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급 야구로 역전한 9위 팀
벌써 8회다. 종점이 멀지 않다. 그런데 아직 모른다. 스코어는 4-4,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 속이다. (19일 대전 이글스 파크, 롯데 자이언츠 – 한화 이글스)
원정 팀이 움직인다. 시작은 볼넷이다. 6번 전준우가 진루권을 얻었다. 뭔가 분위기가 쎄~하다.
홈 팀도 긴장감을 느낀다. 그냥 놔둘 수는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서둘러 투수 교체를 단행한다.
윤산흠을 내린다. 대신 이민우가 투입된다. 전민재가 삼진으로 돌아선다. 일단은 진정제가 작용했다.
하지만 복선이 깔린다. 상대의 대주자 카드다. 전준우 대신 한태양이 1루에서 호시탐탐 한다. 그리고 1사 후가 되자, 도발이 시작된다.
카운트 1-1이다. 3구째에 스타트를 끊는다. 2루를 여유 있게 훔친다.
이게 투수를 긁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강렬한 견제구를 쏜다. 그러다가 공이 빠진다. 베이스 하나를 더 내주고 만다. 1사 2루는 1사 3루로 변한다.
곧바로 장두성의 적시타가 터진다. 전진한 내야 수비를 살짝 넘기는 안타다. 그 사이 3루 주자가 편안히 홈을 밟는다. 균형이 깨진다. 스코어 5-4로 기울기가 생겼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사 후다. 장두성마저 2루를 넘본다. 역시 간단히 세이프된다.
타자는 황성빈이다. 때맞춰 중전 안타를 때려낸다. 약간 빗맞은 타구다. 2사 후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다. 2루 주자는 발걸음이 가볍다. 추가점이 올라간다. 6-4로 멀어진다.
다음 고승민 타석 때다. 세 번째 도발이 이뤄진다. 황성빈의 2루 훔치기다. 이번에는 상대도 눈치챘다. 공을 빼서(피치 아웃) 2루에 쏜다. 그런데 이것도 통하지 않는다. 2루심이 양팔을 벌린다.
8회에만 벌써 3개 째다. 2루 출입구는 비번이 털린 것 같다. 연속된 도루 허용이다. 그때마다 적시타가 이어진다. 승부는 여기서 결정됐다.

게임 흐름 바꾼 엄청난 ‘한 방’
이 대목만 보면 그렇다. 상대가 바뀐 느낌이다. 하위권(9위) 팀은 강력하다. 세련된 기동력으로 게임을 풀어낸다.
반면 중위권(전날까지 6위) 팀은 갑갑하다. 분명히 사전에 간파했다. 그래서 피치 아웃을 했다. 당연히 주자를 잡아야 한다. 그래서 이닝을 끝내야 한다. 그런데도 살려준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
흔히 말하는 기세다. 게임의 흐름이다. 강력한 상승세가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직전에 터진 일격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한 방’이다. 그게 모든 걸 바꿔버렸다.
막 8회 초가 시작된 시점이다. 선두 타자는 5번 한동희(26)다. 앞선 타석까지는 그저 그렇다. 볼넷 1개가 전부다. 나머지는 내야 땅볼과 삼진이다.
투수 윤산흠도 자신만만하다. 초구는 직구를 꼽는다. 147㎞짜리가 한복판을 통과한다. 스트라이크다. 다음 공 역시 마찬가지다. 148㎞짜리가 존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타자가 놓치지 않는다. 아니, 벼르고 있던 것 같다. 완벽한 타이밍을 만들어낸다.
배트와 공이 제대로 만났다. ‘빡!!!’ 터질 듯한 타구음이 폭발한다. 동시에 좌중간으로 빨랫줄이 널린다. 낮은 포물선은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살아간다. 급기야 펜스 너머로 사라진다.
4-4, 동점을 알리는 솔로 홈런이다.
타구의 주인공은 무덤덤하다. 열심히 베이스를 일주할 뿐이다.
그러나 3루 쪽은 난리가 난다. 벤치의 동료들이 펄쩍펄쩍 뛴다. 하이 파이브, 헬멧 두들기기…. 다양한 환영 인사가 이어진다. 바로 위 응원석도 마찬가지다. 덩실덩실 춤추는 팬들도 등장한다.
삽시간이다. 분위기는 자이언츠로 넘어간다.

