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헐리우드를 여는 트로이 목마였다
[유건식의 미디어 이슈]
[미디어오늘 유건식 성균관대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초빙교수]
2022년 제74회 에미상에서 '오징어 게임'이 헐리우드의 문을 여는 트로이 목마였다면, 올해 제76회 에미상에서는 '쇼군'이 헐리우드를 정복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5일 저녁 미국 LA 피콕 극장에서 TV 방송의 아카데미 상인 제76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이 캐나다 코미디언 유진 레비와 댄 레비 부자의 진행으로 열렸다. 부자가 사회를 본 시상식은 1949년 에미상 시상식이 열린 이래 처음이다. 2024년에는 에미상이 두 번 열렸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시상식이 두 번 열리는 일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천재지변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지만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이 있었는데, 2023년 에미상이 열릴 시기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의 동시 파업이다. 그런 만큼 제76회 에미상은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다.
제76회 에미상 수상 후보는 2023년 6월부터 2024년 5월까지 방송한 TV쇼를 대상으로 7월 17일 발표하였다. 넷플릭스가 107개(FX 93개, HBO·MAX 91개)로 가장 많은 후보를 냈지만, 프라임타임 부문에서는 FX가 33개로 넷플릭스 27개(애플TV+ 26개, HBO·MAX 23개)를 앞섰다. FX의 '쇼군'이 25개, '더 베어'가 23개로 가장 많은 후보를 냈고, 프라임타임 기준으로는 애플TV+의 '더 모닝쇼'가 11개, '더 베어' 9개,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과 '쇼군'이 8개로 많았다.
올해 제76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는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총 25개의 경쟁 부문과 하나의 공로상이 수여되었다. 프라임타임 에미상은 월트 디즈니 계열의 채널 FX가 휩쓸었다. 프라임타임 부문에서 FX는 9개, 넷플릭스 6개, HBO·MAX 6, 애플TV+ 2개, 코미디센트럴 1개 순이다.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까지 포함하면 FX 36개, 넷플릭스 24개, HBO·MAX 14개, 애플TV+ 9개, 피콕 3개, 코미디센트럴 2개 순이다. FX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드라마 시리즈 '쇼군'과 코미디 시리즈 '더 베어'가 각각 4관왕에 올랐고, TV 미니시리즈·TV 영화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프라임타임 에미상 수상 작품으로는 드라마 시리즈에서는 '쇼군', 코미디 시리즈에서는 '더 베어', TV 미니시리즈·TV 영화에서는 넷플릭스의 '베이비 레인디어'가 각각 4관왕을 차지하며 해당 부분을 휩쓸었다. '쇼군'은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을 수상했고, '더 베어'는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연출상을 차지했으며, '베이비 레인디어'는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극본상을 받았다. HBO·MAX의 '내 직장상사는 코미디언(Hacks)'도 작품상, 여우주연상, 극본상을 차지했다. 에미상 전체로는 '쇼군'이 25개 부문에서 후보작을 내고 18개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더 베어'는 23개 부문에서 후보작을 내고 11개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수상한 개인으로는 '베이비 레인디어'의 리차드 개드가 TV 미니시리즈·TV 영화 부문에서 남우주연상과 극본상을 수상하고, 작품상까지 차지했다. 이 부문은 리차드 개드를 위한 시상식 같았다.
제76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의 특징은 첫째, 2023년 작가와 배우 파업으로 TV쇼 제작이 안 돼 후보 작품이 급감하였다. 그 예로 버라이어티 스페셜(생방송)은 시상식을 하지 않았고, 대본 있는 버라이어티의 경우에는 '존 올리버의 래스트 위크 투나잇'와 'SNL' 두 작품만 후보에 올랐다.
