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el터뷰!) 영화 '침범'의 곽선영 배우를 만나다
평범한 삶과 딸을 지켜야만 하는 엄마 ‘영은’을 연기한 곽선영을 지난 3월 11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작중 치료가 시급한 사람은 소현이 아닌 영은이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힘들었을 수도 있고, 엄마가 된다는 부담은 출산 후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내가 괴물을 낳은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진실이 되는 것만은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곽선영은 상냥한 카리스마를 품고 있었다. 실제로도 10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 모멘트부터 20년 차 배우의 내공까지, 첫 영화 데뷔작을 맞은 소감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은 곽선영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글이다.
20년 년차 첫 스크린 데뷔작

-<침범>은 20년 차 배우에게 첫 스크린 도전작이다. 그동안 영화 제안은 없었던 건가.
“감독님이 단막극 <보통의 재화>를 보고 저에게서 영은을 떠올렸다고 하셨는데 밝고 씩씩한 모습 뒤로 서늘함을 발견했다고 하시더라. 진짜 운이 좋은 것 같고 감독님들이 제 은인이다. 10여 년 전 공연할 때 인터뷰를 찾아보니 ‘10년 뒤에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더라. (웃음) 무의식적인 바람이 이루어진 것 같아 신기하다”
-기자간담회에서 용산으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극장 곳곳에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는 모습이 감개무량하다고도 했다. 부모님이 영화 보고 울지 지켜보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웃음)
“아버지가 우셨다. 첫 영화를 찍었다는 감동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하셨다고 하더라. 어찌 되었든 일단 울리는 데는 성공했다. (웃음) 내일(개봉일) 영화를 또 예매했다고 하시더라”
-매체에서 밝고 경쾌한 모습, 강렬하고 강인한 역할을 선보여 단단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의외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칭찬이 큰 것 같다. <침범>에 출연한 결정적 계기가 있나.
“일단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 인물의 목표도 명확해서 좋았다. 영은의 힘든 상황은 영화일 뿐 저와는 경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표현이 어렵지 않았다. 제가 인물과 실제 삶의 분리가 잘 되는 편이라 힘들지는 않았다. (관객의 입장은) 인물들에게 측은지심이 생기겠지만. 저는 그저 잘 해내고 싶어서 선택했다. 깊이 있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서 배우로서 한 번쯤 경험하고 싶은 인물이었다”
-영은은 물을 상징한다. 또한 수영 강사로 나오기 때문에 수중 장면도 소화해야 했다.
“중학교 때 자유영, 배영까지 배우고 그만두어서 감각은 있지만 수중 신을 위해 다시 배웠다. 사실 깊이를 알 수 있는 바다나 호수를 무서워했었다. 물 공포증도 있다. <구경이> 때 수중 장면을 힘들게 촬영했었다. 그런데 <침범> 때는 6m 정도의 수영장 깊이가 오히려 무섭지 않더라. 연습도 많이 했었지만 공포심 없이 편하게 촬영했다”

