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Story] 한화 이글스 박상원

조회수 2023. 11. 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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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야구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규 이닝 동안 잡아야 하는 아웃카운트는 총 스물일곱 개. 그리고 그 중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경기의 문을 닫는 투수를 우리는 마무리 투수, 혹은 ‘클로저’라고 부른다. 클로저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문을 닫느냐에 따라 그 경기의 마지막 양상이 급변하기도 하며, 때로는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로 승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주인공이자 ‘스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프로 데뷔 7년 차에 처음으로 그 화려한 명함을 얻은 이가 있다. 오랜 암흑기를 청산하고 더 높은 비상을 노리는 독수리 군단의 뉴 클로저이자, 이들의 마지막 이닝인 9회를 책임질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박상원’이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Mingyu Kim Location Daejeon Hanwha Life Eagles Park

#섭외, 농담 아니었어요 ^^

<더그아웃 매거진>과는 첫 만남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인사 부탁해요. (10월 12일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한화 이글스 마무리 투수 박상원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인사하게 됐는데, 정말 영광이고 앞으로 자주 출연할 수 있게 더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원래 <더그아웃 매거진> 편집장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데, 그래서 처음엔 진짜인지 농담인지 헷갈렸어요. 데뷔하고 7년 동안 한 번도 섭외 관련해서 얘기를 안 하셨거든요. (웃음) 올 시즌에 그래도 잘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인터뷰할 기회도 생겨서 기분이 좋네요. 또 <더그아웃 매거진>이 야구 잡지 중에서는 최고잖아요. 언젠가 한 번은 출연해보고 싶었어요.

올 시즌도 끝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마지막까지 컨디션 관리는 잘 되고 있나요?
컨디션은 저희 팀 트레이닝 파트 쪽에서 도움을 받으면서 관리하고 있어요. 근데 잔여 경기 일정이 제가 군대 가기 전과는 달라진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적응이 살짝 안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결국 제가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고, 프로답게 그 가운데에서도 최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잔여 일정이 진행 중인데, 경기가 없는 날은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인터뷰일 기준) 딱 세 경기가 남았는데요, 아직 최종전이 안 끝났기 때문에 개인 생활보다는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또 지난주에는 한 주 내내 원정이었거든요. 3연전을 소화할 때는 몰랐는데, 한 주에 거의 네 번씩 이동하니까 피로도가 상당하더라고요. 그래서 팀이 필요할 때 문제가 없도록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해요. 비록 저희가 낮은 순위에 있긴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라도 높이 가야 하니까요.

2023시즌을 돌아본다면 어떻게 평가하고 싶어요?
전역하고 나서 첫 풀타임 시즌이라 큰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았어요. 다만 시즌 초부터 뜻밖의 부상으로 잠시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그래도 복귀한 이후에 어느 정도는 보탬이 된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마무리로서의 경험은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지 않나 싶어요. 일단 하나부터 열까지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거고, 앞으로도 몇 년은 더 해봐야 ‘그때 잘했구나’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방금 말한 것처럼 마무리를 맡은 첫 시즌이었는데, 만족스러운 점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일단 꿈꿔온 자리에서 공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다만 마무리 투수라고 해도 언제나 1이닝 세이브 상황에서만 나갈 순 없잖아요. 이를테면 팀 상황에 따라 지고 있더라도 1점 차 상황에서 점수 차를 유지해줘야 한다거나, 8회부터 올라와서 많게는 아웃카운트 6개를 책임져야 할 때도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부진한 경우가 잦았는데, 아무래도 그 부분이 아쉽고 미련도 남아요.

#어쩌다 마주친 “뉴 클로저”

마무리 보직에 대해 더 깊게 얘기해볼까 합니다. 마무리로 낙점받은 과정과 당시 기분은 어땠나요?
그 과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처음엔 마무리로 절 내정했다는 얘기가 없었고, 나중에야 들었거든요. 그리고 작년 막바지에는 부상 이슈도 있다 보니까 ‘그냥 중간 보직에서 준비 잘해야겠다’라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물론 마무리라는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돼 있긴 했죠. 앞에서 얘기해드린 것처럼 꼭 해보고 싶은 자리였기 때문에, 그 기회를 무조건 잡고 싶다는 욕심이 강했어요. 또 시즌 초반에 2군에서 준비하다가 3주 정도 지나서 첫 등판을 했는데, 제가 올 시즌 팀 첫 세이브를 올렸더라고요. 여러모로 팀 상황이 좋지 못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조금이나마 힘이 된 느낌이라 좋았어요.

