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블랙 팬서2', 페이즈4의 연속 실패 …MCU의 미래가 불안하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바스트 신이시여, 도와주세요"
'블랙 팬서:와칸다 포에버'(이하 '블랙 팬서2')는 신을 찾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선보인 28편의 히어로 영화 중 이토록 간절한 오프닝은 없었다. 마블 영화의 팬이라면 이 간절함의 이유를 알 것이다.
속편이 촬영되기 전 타이틀롤을 맡은 채드윅 보스만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기도 전에 마블 스튜디오와 감독, 배우들은 움직여야 했다. 이미 속편행 열차는 운행되고 있었고, 멈출 수 없었다.
이들에게 블랙 팬서 없는 블랙 팬서를 만드는 과업이 주어졌다. 1편에 이어 다시 메가폰을 라이언 구글러 감독은 채드윅 보스만인 척할 대행 블랙 팬서를 찾지 않았다. 대신 그의 부재를 스토리에 녹여내고, 서사 안에서 새로운 블랙 팬서를 탄생시키기로 결정했다.
오프닝에 등장한 목소리는 티찰라의 여동생 슈리다. 이 여성이 가지게 될 위치와 존재감을 암시하며 영화는 막을 연다. MCU 최초의 흑인 히어로라는 상징성을 가졌던 '블랙 팬서'는 2편에서 최초의 흑인 여성 히어로를 탄생시키며 의미를 쫓는 시간을 이어가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전편의 전통성도, 이 영화만의 고유한 재미도 획득하지 못했다.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던 페이즈4의 마침표를 찍은 또 다른 실패작이다.
◆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선택과 집중의 실패
국왕이자 블랙 팬서인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와칸다는 비브라늄을 노리는 강대국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아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여왕으로 복귀한 '라몬다'(안젤라 바셋)는 강인한 카리스마와 위엄으로 존재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슬픔과 실의에 빠진 딸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를 위로한다.
영화 초반 40여 분까지는 인상적이었다. 현실의 상황을 영화 속 서사에 녹여내며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가진다. 아프리카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 장엄한 장례식 역시 종전의 마블 영화에서는 본 적 없는 그림이었다. 또한 비브라늄을 소유한 또 다른 국가 탈로칸과 탈로칸을 이끄는 쿠쿨칸 '네이머'(테노치 우레르타 메히아)를 등장시키며 흥미를 돋웠다.
그러나 와칸다에 닥친 위기, 수중 국가 탈로칸의 수면화, 네이머의 위협, 슈리의 고뇌, 리리 윌리암스의 등장 등 나열만 하기에도 너무 많은 이야기다. 이 모든 에피소들을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라는 한 편의 작품에 욱여넣었다. 그러다 보니 러닝타임은 무려 2시간 40분에 이른다.
긴 영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MCU 팬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어벤져스' 시리즈는 평균 2시간 30분 내외의 긴 러닝타임을 자랑했다. 이 영화들은 장중한 서사와 다채로운 볼거리, 다음 시리즈에 대한 무수한 떡밥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시계를 들여다볼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블랙 팬서2'는 구심점 없는 스토리를 중구난방으로 펼쳐내며 산만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블랙 팬서라는 강력한 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와 같은 마인드로 반찬 가짓수를 잔뜩 늘렸지만 무엇이 메인 디쉬인지도 모르겠고, 그 어느 것 하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 흑인·여성·동성애…시대적 흐름이라지만, 주입식 PC는 글쎄
'블랙 팬서'는 최초의 흑인 히어로라는 상징성으로 MCU내에서도 특별한 입지를 확보한 영화다. 와칸다라는 국가를 비브라늄을 보유한 세계 최강국으로 설정하고 흑인의 역사를 투영한 스토리와 흑인 문화를 전면적으로 내세워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전 세계 16%가 넘는 비율을 자랑하는 흑인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설정만으로 이 영화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의 짧고 강렬한 데뷔전에 이어 솔로 영화에서 구체화된 '블랙 팬서'의 서사는 재미와 의미를 모두 획득한 시의적절한 결과물이었다. 물론 시대적 흐름에 부합해 과대평가된 면이 없지 않지만, '블랙 팬서'가 가진 캐릭터의 매력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이토록 근엄하고 품위있는 리더가 있었던가. MCU의 양축이었던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은퇴한 상황에서 블랙 팬서는 향후 MCU를 이끌 히어로로 점쳐지기도 했다.
