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방회의 주재 뒤 폭파…‘무인기’ 대응 빈말 아니란 시위

이제훈 기자 2024. 10. 1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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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0월15일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 합참 제공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국방·안전 분야 협의회’를 주재했다는 15일 노동신문 보도는 김 총비서가 ‘평양 무인기’ 사태 대응의 전면에 나섰음을 뜻한다. 김 총비서의 회의 주재 뒤 북쪽의 첫 대남 적대행위가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의 군사분계선 이북 일부 구간 폭파다.

이는 북쪽이 지난 11일 ‘외무성 중대성명’으로 평양 무인기 사태를 처음 제기한 뒤 연일 성명·담화로 주장해온 “재발 땐 대응보복 행동, 끔찍한 참변” 경고가 ‘말’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위력시위다. 다만, 두 도로 모두 70m가량의 짧은 구간 폭파라 아직은 ‘정치적 신호 발신’ 성격이 짙다. 북한은 지난 1월 남북 연결도로 일대에 지뢰를 매설해 폐쇄한 바 있다.

군 관계자는 “경의선과 동해선은 남북이 협력하던 때에 남쪽이 놔준 것”이라며 “이미 폐쇄한 도로 자체를 날려버렸는데 남북 단절 조치를 가시화한 ‘최종적인 쇼’가 아닐까 생각한다. 남북 협력의 상징을 없애고 남북 간 교류를 거부한다는 의미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에겐 ‘남북은 나눠졌으니 남쪽에 기대지 말라’고 대내 결속을 다지고, 남쪽엔 ‘당신과 거래하지 않으니 완전히 신경을 꺼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유엔사엔 ‘남북 갈등이 있으니 중재·협상을 해달라’는 의지를 넌지시 전하는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아울러 도로 폭파는 ‘북남 관계는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는 김 총비서의 남북 관계 재정립 노선의 기정사실화를 향한 후속 조처라 할 수 있다.

북한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

김 총비서가 14일 소집한 회의엔 군 정보와 대남 공작을 책임진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장, 군 운용을 책임진 인민군 총참모장이 참석했다. 회의는 ‘평양 무인기’ 사태를 “적들의 엄중한 공화국 주권 침해 도발 사건”이라 규정했다. 정찰총국장이 “종합분석”을, 총참모장이 “대응군사행동계획”을 보고했다.

김 총비서는 “평가와 결론”을 내리며 “당면한 군사활동 방향”을 제시했다. 전반적 상황 분석과 군사적 대응 방안을 논의·결정했다는 뜻이다. 앞서 총참모부는 지난 12일 “완전무장된 8개 포병여단 사격대기 태세 전환”을 포함해 “국경선(군사분계선) 부근 포병연합부대들과 중요 화력 임무가 부과된 부대들에 완전 사격 준비태세를 갖출 데 대한 작전예비지시”를 내린 터다.

김 총비서의 회의 주재는 평양 무인기 사태 뒤 김 총비서의 첫 공개 활동이다. 김 총비서는 회의에서 “나라의 주권과 안전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억제력의 가동과 자위권 행사에서 견지할 중대한 과업들”과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통일부 당국자는 15일 “사안의 중요성을 그만큼 부각시키는 측면”과 “어느 정도 상황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함께 담겨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평양 드론 삐라 사태’와 관련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의 대응군사행동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고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15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김정은 총비서가 14일 소집된 ‘국방·안전 분야 협의회’를 주재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 총비서의 전면 등장은 평양 무인기 사태가 중대 고빗길에 들어섰음을 가리킨다. “공격 시기는 우리가 정하지 않는다”는 북쪽의 거듭된 언급에 비춰, 윤석열 정부의 대응 기조가 사태의 앞길을 좌우할 변수다. 군사충돌을 피하자면 평양 무인기 사태의 재발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 총비서는 2012년 집권 이후 남북 군사충돌 위기 때 전면에 나선 선례가 있다.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2020년 6월16일 북쪽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해 긴장이 높아졌을 때 김 총비서는 노동당 중앙군사위 7기 5차 예비회의를 소집해 “대남 군사 행동 계획 보류”를 결정했다.

2015년 8월4일 군사분계선(MDL) 이남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폭발 사건과 8월20일 남쪽의 대북 확성기를 겨냥한 인민군의 포격 땐, 당 중앙군사위 비상확대회의를 열어 “준전시 상태 선포”를 명령했다. 당시엔 북쪽의 제안으로 8월22~24일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성사돼 사태를 극적으로 안정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 총비서 등장 뒤 군사충돌 위기를 넘긴 2015년 8월과 2020년 6월의 선례를 따르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상회담을 세 차례 한 문재인 정부나 기싸움 속에도 대화를 한 박근혜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북을 “주적”이라며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고 있다. 김 총비서도 남쪽을 “불변의 주적”이자 “식민지 노복(노예) 국가”로 폄훼하며 맞서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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