발사각 18.2도 홈런의 의미
이 홈런은 보통이 아니다.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기술적으로 꽤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실투’로 평가된다. 직구가 몰렸다. 약간 몸 쪽이다. 그래서 장타를 허용했다. 그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우선 발사 각도가 심상치 않다. 겨우 18.2도에 불과하다. 흔히 말하는 라인드라이브다. 아주 잘 맞은 타구다. 그걸로 안타까지는 당연하다.
하지만 홈런은 또 다른 얘기다. 보통은 30도 안팎(25~35도)이다. 그래야 비거리에 유리하다. 통계적으로도 입증된다.
흔히 ‘배럴(barrel)’이라고 부른다. 타구 속도는 158㎞가 넘어야 한다. 각도는 26~30도 사이의 타구를 말한다. 이 조건일 때 홈런 확률이 극대화된다.
반면 20도 이하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러려면 다른 조건이 추가돼야 한다. 엄청난 타구의 속도가 필요하다.
이날 한동희의 타구는 시속 172.9㎞로 찍혔다. 그래서 낮은 각도에도 무려 130m나 날아간 것이다.
이 경기를 중계한 이택근 해설위원(TIVING)의 코멘트다.
“지금 저는 솔직히 그냥 좌중간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봤어요. 이런 타구의 퀄리티를 봤을 때, 이래서 우리가 고점이 높은 선수가 한동희 선수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당사자 역시 비슷하다.
“사실 타격 직후에는 홈런이 될 줄 몰랐어요. 2루타 정도를 생각했는데, 손이 잘 돌아갔던 게 홈런이 된 원인 같아요.” (경기 후 한동희)
공략한 코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몸 쪽이라서 장타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투구에는 분명 힘이 있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밀리거나, 빗맞기 십상이었다. 그런데도 완벽한 타이밍을 만들었다. 그만큼 기술적 완성도가 높았던 타격이다.

홈런 3개 모두 시속 170㎞ 초과
입단이 2018년(1차 지명)이다. 벌써 10년 차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완성이다. ‘기대주’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했다. 팬들은 반갑게 맞았다. 그도 그럴 법하다.
작년까지 상무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2군(퓨처스) 리그를 그야말로 씹어 먹었다. 100경기 타율이 무려 0.400(385타수 154안타)이다. 홈런도 27개나 쳤다. 115타점의 어마어마한 화력을 뽐냈다.
그런데 초반이 영 신통치 않다. 3~4월이 너무 조용했다. 23게임에서 타율 0.241에 그쳤다. 홈런은 없었다. 장타는 2루타 4개가 전부였다. 옆구리에 통증도 있었다. 햄스트링 증상도 겪었다.
결국 상동으로 가야 했다. 2군 행 통보다. 거기서 다시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추슬렀다. 조금씩 좋아졌다.
복귀하는데 12일이 걸렸다. 지난 주말 다시 1군 무대에 섰다. 잠실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3연전이다. 첫 경기에서 2루타를 신고했다. 예고편이었다.
이후 매 경기에서 제대로 폭발 중이다.
16일(토) = 동점 투런, 타구 속도 172.2㎞, 비거리 135m (잭 로그)
17일(일) = 선제 솔로, 타구 속도 174.4㎞, 비거리 133m (최승용)
19일(월) = 동점 솔로, 타구 속도 172.9㎞, 비거리 130m (윤산흠)
3게임 연속은 데뷔 후 처음이다. 무엇보다 타구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한결같이 170㎞를 훌쩍 넘는다. 그러다 보니 거리도 엄청나다. 130m 이상 까마득하게 날아간다.
모처럼 입이 귀에 걸린다. 김태형 감독의 코멘트다.
“오늘 경기 후반 한동희의 동점 홈런이 팀 분위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대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무서운 타자다. 부담감을 조금만 내려놓고 게임하면 지금처럼 좋은 타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