1편이 흑인 히어로의 탄생과 활약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2편의 여성 히어로의 성장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와칸다를 이끌고 있는 여성들의 활약도 전면 부각됐다. '블랙 팬서2'는 사실상 '여성을,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라를 기치를 내세웠다.
상업영화 속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는 다양성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블랙 팬서2' 문제는 PC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이 자연스럽지가 않다는 것이다. 스토리 안에 녹아든 형태라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침투해있어 다문화주의, 여성주의에 대한 공감을 높인다기보다는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건 마블 영화의 태생적 본질이 오락 영화이기 때문에 오는 반감이기도 하다.
메시지와 의도도 상업영화의 절대적 가치인 재미와 어우러질 때 의미가 강화된다. 두 요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자칫 영화가 관객을 가르치려 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는 '블랙 팬서2'만의 특징은 아니다. 페이즈4의 영화들은 전반에 걸쳐 PC주의 안에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결과물들은 만든 이들의 포부에 달리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 '2대 블랙 팬서' 슈리, 약한 존재감은 앞으로도 숙제
히어로의 탄생기는 성장 서사의 공식을 따른다. '블랙 팬서2'의 슈리 역시 갈등과 시련, 각성과 성장의 시간을 거쳐 블랙 팬서로 거듭난다.
그러나 슈리는 2대 블랙 팬서다운 존재감과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 채 영화에서 겉돈다. 감독은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갑작스레 후계자가 된 슈리의 고뇌와 혼란을 담아내는 것 만큼 새로운 블랙 팬서로서의 캐릭터 디자인에 공을 들였어야 했다. 알을 깨고 나와 나라의 명운을 건 전쟁을 하는 새 블랙 팬서의 위용은 기대를 밑돌았다. 준비되지 않은 듯한 히어로에게 수트를 입혀놓고 설정과 권능을 부여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감탄하고 응원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안이한 판단이다.
'블랙 팬서2'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라몬다 여왕을 연기한 안젤라 바셋과 네이머 역할의 테노치 우레르타 메히아다. 전자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짧은 분량을 능가하는 존재감을 뽐낸 경우고, 후자는 탄생 서사에 긴 분량을 투자한 결과다. 주인공이 아닌 두 배우가 영화에서 가장 돋보였다는 건 주인공 역할을 해야할 배우가 존재감을 뽐내지 못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여기에 리리 윌리암스라는 천재 과학자는 이 영화에 있어서 사족에 가깝다. 탈로칸의 등장과 탈로칸과 와칸다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지만 영화 속 활약을 생각하면 있으나 마나 한 캐릭터에 그쳤다. 이 캐릭터가 향후 디즈니 플러스의 '아이언 하트'로 재탄생될 것이라는 정보를 안다면 왜 '블랙 팬서2'에 등장시켰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그러나 페이즈4에서부터 두드러지고 있는 영화와 TV시리즈의 강력한 연계는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는 떨어뜨리고, 관객을 영화에 이어 OTT로 유인하려는 의도된 상술이 읽힌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선사한다.
볼거리 측면에서도 퇴보했다. '블랙 팬서' 시리즈의 최대 약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전투신 연출의 취약함은 2편에서는 더욱 두드러지며 세계 최강국이라는 영화 속 설정마저 위태롭게 할 정도다. 이쯤 되면 제작비 2억 5천만 달러(한화 약 3,352억 원)의 활용에 대한 관객의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페이즈4의 영화들은 위기에 봉착한 MCU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대표 히어로들이 은퇴한 자리는 샹치, 이터널스 등으로 채워 넣으려 했지만 신상 히어로들은 대부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10년 넘게 진화를 거듭하며 '오락영화의 끝판왕'으로 군림했던 마블은 최근 3년 동안 퇴보 중이다. 혹자들은 매력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고 추동했던 핵심 캐릭터들은 퇴장했기에 예상된 결과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블만 이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듯 페이즈4에서 무리하게 판을 키웠고, 메시지를 부각했으며, 재미를 잃었다.
페이즈4는 한마디로 마블의 오만이 빚은 패착이다. 10년 넘게 쌓아온 공든 탑이 흔들리고 있다. MCU의 미래가 걱정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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