-시점상 영은이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힘든 상황부터 시작한다. 따로 영은과 소현의 전사를 이야기 나눈 게 있나.
“대본 리딩 때 여러 질문을 했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이상한 행동을 한 게 아니라는 설정인데. 키우다 보니 독특하고 이상하고 과격하며 폭력적인 성향이 조금씩 드러났던 거다. 영은의 입장에서는 첫아이라 일반적인 성장 과정인지, 내 아이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초반부를 보면 아시겠지만 폴더폰을 쓰는 옛날이다. 지금이야 아이의 성향을 도움받을 돌파구가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신경정신의학과의 명칭이나 치료란 개념 없이, 그저 정신병원 낙인찍히는 두려움이 컸다. 전 남편이 ‘그때 병원에 입원시켰으면 됐잖아’라고 하는데 주 양육자는 영은이고 남편은 제삼자나 다름없다고 볼 상황이다. 영화의 시점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무너지고 다시 일어난 때다. 고군분투하는 모습부터 시작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 엄마로서 영은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겠다.
“음.. 사실 엄마로서 그 상황에 놓여봐야 알 수 있지,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극한 상황에 모든 것을 놔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은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수영장 사고만 없었다면 끝까지 노력했을 거다. 인간이기 때문에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고 놓아버렸다가도 다시 잡는다. 소현의 곁을 떠날 수 없어서 붙잡고 싶은 거다”
-수영장에서 소현을 붙잡으려고 했는지, 여러 해석이 분분하다.
“대부분의 관객이 소현과 같이 죽으려고 수영장에 데리고 간 거라고 보신 거 같다. (웃음) 저는 다르게 해석했다. 수영장은 유일하게 영은이 힘으로 아이를 제압할 수 있는 ‘훈육의 공간’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수영을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니, 새로운 훈육 방식으로 택했던 거다. 하지만 출혈이 심해지면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번진 거다. 만약에 ‘너랑 나랑 같이 죽자’였다면 죽을힘을 다해서 아이를 잡아끌었을 거다. 하지만 ‘너라도 살아’라면서 아이를 놔준다. 아이의 시선에서 장면 담았기 때문에 관객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나 싶다. 영은은 자기가 잘하면 보통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거라는 희망을 봤던 거라고 해석했다”
-영화 속에서는 힘든 모녀 관계였지만 기소유 배우와 실제로는 가장 친하게 지냈다고 들었다.
“소유 어머니의 말씀을 빌리자면 소유가 ‘극 T’라고 하더라. 그런데 저랑 작품 하면서 좋았는지 선영 엄마랑 또 하고 싶다고 전해 들었다. 연락처를 받아 따로 만나기도 하고, 지나가는 길에 집에 놀러 와서 강아지도 보고가고 아이들과도 놀았다. 현장에서 아이 엄마가 저뿐이라서 소유 나이를 잘 알고 공감해 줄 사람이 저밖에 없었다.
소유 연기를 직관할 때면 감탄만 나온다. 만 6세가 그걸 해냈다. 그 장면을 이해할 수 있을 설명이 들어갔다고 해도 극 흐름에 지장 없이 너무 잘해서 놀랐다. 방금 저를 매섭게 봐놓고 바로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온다. 뮤지컬도 하고 싶다길래 <마틸다> 해보는 걸 추천했다. 더 크면 하기 힘드니 천천히 크라고 했다. (웃음)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다”
-엔딩 장면의 해석이 갈린다. 스스로의 해석은 어땠나. (스포일러)
“꽉 안아주는 데 엄마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혼내는 거로 보인다. 해영의 시선에서 보게 되는 장면이다. 그동안은 다그치기만 했지 공감도 해주지 않았기에 저는 다르게 해석했다. 영은은 소현을 편안하게 안아 준 적이 없었다. 발버둥 치는 아이를 제압하기 위해 안거나, 두려워서 거리를 두거나, 닭 잡고 나서 씻길 때 정도만 평온한 스킨십을 한다. 그 장면에서는 온전히 안아주는 유일한 상황이다. ‘아니야, 잘했어. 고생 많았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을 것 같다”
친구같이 함께 하는 엄마

