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채·상추·시래기 구해요” 뉴욕은 지금 ‘K식자재 쟁탈전’
<7> K팝·K드라마 못잖은 한식

미국 뉴욕 한식당들은 요즘 식자재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식당뿐만 아니라 일반 마트 곳곳에 K푸드를 찾는 사람들이 몰리는데 재료 공급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셰프들은 한국에서 직접 식자재를 공수해 오기도 하고, 뉴욕 현지에 밭을 개간해 농작물을 직접 키워 쓰고 있다. 한국 식재료만 전문으로 파는 ‘뉴욕판 마켓컬리’도 만들어져 성업 중이다.
K푸드는 미국인들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기네스 펠트로·카디비 같은 해외 유명 연예인들이 ‘한국식 스테이크’ ‘고추참치’ 등 한식을 인증하고, 뉴요커들은 점심시간에 샌드위치 대신 한국식 군고구마가 든 종이봉투를 쥐고 사무실로 돌아간다. 뉴욕 한식 파인 다이닝 ‘아토믹스’는 세계 미식 올림픽으로 불리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북미 전체 1등 식당으로 꼽혔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28개국 15~59세 2만64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자기 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인기 있다’고 응답한 K컬처 콘텐츠의 비율은 ‘K푸드’가 53.7%로 가장 높았다. 음악(51.2%), 뷰티(50.8%), 드라마(49%)는 그다음이었다. 미 뉴욕타임스 요리 칼럼니스트로 ‘고추장 캐러멜 쿠키’ 등 한식 기반 레시피(조리법)를 연재하는 에릭 김은 “음식은 한 문화를 총체적으로 경험케 하는 힘을 갖고 있다”며 “이제 미국의 거의 모든 식료품점에서 김치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K푸드가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작년 K푸드 수출액은 역대 최고인 114억6344만달러(17조587억원)를 기록했다. 2016년 60억5772만달러(9조144억원)에서 2배 가량이 됐다.

◇“이게 진짜 한국 맛“… 깻잎·냉이 농사짓는 뉴욕 셰프들
지난달 방문한 맨해튼 코리안타운의 유명 한식당 ‘종로상회’는 외국인들이 건물 밖까지 줄을 서 있었다. 과거 한국인 유학생·주재원 손님이 주를 이뤘던 이 식당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며 손님의 90% 이상이 외국인이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K푸드 식자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현지 식재료를 썼다가는 맛이 살지 않아 손님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최경림 종로상회 대표는 “상추도 한국산이 아니면 질겨서 못 먹는데 가격은 두 배가 넘는다”며 “어떻게든 한국 것을 써보려고 한국을 수백 번 다녀왔는데 도저히 단가가 안 맞았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너비아니’ 등 한식당을 운영하는 문준호 북미한식당협의체 회장은 “한국에서 1㎏에 2만원 하는 황태채가 여기선 24불(약 3만5700원), 1㎏에 5000원이면 사는 시래기도 뉴욕은 26불(약 3만8700원)”이라고 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후니 킴 셰프는 한국에 가서 장을 맛보고 직접 공수해 온다. 고추장, 된장 같은 장류는 한국 전통의 것이 아니면 맛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뉴욕에 밭을 개간한 셰프들
뉴욕과 뉴저지 사이 허드슨밸리 지역에는 축구장 절반 크기인 1에이커(약 1200평) 면적의 밭이 있다. 뉴욕의 레스토랑 ‘주옥’ 신창호 셰프, ‘주아’ 김호영 셰프,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 ‘옥동식’의 옥동식 셰프 4명이 뭉쳐 작년 3월 개간했다. K푸드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재료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의기투합한 것. 달래, 냉이 등 미국선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를 직접 키우기로 했다.

신창호 셰프는 매주 수·일요일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농부가 된다. 이곳에서 키운 깻잎은 작년 내내 식당에서 반찬으로 썼다. 가을엔 들깨도 수확했다. 들기름도 짜낸다고 한다. 작년에 키운 작물만 풋고추, 부추, 홍갓, 가지, 도라지 등 열 가지가 넘는다. 올해는 곰취, 섬초 등 봄나물을 키울 예정이다. 모두 미국 현지에선 수급하기 어려운 작물이다. 신 셰프는 “우리 손으로 정성껏 키운 채소라면 내가 가장 믿을 수 있어 자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는 “현지에서 마지못해 쓰는 ‘대체재’가 아닌 한국 본연의 맛을 뉴욕에서 구현하려는 시도”라며 “진짜 한국 맛을 원하는 해외 손님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뉴욕판 마켓컬리’에 줄 서는 유명 셰프들
K식자재 스타트업도 성업 중이다. 2019년 설립한 스타트업 ‘김씨마켓’은 ‘뉴욕의 마켓컬리’로 불린다. 한국 농산물을 정식 통관을 통해 들여와 온라인으로 판다. 뉴욕 미쉐린 2스타 프렌치 레스토랑 ‘장조지’ 등에 식자재를 공급한다.
최근 들어 매출 절반 이상이 일반 미국 소비자 대상인 이른바 B2C 영업에서 나오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알아보기 시작한 것. 서산의 쌀을 뉴욕에서 도정한 ‘골든 퀸’, 포항에서 가져온 고추장, 거창의 국수 면 등의 K푸드용 식재료가 식당과 일반 가정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쌀 4.5㎏(골든 퀸 기준)에 64.95달러로 9만원이 넘지만, 중국이나 다른 지역의 식자재에 비해 맛이 월등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라이언 킴 김씨마켓 대표는 “우리는 마케팅 직원이 없는데도 저절로 입소문이 퍼지더라”며 “진짜 한국 재료를 썼을 때 K푸드 ‘스토리텔링’이 된다는 점에서 유명 셰프들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식자재 해외 유통 전략 세워야”
미국 가정에선 고추장을 필두로 하는 ‘K소스’를 이미 다양한 가정 내 요리에 활용하고 있다. ‘고추장 버터 파스타’, ‘고추장 치킨 볶음’ 등 다양한 요리가 탄생하고 있다. K소스는 과거엔 마트의 ‘아시안’ 코너를 뒤져야 어렵게 찾을 수 있는 제품이었지만, 이제는 ‘트레이더 조’ 등 현지 마트 체인이나 편의점 일반 소스류 매대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미국 내 점포가 100곳이 넘는 미국 유명 한인 마트 ‘H마트’는 지난달 캘리포니아 더블린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당시 진 조시 더블린 부시장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H마트가 언제 개장하나요?’였다”며 “한국 식품점이 지역 주민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식품 업체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는 미국 만두 시장 점유율 1위이고, 2023년 처음 선보인 뒤 해외에서 800만개 이상 판매한 비비고 ‘냉동김밥’은 연평균 130%를 넘는 매출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K푸드의 인기가 높아지는 지금 식자재 해외 유통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같은 기관이 해외에 냉장 저장고 등의 시설 투자를 해서 수출 관계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며 “쌀은 지역 농협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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