마무리로 정해졌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하는 느낌이었겠어요.
비하인드가 있는 게, 첫 세이브를 올린 경기에서 감독님이 처음엔 (강)재민이에게 마무리를 맡기려고 하셨어요. 재민이가 8회에 올라와서 아웃카운트 5개를 책임져야 했는데, 투구 수가 많아져서 일단 (김)범수가 올라갔죠. 근데 전날 범수가 김재호 선배한테 9회에 결승타를 맞았는데, 마지막에 김재호 선배가 대타로 나온 거예요. 전 그때 코치님이 준비하라고만 하셔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나가겠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김재호 선배가 나오자마자 “바로 나가라”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얼떨결에 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웃긴 건 그날까지도 말이 없으셨어요. 그러다 다음 날 경기 준비하고 있는데 (호세) 로사도 코치님이 오셔서 얘기하시더라고요. 오늘부터 뉴 클로저라고. 그제야 제가 마무리 투수가 됐다는 걸 알았죠.

전반기 31.1이닝 동안 ERA 2.30, 4승 7세이브로 맹활약했어요. 새 보직에 적응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도와주는 분이 많았어요. (정)우람이 형은 물론이고, (채)은성이 형이나 (이)태양이 형이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예전에 제가 7, 8회에 던질 때는 아웃카운트 하나 잡을 때마다 세리머니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형들이 마무리 투수는 진중한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 뭔가 팀의 수호신다운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얘기하셨어요. 곱씹어보니까 맞는 말이더라고요. 다른 마무리 투수들도 과묵한 스타일이 많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반기까지만 해도 원래 했던 것처럼 마운드 위에서 조금 가벼운 모습을 보였는데, 마무리 투수의 무게를 전달하려면 어느 정도는 진지한 모습이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그 뒤로 스타일을 바꿔보니까 결과도 더 좋게 따라왔고, 마음가짐도 한층 달라졌어요.

전반기 활약을 바탕으로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도 출전하게 됐죠.
솔직히 올스타전이 열리기 전부터 감독 추천 선수로 보내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근데 올스타전은 정말 가보고 싶었어요. 18년에 잘했을 때도 못 갔고, 19년에는 팬 투표에서 2등까지 했는데 저 빼고 다 갔어요. 당시 한용덕 감독님이 다른 선배들이 가야 하니까 이해해달라고 하셨거든요. 근데 우여곡절 끝에 올해 가게 됐는데, 진짜 꿈 같은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4회에 등판해 단 7구 만에 이닝을 정리하면서 첫 올스타전을 성공적으로 끝냈어요. 평소 세이브 상황만큼이나 가슴이 떨렸을 법도 했는데, 스스로는 어땠어요?
설렌 건 사실이었지만, 평소처럼 준비는 열심히 했어요. 다만 마운드 위에서 공을 많이 던져보고 싶었는데, 딱 7개밖에 못 던져서… (아쉽) 그리고 변화구 던질 상황이 안 오니까 전부 직구밖에 못 던졌거든요. 그 부분이 좀 미련이 남죠.

2아웃 상황에서 보여준 직구 예고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어요. 나중에 영상을 보니 유희관 선배와 한 공약이었던데요.
희관이 형이 중학교 선배인데, 올스타전 열리기 전에 “상원아, 한번 후지카와 큐지(전 한신 타이거스 투수)처럼 퍼포먼스 해보자”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손사래 쳤죠. 그럼 큰일 난다고, 그건 160km/h 던지는 애들이나 해야 멋있는 거지, 제가 하면 후지카와 선수랑 비교돼서 짤로 돌아다닐 거라고 하면서요. 그랬더니 희관이 형이 “상관하지 마, 할 수 있어! 딱 한 번만 해보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럼 2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이 오면 하겠다”라고 했죠. 원래 형은 노아웃 초구부터 해보라고 하셨는데, 차마 그렇게까진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2아웃에 전준우 선배를 상대로 퍼포먼스를 하게 됐어요. 근데 정작 전준우 선배는 못 보셨더라고요. (머쓱)

전준우는 그 당시에 직구 사인을 못 본 건가요?
그러셨나 봐요. 올스타전 끝나고 후반기 첫 경기에서 전준우 선배랑 마주쳤는데, 그때 저한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직구 던진다고 한 거였냐고.

근데 직구 그립을 보여주기 전에 살짝 머뭇거리던데, 막상 해보자니 쑥스러웠던 건가요?
쑥스러웠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마운드 위에서 장난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게 제 신조였거든요. 근데 프로 와서 이런 이벤트 경기가 처음이니까, 무심코 이 퍼포먼스가 너무 장난스럽게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올스타전은 즐기는 날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한번 즐겨보자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머뭇거렸던 것 같아요. 머릿속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오면 더 당당하게 할 수 있겠죠?) 당당하게 해봐야죠! 직구든 포크볼이든, 그땐 제대로 한번 해봐야죠.