둘째, OTT의 새로운 약진이다. 2020년 넷플릭스는 에미상 전체에서 170개의 후보작을 내어 HBO 107개보다 월등히 앞섰다. 올해에도 넷플릭스가 후보작도 수상작도 많이 냈다. 전통의 강호 HBO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대본형 버라이어티 작품상, TV 미니시리즈·TV 영화 여우주연상, 버라이어티 스페셜 작가상 등 3개밖에 수상하지 못했다. 반면 넷플릭스 6개, MAX 3개, 애플TV+ 2개, 피콕 1개 등 12개로 48%나 차지했다. 올드 미디어인 NBC, CBS, ABC는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다. 그나마 ABC 스튜디오 계열인 FX가 9개로 체면치레를 했다. 애플TV+에서 회당 150억 원을 투입한 '더 모닝쇼'는 아쉽게도 남우조연상 하나에 불과했다.
셋째, LGBTQ+의 인정이다. “심오하고 변혁적이며 오래 지속되는 기여”를 하는 창작자에게 수여하는 공로상은 TV에서 LGBTQ+의 가시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 공로로 그렉 버랜티에게 돌아갔다. 수상은 '도슨스 크릭'(2000)에서 소년 잭 맥피와 에단 역으로 역사적인 게이 키스를 한 매트 보머와 조슈아 잭슨이 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남편' 로비 로저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고, '트루 디덱티브'의 조디 포스터도 TV 미니시리즈·TV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소감에서 '부인' 알렉산드라 헤디슨에게 감사를 표했다.
양성애자라고 밝힌 리차드 개드는 '베이비 레인디어'에 트랜스젠더를 출연시켰다. 에미상 연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흑인 배우인 래번 콕스의 뒤를 이어 멕시코 출신의 배우 나바 마우가 '베이비 레인디어'로 여우 조연상 후보로 오른 최초의 여성 트랜스젠더이다.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트랜스젠더가 최초로 수상후보가 된 때는 제73회로 드라마 부문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른 MJ 로드리게스이다. 사회를 본 유진은 애플TV+가 LGBTQ+ 커뮤니티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생각한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넷째, 제76회 에미상에서 18개 부문을 수상한 '쇼군'의 의미다. '쇼군'은 17세기 일본의 정치적 암투를 다룬 드라마이므로 대부분의 일본 배우가 일본어로 연기를 하고 FX에서 자막으로 방송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사의 70%가 일본어인 드라마가 미국에서 흥행한 것은 한국 드라마의 약진이 토양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인은 외국 영화와 드라마를 더빙으로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한국 드라마 성공을 계기로 영어 자막으로 보는 데에 대한 저항이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추석 연휴에 '쇼군'을 몰아보기 했다. 기존 일본 사극보다 웅대한 스케일에 정치 암투를 서양인의 시각을 곁들여 다층적으로 멋지게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섯째, 프라임타임 에미상의 진행 포맷 변화다. 예전에는 마지막 시상식이 TV 드라마 시리즈 작품상이다. 이번에는 코미디 시리즈가 대미를 장식했다. 이는 일본인 배우가 주로 나오는 '쇼군'에 대한 부담감이라는 해석이다. 시상식 초반에는 '쇼군'을 의식하여 '더 베어' 최다 수상작을 몰아주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도 들게 했다. 코미디 시리즈는 '더 베어'와 '내 직장상사는 코미디언'는 미국인이 주된 배우이므로 자존심을 위해 시상식 순서를 바꿨다는 분석이다.
여섯째, 혼동스러움이 많다. 사회자 유진과 댄 레비도 OTT 서비스에 플러스가 붙은 것에 대해 혼동스러워했고, 출연자들이 기존 방송과 OTT(스트리머)를 혼동스러워 했다. '내 직장상사는 코미디언'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은 진 스마트는 수상수감에서 HBO와 MAX를 혼동했고, '더 베어'는 가족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다룬 작품으로 재미와는 거리가 먼데도 코미디 부분에서 상을 받았다.
올해는 한국 작품이나 한국인이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 TV조선에서 중계한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을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TV 미니시리즈·TV 영화 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리차드 개드가 소감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경계를 넓히고, 불편함을 탐험하고,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실패하라”고 업계에 당부한 말이다. 그의 말은 바로 K-콘텐츠의 위기인 우리 상황에 절실히 수용해야 하고, 또한 나에게 하는 충고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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