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속인 80만 시대
굿 한 건에 1천 만
불안이 만든 신앙
국내 무속인 수가 최근 20년 사이 약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 약 20만 명 수준이던 무속인은 2024년 기준 약 80만 명에 이른다.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종교적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무속 신앙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특히 점집이나 신당을 찾는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민 문화심리학자가 펴낸 저서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무속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통제 욕구에 대응하는 하나의 심리적 기제로 작용한다.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26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한국인은 신적 존재에 대한 신뢰도는 낮으나 종교적 행위나 영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같은 저서에 따르면 무속은 개인에게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며 불안을 완화하는 기능을 한다. 정신건강 전문가가 현재의 감정에 집중한다면 무속인은 "언제쯤 어떤 운이 들어오니 어떤 방향의 일을 해보라"는 식으로 조언하며 의뢰인이 상황을 해석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같은 조언은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플라시보 효과와 자기실현적 예언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구조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무속업에 종사하는 청년층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 외곽에서 활동 중인 20대 무속인 A 씨는 올해로 6년 차로 업계에서는 '애동제자'로 분류된다. 이는 입문한 지 10년 미만인 무속인을 지칭하며 신의 뜻을 온전히 전달하기에는 아직 이른 단계로 여겨진다.
A 씨는 어린 시절부터 이상한 현상을 경험했고 이를 무시하고 지내다 병이 발생하면서 무속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무속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설명했다.

무속인의 수입은 일정하지 않다. A 씨는 상담만 진행되는 달에는 100만 원도 벌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나, 굿이 몰리는 시기에는 한 건당 300만 원에서 최대 1,000만 원까지 수입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월수입이 1,500만 원을 넘는 때도 있지만 고정 수입이 없는 구조상 경제적 안정성은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무속업은 감정노동 강도 역시 높다. 그는 상담 중 웃는 사람보다 우는 사람을 더 많이 보며, 손님의 문제를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그 과정을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밝혔다. 특히 "선생님 덕분에 버텼어요"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고 했다.
사회적 편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과거보다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속인을 향해 '사기꾼 같다', '돈을 밝힌다'는 시선을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는 굿 비용이 비싸 보일 수 있으나, 제물과 의상, 인건비 등이 포함돼 실제 수익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무속인을 소개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한 것과 관련해 그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상담을 하지 않은 이들이 후기를 남기고 신의 메시지를 평점으로 평가하는 구조는 업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건 맛집이 아니다. 신과 인간이 마주하는 자리인데 후기나 평점으로 소비되면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타로나 신점이 유행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견해를 밝혔다. 타로는 손으로 다루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무속은 영적 존재 그 자체라고 선을 그었다. 타로를 활용하는 무속인이 늘고 있지만 그는 이를 무속 본연의 정체성을 흐리는 행위로 평가했다. 무속인을 고를 때는 듣기 싫은 말도 전할 수 있는 사람, 신의 뜻을 진지하게 전달하려는 태도를 가진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A 씨는 무속업을 시작한 것도, 은퇴를 결정하는 것도 본인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신이 맡긴 일을 끝까지 수행해야 하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까지는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무속인이란 신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무속은 여전히 다양한 해석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불확실성과 불안이 확산한 시대 속에서 무속이 제공하는 정서적 위안은 여전히 상당수 사람에게 하나의 현실적 선택지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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