이젠 마무리라는 옷이 슬슬 익숙해졌을 것 같은데, 본인이 느끼기에는 어때요?
이 부분은 주변에서 평가해 주는 게 맞지만, 확실한 건 그래도 아직 1년밖에 안 해봤으니까 몇 년은 더 해보고 싶어요. 2~3년 동안은 꾸준히 활약해서, ‘한화의 마무리는 박상원’이라는 걸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정도가 되면 정말 제게 마무리 옷이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올해 KT (김)재윤이 형, 내년에 롯데 (김)원중이 형처럼 FA 자격을 얻는 굵직한 마무리 투수들이 나올 건데, 그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마무리 보직을 굳건히 지킬 수 있어야겠죠. 설령 그런 투수들이 우리 팀에 오더라도 제가 마무리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그만큼 저희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현재까지 53경기에 나서 총 16개의 세이브를 거뒀습니다. 매 경기가 짜릿했겠지만, 그중에서도 강렬했다고 기억하는 세이브가 있을까요?
일단 첫 세이브를 올린 4월 19일 두산전이 기억에 남죠. 또6월 22일에 KIA를 상대로 1대0 점수를 지킨 것도 좋고요. 그다음으로는 제 생일이었던 9월 9일 키움전이요. 항상 생일 때마다 결과가 안 좋았는데, 이날은 야수들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세이브를 기록했거든요. 한 시즌을 돌아봤을 때 이 세 경기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그럼, 마무리 보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볼까요? “마무리 투수는 OOO다!”
마무리 투수는… 중간 투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마디로 새로운 세계가 있는 곳이에요. 저도 옛날엔 몰랐어요. 어차피 한 이닝 던지는 거면 중간에 등판할 때랑 똑같은 느낌으로 던지면 되겠구나 싶었거든요. 근데 확실히 달라요. 마운드 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경기의 흐름, 그리고 그 상황에 필요한 집중력까지 모든 게 새로운 영역이었어요.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형을 따라 야구를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그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아버지가 야구선수 출신이셨어요. 또 어릴 때 저희 형은 (노)시환이처럼 몸이 엄청 좋았는데, 반대로 전 완전 빼빼 마른 스타일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수영을 했는데, 수영장에서 막 혼나고, 맞기도 하고, 거기다 새벽에 나가서 운동해야 하고 하니까 힘들고 재미도 없는 거예요. 근데 야구는 조금만 일찍 나와도 되고, 맛있는 거도 주고 하니까 종목을 바꿨죠. 어떻게 보면 수영이 싫어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거지만, 막상 공을 던져보니까 진짜 재밌기도 했고요. 또 여기에도 비하인드가 있는데, 지금 두산에서 뛰는 최원준 선수랑 키움 히어로즈 김태진 선수를 포함해서 어릴 때 함께 운동한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다들 저처럼 둘째들이었는데, 다 같이 야구 안 한다고 떼도 쓰고 도망 다니곤 했어요. 근데 신기하게도 전부 형들보다 동생들이 야구로 잘 풀렸어요. 지금 보면 웃긴 일이죠.

간혹 야구를 즐기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본인은 어때요?
전 최선을 다하는 게 곧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고, 즐기지 못한다면 자신이 가진 힘을 100% 발휘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프로가 돼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고, 프로로서 자격이 없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그 순간을 즐기려고 하는 게 맞고요. 또 누군가에게는 그 경기가 인생을 바꿀 하나의 기회이자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느덧 데뷔 7년 차가 되면서 후배도 늘었죠. 가장 잘 따르고 친한 후배는 누구인가요?
일단 대학교 후배 (박)윤철이요. 물론 프로 온 다음에는 옆에서 뛴 기간이 많지는 않지만요. 또 (문)동주도 있고요. 작년에 전역하고 서산에서 몸 만들고 있을 때 동주가 재활하러 잠시 내려왔는데, 그때 옆에서 운동하면서 친해졌어요. 그 외에도 친한 후배들은 진짜 많아요. 그래서 잘 따르는지 안 따르는지를 말하기는 어렵고요, 대신 말 안 듣는 후배는 몇 명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장난) 다들 착하고 선배들에 대한 존중도 있는 편인데, 가끔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 있어요. (실명 언급도 가능한가요?) 정확히는 안 따른다기보다는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느낌인데… 잠깐 카메라 끄고 얘기할까요? (웃음)

올 시즌을 앞두고 여러 베테랑이 영입되면서 선수단 분위기가 바뀌었을 것 같은데, 안에서 보는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어때요?
은성이 형, 태양이 형, 그리고 (오)선진이 형이랑 (이)명기 형까지 포지션별로 형들이 한 명씩 들어왔는데, 확실히 팀이 중심이 잡힌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들 경기 중에 미스 플레이가 나오면 곧바로 피드백이 가능한 형들이고, 동생들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클래스가 있는 선배들이니까요. 그렇게 형들이 리더 역할을 하면서 경기를 끌고 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저희도 중간에서 최대한 형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생겨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봤을 때 작년보다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경기력 자체의 질도 달라졌다고 느껴져요.

