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추락' 이정후, 무엇이 문제인가

이정후 (게티이미지코리아)

올해 이정후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마침내 건강한 이정후를 볼 수 있다는 점은 기대가 됐다. 하지만 실질적인 첫 시즌을 앞두고 주변환경이 크게 바뀐 점은 우려스러웠다. KBO리그를 거친 선수들 중 가장 큰 계약(6년 1억1300만)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기 때문에 이정후를 향한 관심은 처음부터 달랐다.

이정후는 쾌조의 출발을 했다. 시즌 첫 안타와 멀티히트, 3안타 경기가 빨리 나왔다. 뉴욕 양키스 원정에서 멀티홈런 경기 포함 '3홈런 시리즈'를 장식한 건 백미였다. 지난 시즌의 아픔이 이정후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정후는 3,4월 30경기에서 타율 .319, OPS 0.901을 선보였다. 첫 30경기에서 <팬그래프> 승리기여도가 1.4였다. 메이저리그 전체 10위에 해당했다. 오타니 쇼헤이, 프란시스코 린도어와 같았다. 리그 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정후의 맹활약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무됐다. 누군가는 MVP 후보로 언급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시즌 극초반이라는 점을 경계했다. 뭔가를 단정짓기엔 너무 이르다는 입장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정후는 5월 중순부터 하락세가 찾아왔다. 내리막이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성적도 요동쳤다. 어느덧 시즌 타율 .240, OPS도 .704까지 떨어졌다. 좀처럼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한 탓에 6월20일 클리블랜드전에서는 하위 타순(7번)에 배치됐다.

홈런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홈런 타자와 거리가 멀었다. 2022년 23홈런을 때려냈지만, 통산 884경기 65홈런이었다.

이정후의 강점은 정확성을 바탕으로 한 높은 콘택트율과 낮은 삼진율이었다. 유망주 전문 매체 <베이스볼아메리카>도 이정후의 20/80스케일에서 파워에 가장 낮은 45점을 줬다(타격 60점, 스피드 55점, 수비 50점, 송구 45점).

메이저리그에서 이정후는 많은 홈런을 기대하지 않았다. 두 자릿수 홈런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에도, 올해도 시즌 첫 홈런이 일찍 나왔다. 지난 시즌은 첫 3경기, 올해는 12경기 만에 홈런을 신고했다. 여기에 4월14일 양키스전에서는 멀티 홈런, 5월14/15일에는 두 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 올렸다.

좋았던 기억 (구단 SNS)

이정후는 시즌 첫 43경기에서 홈런 6개를 때려냈다. 162경기 환산 시 23홈런이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 예상을 감안하면 놀라운 페이스였다.

하지만 최근 이정후는 홈런이 실종됐다. 잘맞은 타구는 있었지만, 담장을 넘어가지 못했다. 좌타자가 홈런 치기 어려운 곳을 홈으로 쓰는 점을 감안해도 이정후의 타구는 힘이 빠진 상태였다. 마지막 홈런이 나온 뒤 이정후의 홈에서 장타율은 .304, 원정에서 장타율은 .268로 더 떨어졌다. 구장 따질 것 없이 결과가 좋지 않았다.

물론, 이정후가 의식적으로 홈런을 치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시즌 초반 홈런이 잘 나왔다고 해도 이정후는 본인이 어떤 타구를 만들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무리해서 스윙을 크게 가져가진 않았다. 스윙 궤적이나, 발사각도에서도 별 차이가 없었다.

이정후 월별 성적 변화

4월 [타율] .319 3홈런 [OPS] 0.901
5월 [타율] .231 3홈런 [OPS] 0.612
6월 [타율] .143 0홈런 [OPS] 0.551


어제 이정후는 6월 마지막 경기도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6월 타율 .143(84타수 12안타)는 6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가운데 폴 골드슈미트(84타수 12안타.143)와 더불어 메이저리그 최하위다. 6월을 앞두고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던 터라 더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이정후는 6월부터 부진한 것도 아니다. 홈런이 있는 구간과 홈런이 없는 구간으로 나눠도 성적 변화가 뚜렷했다. 홈런이 없었던 39경기 타율 .186, OPS 0.576이다.

