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내고가도 아깝지 않은 식당 6
안녕. 회사 생활 수년 동안 라식을 못 하고 있는 객원 필자 김여행이다. 회사에서 주로 안경을 쓰다 보니 라식 할 생각 없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당연히 하고 싶다. 후회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본 글라스-프리의 삶을 소망하면서도 여태까지 하지 못한 이유는 라식을 위해 사나흘치 휴가를 한 번에 쓰기가 도무지 아까워서다. 여행도 가야 하고, 먹으러도 다녀야 하고. 아무리 안경에서 벗어나고 싶다 한들 가장 우선하는 이 취미에 연차를 탈탈 털어 할애하고 나면 남는 연차가 없다. 올해 얼마 남지 않은 연차마저도 이미 먹을 계획으로 꽉 차 있는 실정이다.
여행이야 그렇다 치고 연차를 먹으러 가는 데에 쓴다는 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평일만 문을 열거나 주말은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웨이팅이 있는 식당, 워낙 예약이 힘들어서 갈 수만 있다면 평일이라도 감지덕지인 식당 등이 나의 연차 대상이다. 차라리 아예 없는 곳인 셈 치는 게 좋을 수도 있겠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맛있다. 맛있다는 말을 넘어 특별하다. 이렇게 직장인의 빛과 소금, 목숨과도 같은 휴가도 아깝지 않을 특별한 식당 6곳을 소개해본다.
01
온지음 레스토랑
맛공방 온지음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전통적인 의식주 문화에 담긴 가치를 보존하고 과거에서 현재, 미래까지 이어나가는 전통문화 연구소다. 온지음을 방문하는 건 단순히 근사한 식사를 한다는 것을 넘어 시대를 잇는 고유한 문화유산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과 같다.
단 한 가지 수고로움은 평일만 문을 연다는 것. 저녁에 방문할 수도 있지만 퇴근하자마자 가도 빠듯할뿐더러 경복궁 돌담길과 함께 찬란한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낮 풍경이 무척이나 각별해서 기꺼이 연차를 쓰고 점심에 방문하게 된다.
메뉴는 두 달 주기로 바뀐다. 계절에 따라, 주제에 따라. 주제는 지역과 시대를 넘나든다. 어느 때에는 부산이다가 언젠가는 또 개성이다. 조선 궁중 음식뿐 아니라 더없이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려 개성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서울은 물론 각 지역의 향토 음식이나 내림 음식 모두 아울러 연구하고 선보인다. 그저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해석을 담아 과거에서 찾은 유산을 현재로 잇고,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서비스에서도 한국적인 정서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늘 메뉴판에 없는 음식들이 중간중간 함께 차려진다. 한 접시에 담겨 일행끼리 각자 나누어 먹게 되는 음식이 꼭 있고, 반찬은 부족하다면 더 청할 수도 있다. 서구적인 파인 다이닝에서는 쓰이지 않지만 한식에서는 당연시 여겨지는 방식. 이른바 정으로 통하는 맥락이 그대로 존재한다. 음식뿐 아니라 음식을 즐기는 방식까지도 고유한 문화라고 본다면, 온지음만큼이나 한식 문화를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는 파인 다이닝은 우리나라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 때, 누구와 가도 좋지만 특히 가을에는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의 금빛 물결이 장관이다. 혼자 감상하기에는 무척 아까운 풍경이라, 주변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 간다면 분명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주소 | 서울 종로구 효자로 49 온지음 4층
02
스시야 도산대로점
수상할 정도로 수요일만 연차를 썼던 시기가 있다. 분당에 있던 스시야를 가기 위해서였다. 워낙 예약하기 어려운 곳이다보니 평일 점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맛인가 하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당시 분당 스시야의 헤드 셰프였던 이정운 셰프가 새로이 서울 도산대로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주로 저녁 영업만 하고 있기에 연차를 쓸 일은 없어졌으나 지금도 평일 런치의 기회만 생긴다면 언제고 연차를 낼 준비가 되어있다. 늘 운영하지는 않고 비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평일 런치는 12만 원선. 당연히 디너의 구성이 더 좋지만 런치 또한 가격을 생각하면 아주 만족스럽다.