팀 동료 박상언과는 이름이 비슷해서 얽히곤 하죠. 함께 배터리를 이루는 날도 많은데,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많죠! 지금도 라커룸에서 바로 옆자리를 쓰는데, 누가 “상원아(혹은 상언아)”라고 부르면 무조건 둘이 동시에 쳐다보거든요. 그래서 제가 맨날 이름 바꾸라고 해요. (웃음) 그리고 이건 제가 프로 처음 입단했을 때 얘기인데요, 대학교 다닐 때 팔이 안 좋아서 세브란스 병원에 다니곤 했어요. 그때 MRI를 찍으러 가면 병원 쪽에 연결해 주는 분이 계셨는데, 프로 지명받고 나서 그분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그때 전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사를 했는데, 저보고 “한화 가서 상원이 좀 잘 챙겨줘” 이러시더라고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서 ‘내 몸을 계속 잘 챙기라는 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상언이 아버지셨던 거죠. 그런 거처럼 웃긴 해프닝이 종종 있었어요.

그렇게 얽히다 보면 자연스레 친해지기 마련이겠네요.
옆에 있으면 엄청 재밌어요. 라커룸 자리도 제 옆자리를 쓰라고 했고요. 또 상언이가 평소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출근도 가장 일찍 하는 편이에요. 경기 전에는 상대 타자들 컨디션이나, 특정 구종에 어떻게 반응하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승부를 가져가야 하는지 연구를 열심히 하고요. 전 그걸 옆에서 지켜보니까, 자연스럽게 호흡이 잘 맞아요. 물론 (최)재훈이 형이랑도 당연히 잘 맞지만, 상언이랑은 제가 전역하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배터리를 이뤄보는 건데도 되게 자연스러웠어요. 또 우연히 기록을 봤는데, 저희가 올해 호흡을 맞췄을 때 아직 점수를 1점도 안 내줬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신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대장의 뒤를 이어

정우람이 롤 모델이라는 건 공공연하게 밝힌 사실이죠. 선배의 어떤 점을 닮고 싶었나요?
성실함, 꾸준함, 그리고 노련함이요. 또 선배님은 피지컬을 강점으로 가지신 분은 아님에도, 마운드 위에서 삼진을 잡아내면서 타자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요, 경기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파악할 줄 아는 분이에요. 거기다 얼마 전에는 통산 1,000경기 출장 기록도 세우셨잖아요. 그만큼 몸 상태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거든요. 3년 이상을 많은 경기에 나서면서 공을 계속 던지다 보면 팔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어떻게든 경기력을 유지하는 부분을 배우고 싶어요. 처음엔 “선배님이 하시는 만큼의 반만 따라가고 싶다”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젠 반보다는 조금 더 따라가고 싶어요.

선배를 잇는 새 마무리 투수가 됐고, 공교롭게도 등 번호도 정우람의 57번의 바로 다음인 58번을 달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롤 모델을 잇는 레전드 마무리가 되기를 팬들도 기대하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처음에 58번은 달고 싶어서 단 건 아니었어요. 처음 정식선수로 전환되면서 받은 번호인데, 솔직히 저도 멋있는 번호를 달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하지만 58번도 프로 와서 처음 단 번호라 의미가 있었고, 일단 번호는 제 등 뒤에 있으니까 저랑 잘 어울리고 말고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근데 때마침 우람이 형이 57번이라 구단에서 등 번호 순서대로 뭔가를 나눠줄 때도 우람이 형 바로 뒤에서 받아 가곤 하는데, 내심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선배님 뒤를 잇는 마무리가 되고 싶다는 꿈도 꿨고요. 나중엔 정말 선배님처럼 세이브왕도 해보고 싶고, 멋진 기록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박상원에게 정우람 선배란?
우람이 형이 없었으면 벌써 야구 그만뒀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는 데에는 우람이 형이 절 다듬어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덕분이 크지 않을까 해요. 제겐 그야말로 은인이시죠. 제가 혹시라도 엇나가려고 하거나 사고를 치거나 하면 옆에서 누구보다 따끔하게 혼내주셨어요. 언제나 절 잘 잡아주시고, 때로는 고민이 있을 때 해결해 주시기도 했고요. 이렇게 선배님이 항상 후배들을 진심으로 생각해주시니까, 후배들도 의지하는 정도가 커요. 실제로 17년에 후배들이 2군에 내려가게 되면, 맨날 우람이 형 옆에 가서 울고 가더라고요. 다들 속상한 마음이 크니까, 우람이 형 옆에 가서 털어놓고 간 거죠. 그만큼 우람이 형이 정신적인 지주 느낌이었어요. 이건 단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마 다른 불펜 투수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 거예요.