이처럼, 표본이 쌓이면서 '일시적인 슬럼프'라는 주장도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문제
시즌 초반 이정후의 장타력은 분명 예상을 넘어섰다. 그럼 이정후의 접근법은 그대로일지언정, 투수들의 접근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타자가 타격감이 좋으면 투수들은 바깥쪽을 노린다. 타격감이 좋은 타자는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는 경우가 많고, 당겼을 때 더 위협적인 타구들이 양산된다. 이 타이밍을 무너뜨리기 위해 바깥쪽 승부를 가져간다. 통산 '363승 투수' 워렌 스판이 말한 "타격은 타이밍, 피칭은 그 타이밍을 빼앗는 것"과 상통한다.

'6홈런 기간' 이정후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히트맵 (베이스볼서번트)

스트라이크 존은 크게 아홉 구역으로 나뉜다. 바깥쪽은 상단, 중앙, 하단이다.

홈런이 나올 당시 이정후는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공들을 지금보다 다양한 곳으로 보냈다. 타구에 힘도 실었다. 평균 타구속도가 90.9마일이었다. 타구의 결과도 뛰어났다.

'0홈런 기간' 이정후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히트맵 (베이스볼서번트)

반면, 홈런이 없었던 5월16일 이후 타구 분포도는 획일화됐다.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공들을 때려냈을 때 2루 방면으로 가는 타구들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밀어쳐야 될 공들도 당겨치면서 타구가 특정 지역으로 몰렸다. 당연히 타구의 결과도 나빠졌다.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상대 결과

6홈런 기간 [타율] .348 [장타율] .413
0홈런 기간 [타율] .182 [장타율] .182


특정 지역으로 향하는 타구가 늘면 수비 위치를 조정한다. 타구 처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무국이 수비 시프트를 제재하면서, <스탯캐스트>는 수비수가 본래 위치를 벗어난 경우를 측정한다. 이를 시프트 대신 셰이즈(Shades)라고 부른다.

이정후는 전년 대비 이 비중이 늘어났다. 지난해 26.6%에서, 올해는 38.1%가 됐다. 좌타자 기준 낮은 편이지만, 수비 위치 이동이 이뤄졌을 때 가중 출루율(wOBA)이 .345에서 .252로 급락했다. 상대 팀들의 분석이 적중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가중 출루율 : 출루 방식에 따라 다른 가치를 부여하면서 선수의 득점 생산력을 엿보는 지표

원점
첫 시즌을 보내는 선수는 적응과 변화의 연속이다. 리그에 적응할 때 상대는 분석에 나선다. 그 분석을 무너뜨리기 위해 또 다른 변화를 줘야 한다. 이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해야 메이저리그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

그렇다고 이정후가 당장 타격폼을 수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시즌 초반 데이빗 애들러(MLB닷컴)는 이정후의 타격폼을 "라파엘 데버스의 오픈 스탠스와 오타니 쇼헤이의 토탭, 프레디 프리먼의 어퍼 스윙이 합쳐진 것 같다"고 바라봤다. 그리고 "이 동작들이 부드럽게 이어지기보단, 각 단계가 독립적으로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이정후의 타격폼 (기사 캡쳐)

이 때문에 이정후의 타격폼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굉장히 독특하다고 평가됐다. 독창적인 건 단기간에 고치기 어렵다. 시즌 도중에는 더 위험한 도박이다. 여기에 이정후는 KBO리그 시절 타격폼 수정 후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정후의 타격폼이 체력 소모가 크지 않은 건 다행이다.

장성호 해설위원은 "타격폼에서 비롯된 체력 저하는 아니다. 지금은 바깥쪽 대처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 인해 초반에 보여준 장점도 보기가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휴식 없이 출장을 강행하고 있는데, 타격폼이 체력 부담을 준다면 향후 반등은 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장 위원은 "일단 바깥쪽에 초점을 맞추고 그 지점을 공략할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이후 원래 타격 존을 가져가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듯 하다"고 덧붙였다.

KBO리그에서 이정후는 천재성으로 리그 최고 타자가 됐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천재 중의 천재들이 모인 곳이다.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경쟁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성공한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와서 한 단계 도약했다. 일부 한국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이정후의 모습이 진짜 실력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진짜 실력이라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 그저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치부하기엔 숫자에 담긴 의미들이 마냥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정후의 땅볼 타구에 관해 "이정후를 믿고 기다려야 할 때"라고 끝맺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정후가 자신의 잠재력을 증명해야 할 때다. 그건 이정후가 책임져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이정후에게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