민원에 밥퍼와 연관되는 것조차 꺼리는 이들이 생겨났다. 밥퍼 쪽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유독 봉사 취소 연락이 많았다고 했다. 글로벌 물류회사, 속옷 제조사, 보험회사, 사무기기 제조업체뿐 아니라 서울시 산하 공기업, 외교부 산하 기관 교육생들도 갑자기 단체 봉사를 취소했다. 일부는 밥퍼 쪽에 ‘봉사 내용을 알린 뒤 악플(악성댓글)이 심해서 취소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미 봉사를 다녀간 뒤 악플에 시달리자 온라인에 게시된 자신들의 봉사 내역을 지워달라고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국가보훈부도 지난해 11월 밥퍼와 공동으로 국가유공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로 한 사업을 돌연 취소했다. 국가유공자들이 아침 일찍 밥퍼에 도착해 박민식 장관을 기다린 날이었다. 행사 전날 예고 보도자료를 돌린 보훈부는 당일 새벽 행사가 “순연됐다”고 언론에 공지했다. 행사에 앞서 보훈부 앞에서는 일부 민원인들의 시위가 있었다.

동대문구 집계로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구청에 접수된 밥퍼 관련 민원은 7158건이다. 민원은 두가지 흐름으로 접수된다는 게 구청 쪽 설명이다.

하나는 2022년 4월 밥퍼 인근 신답초등학교 하굣길에 50대 남성이 초등학생 2명을 이유 없이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급증한 밥퍼 주위의 안전성 우려다. 가해자가 밥퍼를 이용해왔는지는 동대문구에서도 파악하지 못했지만 화살은 밥퍼를 향했다. 사건 뒤 밥퍼와 한 건물을 쓰는 해병전우회가 등하교 시간 순찰활동을 자처했고, 구청에서도 안심보안관제를 도입했다. 밥퍼 인근 파출소에서 지난달 28일 만난 한 경찰관은 “(밥퍼 인근에 특별한) 노숙자, 안전 문제는 없다. 예전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원의 또 다른 흐름은 “신규 아파트가 들어온 뒤 제기된 단체 민원”이라고 동대문구는 밝혔다. 이런 민원은 ‘같은 주상복합 안에서도 밥퍼가 보이는 쪽은 1억원이 떨어진다’는 식의 소문과도 맞닿아 있다. 밥퍼 뒤 초고층 주상복합 쪽 부동산 등 6곳의 부동산을 취재한 결과,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입소문이 그렇게 난 거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게 큰 영향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은 같았다. 3곳에서는 ‘청량리역 노숙인들로부터 잠재적인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밥퍼를 옮겼으면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갈등의 바탕에는 전형적인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지역이기주의) 현상이 있다. 하지만 밥퍼의 갈등 상대는 민원인들만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이웃 사랑과 미담의 표본처럼 여겨져온 밥퍼를 둘러싼 논란에는 뒤죽박죽 행정이 불러온 ‘불법’ 증축 논란까지 얽혀 있다.

증축과 신축 사이 길 잃은 유령 건물

2006년 12월25일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오른쪽부터), 오세훈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밥퍼’에서 무료 배식 활동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현재 밥퍼는 본건물과 양쪽에 ‘불법’ 증축된 날개 건물에 둥지를 틀고 있다. 본건물 왼쪽은 식자재 창고 역할을 한다. 오른쪽 날개 1층은 본건물과 이어져 배식과 식사가 이뤄지는 식당이고, 2층에는 동대문구 해병전우회 사무실이 있다.

밥퍼가 쓰는 본건물은 2010년 서울시가 서울시 땅인 답십리동 553, 554번지에 예산 6억원을 들여 지어줬다. 2009년 서울시가 답십리 인근 도로 구조 개선 공사를 하면서 밥퍼가 사용하던 가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지어준 것이다. 철거된 가건물도 앞서 2002년 서울시에서 1억3천만원을 지원받은 동대문구가 지었다.

문제는 서울시가 밥퍼 본건물을 새로 지을 때 동대문구와 필요한 행정 처리를 말끔하게 하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아기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듯 건물도 세워지면 법적인 절차에 따라 등록을 해야 한다. 서울시는 본건물 완공 2년 만에 동대문구에 건물을 건축물대장에 올려달라고 요청하지만 실패한다.

