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최고 미남배우였는데.. 1급 범죄자의 딸과 결혼해 인생 꼬여버린 연예인

1980년대 미남 배우, 그리고 장영자의 사위로 불린 남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얼굴이 있다.

1983년 MBC 공채 탤런트 16기로 데뷔해 주말연속극 ‘아버지와 아들’, ‘첫사랑’ 등에서 활약하며 여심을 사로잡았던 김주승.

말끔한 외모와 섬세한 연기로 단숨에 청춘 스타 반열에 올랐다.

드라마 ‘순심이’, ‘달빛 가족’, ‘야망의 세월’까지, TV 속 그의 모습은 언제나 똑 떨어진 셔츠 깃처럼 단정하고 반듯했다.

스크린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캠퍼스 연애특강', '서울 무지개'에 출연하며, 전영록·하희라·이상아 등 당대의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80년대 후반, ‘멜로 연기의 최강자’라는 말이 결코 과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잘나가던 김주승은 1990년, 뜻밖의 뉴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바로 ‘5공 비리의 큰손’으로 불리며 7000억 사기 혐의로 투옥중인 장영자의 맏딸과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장영자의 사위가 된 배우

두 사람의 인연은 소개팅에서 시작됐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장영자의 딸 김신아는 여름 방학을 맞아 귀국했고, 공통 지인을 통해 김주승을 처음 만났다.

교제 초반, 김신아는 자신이 장영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 순간 김주승은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어머니의 일로 딸까지 불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세상의 시선을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김주승에게 큰 그림자를 드리웠다. 장영자라는 이름이 그를 따라다녔고, 이후로도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결혼 직후에도 드라마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지만, 1994년 사업 부도와 함께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배우로서의 삶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김주승은 42억 원대의 부도를 냈고, 이 사건엔 장영자도 연루되어 있었다.

병마와 고독, 그리고 조용했던 마지막 길

1996년, 그는 다시 돌아왔다. ‘형제의 강’을 시작으로 드라마에 복귀하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동시에 드라마 제작에도 나서 ‘그녀가 돌아왔다’, ‘나도야 간다’ 등을 선보이며 연기자이자 제작자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

그러나 몸은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췌장암과 신장암이 연이어 찾아왔고, 건강은 빠르게 무너졌다.

2007년 초, 17년간 함께한 아내와의 이혼 소식이 전해졌고, 같은 해 8월, 김주승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서울 근교의 사찰에서 진행된 장례식은 너무나 조용했다. 조문객도, 화환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 가족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언으로 ‘조용히 가고 싶다’는 뜻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에게는 엄격했고, 남에게는 따뜻했다”

생전 그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감당하고, 책임지려 했던 성격. 그래서 더 외로웠고, 더 아팠을지 모른다.

누구보다 빛났지만, 누구보다 쓸쓸하게 퇴장한 배우 김주승.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하얀 셔츠에 단정한 머리를 한 채 웃고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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