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길 위의 사람들, ‘마두’를 아십니까?

2026. 1. 1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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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죽 성균관대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 책임연구원
2026년, 병오년(丙午年). 세간에서는 60년 만에 돌아온 ‘붉은 말’의 해라며 적토마의 기운을 받아 내달리라는 덕담이 분주하다. 그런데 왜 하필 붉은 말일까. 원리는 간단하다. 10개의 천간은 ‘목화토금수’의 오행을 따르는데, 각각 고유한 색을 지닌다. 갑과 을은 나무(木)이니 청색, 병과 정은 불(火)이니 적색, 무와 기는 흙(土)이니 황색, 경과 신은 쇠(金)이니 백색, 임과 계는 물(水)이니 흑색이다. 여기에 12개의 지지(띠)가 결합한다. 불·적색을 상징하는 ‘병(丙)’이 말을 뜻하는 ‘오(午)’와 만난다면? 그렇다! 붉은 말이 되는 이치이다. 이 공식만 알면 내년, 내후년의 동물 색깔도 척척 답할 수 있다. 물론, 음력설이 지나야 진정한 병오년이니 호들갑은 다소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뭐 어떠랴. 미리 듣는 덕담에 기분이 좋으면 그뿐이다.

「 ‘붉은 말’ 기운 받아 내달리자 덕담
천리마보다 안목 좋은 ‘마두’ 중요
연암·추사 업적의 숨은 조력자들
삶의 지도 찾아주는 이들에게 감사

사실 필자에게 ‘말(馬)’이란, ‘최운태’ ‘천석’ ‘수만’ ‘세팔’ 같은 거칠고 투박한 이름과 짝을 이뤄 맴도는 단어다. ‘마두(馬頭)’라 불렸던 조선 외교의 숨은 조력자들. 10년 가까이 조선의 사행 기록을 DB화 하며 만난 이들 덕에 지금도 겨울 초입엔 ‘12월이니 압록강을 건너겠구나’ ‘1월이면 산해관을 지나 북경으로 들어가겠지’ 하며 그들의 춥고 긴 여정을 가늠해본다.

마두란 말을 다루고, 말을 모는 사람을 뜻한다. 한양에서 북경까지, 수천 리 길 위에서 말을 다루는 일이란 좀처럼 녹록지 않았다. 급히 물만 마셔도 목숨이 오가고, 낯선 소리에 기겁해 사람을 내동댕이치는 예민한 동물이다 보니(『산림경제』), 녀석들의 비위를 맞추며 일행의 안위까지 책임지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마두의 고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언 땅에서의 한뎃잠은 예사요, 이국에서 말 먹이를 구해오고, 청나라 수레꾼의 드센 시비를 해결하는 일 역시 오롯이 그들의 몫이었다. 사신 행렬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앞장서 역참을 점검하며, 예부의 심부름까지 도맡았다. 긴 여정의 모든 틈을 채우는 존재들이었기에, 이들 없이 사신단은 촌보의 움직임도 불가능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신들에겐 천리마를 알아보는 안목보다 마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눈치와 인내심이 절실했다. 어떤 마두와 파트너가 되느냐는 평생 다시 못 올 해외 체험의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연암이 『열하일기』에서 마두만 의지하는 사신들을 보고 끌탕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강을 잡고 위엄을 세워도 날씨와 지형, 돌발적인 상황 앞에서 마두의 직관에 기대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지리서로 익힌 치밀한 지식은 상상에 불과했으나, 마두의 경험에는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압록강을 건너는 순간, 사신과 마두의 세(勢)가 역전되는 상황이란 이처럼 비일비재 했다.

참으로 의아하다. 조선의 마두는 모조리 능력 만랩이었던 말인가? 마두는 당시 공·사노비에 속했으나 사신단을 따르는 마두 대부분은 의주 지역 하급 군관 출신이었다. 글을 알고, 지리에 밝으며 체력이 좋았던 그들은 국경 무역에도 능했다. 생계를 위해 사행단에 합류하려면 공식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으니, 이른바 ‘차명 노비’로 마두를 자처한 것이다. 이 관행이야말로 만랩의 비밀인 셈이다.

선천의 마두 최운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무려 47번이나 북경을 오간 그는 ‘살아있는 지도’였다. 역관조차 모르는 지름길을 꿰고 정보에 기민했다. 소소한 능력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의 마두는 유능하다. 현지 인맥을 동원해 희귀한 책을 구하는가 하면, 타국 사신에게 편지를 전해 교류의 물꼬를 터주기도 한다. 그들의 잰 걸음이 만든 역사적 장면이 설마 이 한두 개에 그치겠는가.

새해 벽두부터 이미 사라진 마두 이야기가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기왕 맞이한 ‘말의 해’를 핑계로 행간에 묻힌 이름들을 내보이고 싶었다. 담헌과 연암의 북학도, 추사의 고증학도 따지고 보면 ‘그곳에 안전하게 도달해야’ 가능한 일 아니었던가. 세상의 모든 매끄러운 성취는 늘 누군가의 고단한 분투를 딛고 서기 마련이다.

시대는 멀리 왔지만 묵묵히 타인과 조응하며 숨어 있던 삶의 지도를 찾아 주는 이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러니 따뜻한 그 무형의 배려에 세심한 시선으로 답해야 하지 않을까.

김영죽 성균관대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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