요리사의 생명은 재료라 했던가.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서도 스시는 재료가 7, 실력이 3이라 했다. 그렇다고 재료만 좋으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훌륭한 식당일수록 한끗 차이로 치열하다. 이정운 셰프의 스시야는 네타는 물론, 특히나 샤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보다 혀에 착 감겨드는 샤리를 도무지 만나본 적이 없다. 이상적인 네타와 샤리가 만나 스시가 되는 순간. 입안에서 사라지는 것조차 아쉬워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스시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주소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150 2층
03
안주마을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안주마을이라면 연차를 내고 가더라도 인정해 줘야 한다. 오전 11시에 웨이팅을 등록하면 오후 7시에나 들어갈 수 있다는 어마무시한 웨이팅으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평일 낮이라면 시도 해볼 만 하다. 얼마 전 평일인 수요일에 방문했는데 오후 12시 30분경 웨이팅을 걸고 1시 30분쯤 들어갔다. 이 정도 차이라면 평일이 상당히 준수하다고 볼 수 있겠다.
뭐가 그렇게 유명하냐면, 전국 각지에서 온 그날의 가장 좋은 해산물을 안주 삼을 수 있다. 당연히 철마다 메뉴도 바뀐다. 얼마 전에는 산란기가 끝나 기름기가 오를 대로 오른 남해산 가을 고등어로 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바삭바삭한 껍질 속 고소하고 부드러운 지방의 맛, 촉촉한 속살. 안 시키면 서운한 청어알 비빔밥을 김에 싸서 고등어구이를 큼직하게 올려 먹으니 이곳이 지상낙원이구나 싶었다.
뭘 먹어도 성공이지만 꼭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역시 한치회. 겉을 살짝 그을려 은은한 토치 향이 나는 와중에 쫀득쫀득하고 달큰한 맛이 일품이다. 그 밖에도 청어회, 병어무침, 낙지볶음 등등 뭐든 실패가 없다. 상호가 안주마을인 만큼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곳이기에 요리의 간이 자극적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반대다. 볶음이나 무침도 생각보다 깔끔한 선에서 맛깔나다. 오히려 그래서 술에 물 탄 듯, 안주에 술 탄 듯 술술 들어간다고나 할까.
거기다 평일에 낮술을 한다는 약간의 배덕감 또한 즐거운 안주가 된다. 보통은 소주를 많이 마시지만 막걸리나 전통주도 구비 되어 있어 취향대로 마시면 된다. 청주를 좋아한다면 ‘화랑’을 추천하고 싶다. 사장님도 지나가시며 ‘안주마을 안주에 화랑 너무 잘 어울리죠.’하셨을 정도니 보장된 페어링이라 할 수 있겠다. 산미도 적절하고 달큰한 향도 있으나 깔끔하고 목 넘김이 부드럽다. 화랑 한 잔, 한치회 한 점이면 남부러울 것이 없다.
주소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길 3
04
키이로
이곳을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연차를 낼 수 있다. 예약을 도전해 볼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예약이 어렵다. 대관을 한다고 하더라도 1년 이상을 기다려야 될까 말까다. 덴푸라 오마카세가 4만 원이라는 것부터 구미가 당기는 요소지만, 연차를 내고서라도 가고 싶은 마음은 그 두 배를 지불하더라도 만족스러울 맛에 있다.
튀김만 계속해서 먹는다면 느끼하거나 질리지는 않을까 염려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중 일본에 갈 때마다 덴푸라 오마카세를 먹으러 가는 지인의 ‘맛있는 덴푸라는 먹고 나서도 전혀 느끼하지 않다’는 말에 직접 경험해보고자 키이로를 방문했고, 결과는 앞서 기술한 바와 같다. 구름처럼 사뿐하고 폭신한 튀김옷을 입은 제철 채소와 해산물. 먹는 동안에는 기름의 고소한 향이 함께하지만 먹고 난 뒤에는 입안이 깔끔하다. 여기에 샴페인을 곁들이면 더 바랄 게 없어진다. 잘 튀긴 당근은 놀랍도록 달콤하고, 마무리로 오차즈케까지 먹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어진다.