-또래의 아들이 있어서 연기에 도움받은 게 있었나. 아들에게는 어떤 엄마인가.
“아들이 소유보다 한 살 많다. 아들에게 재미있는 엄마, 인생을 같이 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엄마라는 틀에 가두고 기대하는 만큼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랑 전혀 다른 인격체니까 좋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고, 같이 달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예전엔 엄마를 인터넷에 치면 사진이 나오는 사람 정도로 인식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배우인 걸 안다.
아들은 몇 년째 확고한 싱어송라이터가 꿈이다. 뮤지션이란 직업이 직접 쓰고 부르고 공연, 연주하면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 피아노는 배우고 있고 노래를 만들어서 녹음도 하고 그런다. 절대음감도 여전한데, 세상에 없던 인물이 저랑 살고 있으니 놀랍다. 물론 닮았겠지만 저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서 또 다른 인격체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작품 선택 기준이나 캐릭터 빌드업 과정이 궁금하다.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인물을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지가 중요하다. 되도록 관객의 입장에서 이해가 잘 되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편이다. 어떤 역할이든 접근 방식은 같다. 텍스트로 된 인물을 만나 입체적으로 만들어서 관객에게 공감을 얻는 본질 말이다. <침범>이란 기회가 저에게도 온 꿈만 같아서 영은을 잘 해내야겠다는 목표밖에 없었다. 공연, 드라마 모두 기회가 오는 대로 응했고 겹치는 거 말고는 감사한 마음으로 출연했다”
-예전 인터뷰에서 20대 때는 잠도 안 자고 분 단위로 쪼개서 생활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비슷한 루틴으로 생활하고 있나.
“그때는 1등도 하고 싶고 장학금도 받고 싶고 수업도 빠지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은 기획사를 알아보느라 밖으로 나갔지만 저는 학교가 좋아서 안에서만 있었다. 20대 때는 수석 하려고 잠 안 자고 공부했던 기억이다. 연극 영화과가 실기 위주가 많은데 밤새우고 목소리가 안 나와도 다음 날 아침에 판소리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을 정도였다. 아침 수업이면 결석이 유난히 많고, 전 또 ‘이때다’ 싶어서 열심히 수업을 들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여유가 생겼다. 예전에는 분 단위로 쪼개 무언가를 해내야 잘 살았다고 판단했다면.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안 하고도 행복해질 합의점을 찾아서 좋다. 오늘 안게 이것, 저것 정도만 하면 된다고 느슨하게 마음먹었다”

-앞 질문에 이어, 20년간 한결같이 걸어간 길과 맞아떨어지진다. ‘거북이’를 좋아한다는 말과 닮았다.
“그때는 거북이처럼 살고 싶어서 그랬다. 거북이가 우직하고 느린데 잠시 한눈팔면 저 멀리 가 있다. 인생이든 배우의 삶이든 느리고 묵직하게 가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던 거 같다. 저는 배우 일하면서 조급했던 적이 없었다. 욕심 없냐고 야망도 없냐고 물으시던데, 그 열기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저도 주인공도 하고 싶고 다양한 목표가 있다. 다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 믿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목표로 달려왔기엔 거북이를 떠올렸나 보다. (웃음)”
-캐릭터의 깊은 몰입으로 빠져나오기 힘들어하는 배우가 많다. 배우로서 온오프 전환이 쉽다는 건 축복이지 않을까 싶은데..
“연극은 인물에 깊게 빠져야 하는 작업이라 공연 연습을 많이 해서 길러진 습관 같다. 일은 일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이 크다. 슬픈 장면을 촬영한 후 신체적인 움직임의 일환으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기능 탓이지 그런 생각으로 흘린 눈물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서 출퇴근이 잘 되는 사람인 거다”
-첫 영화 <침범> 이후 곧 개봉한 두 번째 영화 <로비>도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년 경력 중 첫 영화 개봉을 앞둔 소감이 궁금하다.
“좋은 기회가 저에게도 찾아온다는 게 꿈만 같다. 동시 작업이었다면 힘들었겠지만. 출퇴근이 잘 되는 성격이라(온, 오프 잘 된다는 말) 역할 수행의 어려움은 없었다. 저도 영화계에 ‘침범’한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웃음) 영화 한 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힘든 시간을 겪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운이 좋은 사람이다.
영화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극장에 오는 낭만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스크린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배우의 연기 호흡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말이다. <로비>를 먼저 촬영했지만 <침범>이 먼저 개봉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시는 분이 다르게 느낄 것 같다. 캐릭터의 성격이 다르다는 건 축복이다. 극장을 많이 찾아서 확인해 달라”

글: 장혜령
사진: 자이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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