이듬해에는 공용건축물대장에 건물 등재를 요청했다. 역시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밥퍼 건축물이 들어선 부지가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되지 않아 그 땅에는 가건물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건축법에는 ‘도시계획시설 또는 도시계획시설 예정지에 가설건축물을 건축하는 경우’ 허가(이 경우 동대문구청장이 허가권자)를 받도록 돼 있다. 도시계획시설이란 녹지·학교·도로·공원 등 도시 생활이나 기능의 유지에 필요한 기반시설 중 법에 따라 도시관리계획으로 정해진 시설을 뜻한다. 그런데 밥퍼 건물이 세워진 땅은 도시계획시설이나 예정지가 아니다. 따라서 도시계획시설이나 예정지에 대한 허가를 규율한 법조항을 근거로 밥퍼 건물의 불법성을 따질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게다가 밥퍼가 쓰던 옛 가건물도 같은 부지에 있었는데, 당시에는 버젓이 가설건축물대장에 올라 있었다.

동대문구의 불승인 통보에는 서울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2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에 나온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기존에 적법하게 등재된 가설건축물이 위치 이전만 된 상태로 된 부분이 도시계획상 등재하기 어렵다는 동대문구청의 입장을 사실은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시유지상에 예전부터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가설건축물이라서 별도의 조처 없이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한겨레와 만난 서울시 관계자는 “동대문에서 불승인을 한 이후 (구청 쪽으로부터) 추가적으로 시정 요구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필형 동대문구청장(민선 8기)은 지난달 30일 한겨레와 만나 “그때(2002년) 시대 상황은 정말 밥 못 먹는 사람들이 많았고 법보다는 현실이 가까웠다”고 말했다. 또 “그때는 지금과 같은 엄격한 법치”가 시행되지 않았다며 “내가 볼 때 밥퍼는 시행 당시부터 불법으로 계속 앉아 있었다”고 했다. 2002년 동대문구가 해당 부지에 가설건축물을 만든 것도 건축법에 어긋나지만, 시대적 상황이 그 ‘불법’을 용인했다는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 논리에 따르면 2002년 ‘불법’의 주체는 동대문구, 2010년 ‘불법’의 주체는 서울시인 셈이다. 서울시와 동대문구가 밥퍼 건물의 등록 문제를 매듭짓지 않으면서 2013년 서울시가 ‘행정청사’로 분류해 중점관리 재산으로 보고한 밥퍼 본건물은 지금껏 무허가, 미등록, 미등재 ‘유령 건물’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형로펌 무료변론 “내용-형식 불일치”

지금 핵심 문제로 떠오른 밥퍼 건물 증축 공사는 2021년에 시작됐다. 본건물의 노후화, 무료급식 공간의 협소함, 기부받은 식재료 보관 창고의 부족함을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7월 밥퍼는 동대문구로부터 공사중지 명령을 받았다. 그해 12월에는 서울시가 최 목사를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건축법 위반 혐의로 동대문경찰서에 고발했다. 건축 허가를 받지 않고 서울시 공유재산에 무단 증축을 했다는 이유였다.

서울시가 사회적 약자들의 버팀목 구실을 해온 밥퍼를 고발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발 한달 만에 최 목사를 만나고 사건을 봉합했다. 면담 당일인 2022년 1월21일 서울시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최일도 목사는 밥퍼 부지 건물 증축에 대하여 합법적인 절차 내에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부채납(소유권을 국가 등에 무상으로 넘기는 것) 후 사용하는 방식을 협의”했다. 밥퍼는 기부채납 신청서를 냈고, 서울시는 공유재산심의위원회를 거쳐 토지사용허가 통보를 했다. 그해 6월30일엔 동대문구가 건축허가를 내줬다.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았다.