처음 코스를 시작할 때 눈앞에 오늘 준비될 덴푸라의 재료를 가지런히 담아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부터 근사하다. 처음 덴푸라 오마카세를 경험해 보기에도 부담 없는 가격에, 맛도 있고 접객도 좋다. 예약이 힘들다는 점만이 유일한 진입장벽이라면, 언제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
주소 |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652 2층 206호
05
포폴로피자
한국에서 피자 좀 먹어봤다고 말하려면 포폴로는 가보고 논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오너 셰프인 유준환 셰프가 2023 나폴리 피자 세계 챔피언십 S.T.G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 아시아 2번째로 우승한 이후 더욱 인기가 많아진 피제리아다. 다른 부문도 아닌 STG는 나폴리 피자 전통 방식에 따라 만든 마리나라, 마르게리따를 심사하는 것인데 이 부문에서 우승했다는 건 피자의 근간이 되는 기본 요소부터가 완벽하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주말은 아침에 웨이팅을 걸어도 저녁으로 먹어야 할 만큼의 각오해야 하는 곳이지만, 굳이 시간을 내어 일산까지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그나마 평일은 웨이팅이 오픈 시간 기준으로 한 두 시간 내외라고 하니 포폴로도 갈 수만 있다면 평일에 가는 게 유리하다. 긴 웨이팅이 지친다면 포장해서 근처 공원에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화덕에서 나오자마자, 피자 위 흐르는 치즈가 굳기도 전에 먹었을 때야말로 포폴로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구태여 웨이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두가 먹는 대표 메뉴인 포폴로 클라시카는 쫄깃하고 고소한 도우 위에 산뜻하고도 감칠맛 넘치는 토마토와 향긋한 올리브 오일, 열기로 살짝 녹아 부드럽게 흐르는 고소한 부라타 치즈와 짭쪼름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각자 다른 방향성으로 돋보이고 구운 가지와 바질이 화룡점정의 감동을 선사한다. 먹고 나면 박수가 절로 나온다. 마리나라 혹은 마르게리따 또한 둘 중 하나는 꼭 먹어야 하는데 고르기 어렵다면 둘 다 먹자. 어차피 화덕 피자는 1인 1판이 기본이다.
주소 |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로 43-20 센트럴플라자 102호, 103호
06
금돼지식당
5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돼지고깃집은 어떨까. 맛있다. 연예인도 많이 방문해 한류 열풍을 타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는데, 만약 서울에 와서 처음 먹어보는 코리안 바베큐가 금돼지식당이라면 게임 첫판부터 최종 보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싶은 감상이다. 따로 예약을 받지 않아 현장 웨이팅을 해야 하는데 최소 3~4시간 정도. 관광객도 찾아오는 곳이라 평일에도 사람은 많지만, 평일 점심이라면 저녁보다는 낫다.
금돼지식당의 특징은 ‘클래식한데 모던하다’라 할 수 있겠다. 두 가지 상반된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기란 쉽지 않은데,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낸다는 점이 금돼지가 내외국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일단 연탄불 위에서 서버가 정성껏 구워준다. 사이드나 식사도 별다른 것 없이 심플하게 김치찌개 정도. 껍데기를 제외하면 흔한 양념육도 없다. 오로지 고기 맛 자체로 승부를 본다. 하지만 곁들이는 쌈은 상추나 깻잎이 아닌 바질쌈이다. 소주도 판매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하이볼에 강점이 있다. ‘클래식한데 모던함’ 그 자체.
본삼겹은 껍데기를 살려 쫀득한 식감과 함께 고소한 지방과 부드러운 고기가 감동스러운 하모니를 이룬다. 눈꽃목살은 씹자마자 입안에서 육즙이 팡팡 터지고, 등목살은 쫄깃하면서 고기맛이 진하다. 껍데기도 요즘의 부드럽고 지방 많은 스타일이 아니라 쫀득하고 깔끔한 스타일인데 어찌나 야들야들한지. 돼지고기야말로 굽는 스킬이 중요한데 워낙 각자의 매력을 잘 살려 구워주다 보니 어느 부위가 제일 맛있는지를 논하기가 무색하다.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다가 한 번씩 불판에 끓인 멜젓에 잘 구워진 고기를 푹 찍고 향긋한 바질에 쌈 싸 먹는 것도 무척 별미다. 바질잎이 이렇게 색다른 느낌으로 돼지고기와 어울릴 줄은. 웨이팅이 관건이기는 해도 정말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주소 | 서울 중구 다산로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