다만 정우람이 ‘대장 독수리’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데 반해 본인은 비버라는 다소 앙증맞은(?) 별명을 갖고 있잖아요.
이래서 다들 인형 줄 때 비버 달린 거로 주신 거구나…?! 아니, 상언이랑 저한테 맨날 똑같은 인형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대체 왜 주시는 거지?!’라고 생각했죠. 물론 가방에 달고 다니기는 하는데… 이게 제 별명이어서 그런 거였군요. (깨달음) 근데 왜 굳이 비버라고 지으신 걸까요? 맨날 마운드 위에서 소리 질러서 그런가…? (아마 외모적인 요소 때문인 듯한데, 별명 자체는 마음에 드나요?) 뭐 팬분들이 만들어주신 거라면 다 좋죠!

근데 평소에 비버 인형을 자주 받는 편인가 봐요?
막 자주 받진 않았는데, 상언이 자리에도 그렇고 제 자리에도 항상 인형이 하나씩 있어요. 그래서 ‘둘이 닮아서 똑같은 걸 주는 건가?’ 싶었거든요. 근데 또 웃긴 건 걔 자리에는 비버가 아니라 쿼카 인형이 있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둘이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차이인 건지… (의아)

#마지막은 나의 것이다!

앞으로 본인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됐으면 좋겠어요?
올해를 기점으로 인생 그래프도 좋은 방향으로 올라갔으면 좋겠고, 나중에는 한화를 대표하는 투수로 남고 싶어요. 또 가끔 스타와 조연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보기에 전 선천적으로 스타는 아니지만, 언젠가 스타가 될 수 있게끔 노력으로 그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동주, 시환이, (정)은원이처럼 어린 나이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타고난 스타들이 있는 반면에, 오랜 시간이 걸려서 뒤늦게 빛을 보는 후천적인 스타들도 있잖아요. 제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도, 그런 스타가 되는 그림이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슬슬 마칠 타이밍이네요. 연세대 재학 시절에도 교내 스포츠 매거진 ‘시스붐바’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랑 오늘을 비교하면 느낌이 어땠나요?
지금만큼이나 그 당시에도 전 스타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돌이켜본다면 그때 같이 야구를 했던 사람 중에서는 제가 가장 길게 버텼고, 잘해오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시스붐바’에 출연했던 게 제 인생이 잘 풀릴 수 있는 계기가 됐는데, 오늘 <더그아웃 매거진> 출연도 또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더 잘해야죠!

당시 잡지에 실린 글의 마지막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나의 마지막은 누구보다 빛날 것이다”라고 적혀있는데, 혹시 기억나나요?
그럼요. 프로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육성선수로 시작했을 때, ‘한번 두고 보자’ 이런 마음가짐이었거든요.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면, 저희 동기 중에는 저밖에 안 남아있어요. 한번 두고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하다 보니 지금까지 잘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봐요. 하지만 아직 제 야구 인생의 마지막까지는 멀었잖아요. 전 항상 끝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서, 이 마음가짐을 늘 유지하려고 해요.

그때처럼 오늘의 마무리 멘트를 남겨볼까요? 미처 못다 한 얘기를 해도 좋고요!
뭔가 옛날처럼 멋진 멘트를 남기고 싶은데, 막상 하자니 소름이 돋네요. (민망) 그래도 앞에서 얘기한 마음가짐은 그대로예요. 대신 옛날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기보다는 “마지막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것이다!” 이렇게 간략하게 쓰고 싶어요. 지금은 그냥 딱 이 문장만 남길래요.

마지막으로 본인을 응원하는 팬분들께 한 마디 부탁해요.
제가 너무 횡설수설해서 팬분들이 잘 이해를 못 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래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한화 이글스 많이 사랑해 주세요. 저도 더 열심히 해서, 더 멋진 선수가 돼서 다시 한번 <더그아웃 매거진>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51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3년 151호 (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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