문제가 재발한 것은 2022년 7월1일 동대문구가 새 구청장을 맞으면서다. 이 구청장은 후보 때부터 ‘밥퍼 주민 민원 해소’를 공약했다. 밥퍼 이전을 포함해 ‘찾아가는 도시락’ 서비스도 제안했다. 동대문구는 그해 10월 첫 위반건축물 시정명령을 필두로 시설물 사용중지 명령, 2차 시정명령에도 반응이 없자 12월에는 2억83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밥퍼가 받은 건축허가는 기존 건물의 ‘철거 후 신축’이라고 명시돼 있어, 밥퍼가 진행한 ‘증축’은 ‘불법’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서 두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하나는 밥퍼는 왜 증축을 진행하는 와중에 신축건물 건축허가를 구했냐이고, 다른 하나는 밥퍼는 왜 여러 행정조치들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했는지다.

첫번째 의문의 실마리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밥퍼 본건물이 애초 무허가, 미등재 건물이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시는 무허가 증축을 이유로 밥퍼를 고발했다가 여론의 지탄을 받자 2022년 초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고발을 취하했는데, 본건물의 법적 지위가 증축 건물 기부채납에 문제가 된다는 점이 드러났다. “실제 현장에서는 기존 건물이 있었기 때문에 증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법적으로는 기존 건물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건물”이어서 “공유재산심의 과정에서도 신축으로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정수용 당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올해 5월2일 법정에서 진술했다. 밥퍼의 ‘증축’이 하루아침에 ‘신축’으로 둔갑하기 시작한 이유다. 정 실장은 “저와 (밥퍼를 운영하는) 다일재단 측이 협의한 것은 기존 건물을 건축허가 기준에 맞게 수선할 데 있으면 수선하되 사실상 증축 개념으로 서로 그 부분은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밥퍼의 토지 무상 사용을 허가한 서울시 공유재산심의위원회의 심의자료도 신축으로 표기됐지만 제출된 도면은 증축이 분명했다.

‘불법’의 굴레와 맞서는 밥퍼의 사정이 알려지자 3대 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태평양이 무료변론에 나섰다. 변론을 이끄는 유욱 변호사는 “내용과 형식의 전형적인 미스매치”라고 지적했다.

공익보다 민원 앞세운 민선구청장

밥퍼가 왜 증축을 강행했는지 의문은 당시 동대문구청장(건축허가권자) 유덕열씨의 언행을 보면 풀린다. 유씨는 민선 2기(1998년 7월~2002년 6월)와 5, 6, 7기(2010년 7월~2022년 6월) 네차례 동대문구청장에 당선돼 16년 동안 일했다. 밥퍼와는 1995년 시의원 당선 때부터 연을 맺은 오랜 후원자다. 그는 이번 증축을 지속적으로 독려했다. 유씨는 밥퍼가 동대문구청으로부터 공사중지 명령을 받았을 때 여러차례 최 목사에게 “(민원 등을 고려해) 빨리 증축하는 게 좋겠다”, “서울시가 그동안 건물을 다 지었고 (중략) 증축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올해 2월 법정에 나와 확인했다.

이에 더해 유씨는 밥퍼가 증축을 위해 넘어야 했던 다른 ‘산’도 해결해줬다. 밥퍼 본건물 오른쪽에 있던 동대문구 해병전우회 컨테이너 4개 동을 치우도록 직접 설득한 것이다. 건축허가권자가 발 벗고 나서 밥퍼의 증축을 도왔다. 유 변호사는 “땅 주인도 서울시, 건물주도 서울시인데 아무런 문제 없이 계속 사용하던 건물을 증축해 기부채납하기로 하고, 건축허가권자인 구청장이 계속 (공사를) 독려한다면 누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겠나. 밥퍼는 (이들을) 믿고 공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동대문구청장은 입장이 다르다. 자신이 취임하기 전 밥퍼와 서울시, 전임 구청장 간에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설사 어떤 ‘암묵적 동의’ 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해도 “법을 그렇게 하나? 암묵적으로 해 그 법의 실행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그는 “이제는 건축허가를 아마 못 내줄 거다. 주민들 반발이 세서…”라고 덧붙였다.

밥퍼는 지난해 1월 서울행정법원에 동대문구청장을 상대로 동대문구가 내린 시정명령 처분 및 이행강제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내 진행 중이다. 다음 공판기일은 10월31일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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