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TK 통합 소동’, 그래도 오답노트는 남겼다
‘일장하몽(夏夢)’이었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행정 통합 논의가 3개월 만에 엎어졌다. 8월27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구·경북 행정 통합을) 더 이상 진행하는 건 무의미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사실상 파기 선언에 가까웠다.
중앙 정치권과 수도권 언론, 여타 지역에서 이 사건은 매우 국지적인 해프닝으로 여겨졌다. 거대 광역자치단체 두 곳의 통합이 이렇게 빨리 진행된 것도 이례적이었으며, 여타 사회적 이슈와 달리 여론이 무르익기도 전에 파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수년을 끌어오다 결국 가덕도·대구경북 각각의 공항 건설로 귀결된 ‘동남권 신공항’ 이슈나 ‘부울경 메가시티’ 논쟁처럼 중앙 정치권에서 화제를 모으지도 못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 문제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대구·경북 행정 통합의 추진, 그리고 무산 과정에서 살펴봐야 할 무수한 교훈이 존재한다. 3개월간의 ‘일장하몽’은 그 자체로 한국 지방행정이 직면한 다양한 과제를 보여준다.
대구와 경북은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한 1981년에 헤어졌다. 이후 40년 넘게 한국식 광역시·도 체제는 공고했다. 최근에는 제주, 강원, 전북처럼 ‘특별자치도’로 변모하는 지역도 있지만 지자체 간 경계나 각 행정단위의 위상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경제와 인구가 모두 성장하던 시절 한국은 광역시가 지역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고 이를 각 도가 감싸는 구조로 자리매김했다. 광역시와 도는 꾸준히 협력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대구·경북이 다시 통합을 고려한 것은 2020년대 들어서다. 대구와 경북 모두 수도권에 인구를 빼앗기고, 지역의 경제적 활력을 살려야 한다는 고민 끝에 ‘통합’ 카드를 꺼내들었다. 처음 논의를 이끈 이들은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당시 대구시장이다. 2021년 4월에 발표된 ‘대구경북행정통합기본계획(안)’에는 당시 통합론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행정 분리 기간 동안 지역 경제는 정체되었다. 지방을 지탱해온 생산시설의 수도권·해외 이전으로 지방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대구·경북 행정 통합을 통해 경기도, 서울시에 이어 세 번째 규모의 자치단체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통합 논의는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그라졌다. 통합 방식을 놓고 대구와 경북이 갈등하기도 했고, 섣부르게 통합을 추진한다는 지역 내 반대 목소리도 컸다. 통합 실무 테이블이었던 공론화위원회는 ‘행정 통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부재하고, 시·도민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며 통합을 2022년 지방선거 이후 중장기 과제로 미뤘다.
당시 미뤄둔 논의는 올해 5월 다시 등장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중앙정부의 지원을 통한 빠른 통합을 강조하며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논의 테이블을 되살렸다. 6월2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이 동석한 관계 기관 간담회에서 대구와 경북은 “행정 체제 개편을 적극 지원하겠다”라는 중앙정부의 약속까지 받아냈다. 6월부터 8월까지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뒤따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구와 경북은 2020~2021년 통합 논의 때보다 더 극명한 철학의 차이를 드러냈다. 여기서 등장한 관점의 차이는 대구·경북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제기될 문제로 부각됐다.
경북 신도시·신청사의 딜레마
먼저 홍준표 대구시장이 생각하는 ‘통합’은 하나의 ‘거대 도시’를 의미한다. 통합대구시를 주장한 홍 시장은 중국 쓰촨성 청두시를 벤치마킹하는 방식으로 행정 통합에 접근했다. 우리에게는 〈삼국지〉 촉한의 성도로 유명한 청두시는 중국 서부 내륙지역에 위치한 인구 2140만명의 거대 도시다. 청두시의 면적은 1만4000㎢를 넘어 크기가 경북(1만8424㎢)에 필적할 정도다. 4월25일부터 4월29일까지 청두시를 방문한 홍 시장은 5월17일 대구·경북 국회의원 당선자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두시 자체가 2500만이다. 대구의 10배다. 청두시에서 돌아오면서 우리 대구·경북도 통합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청두행 전까지 홍 시장은 대표적인 통합 비관론자였다. 2022년 7월5일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통합을 한다? 난센스 중의 난센스다”라며 대구·경북 통합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청두 방문이었다. 7월14일에 공개된 TBC(대구 민방) 특별 대담에서도 홍 시장은 “(중국) 청두란 도시가 하늘길 열고 통합을 해서, 거대 도시가 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을 했다. 한적한 시골이 중국의 4대 도시로 지금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돌아오면서 통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청두시 모델’은 2020~2021년 대구·경북 통합 당시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구상이다. 꾸준히 대구·경북 통합 필요성을 주장했던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생각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모델을 구상 중인 두 지자체장의 의견 충돌이 드러났다. 특히 통합 이후 행정 체제에 대해 대구와 경북의 생각이 달랐다. 홍 시장은 중앙정부-특별시로 이어지는 2단계 행정을 강조했지만, 이 지사는 정부-도-시·군으로 이어지는 현행 3단계 행정을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대구는 통합대구시가 그 자체로 특별시와 같은 기능을 하길 바란다. 서울특별시가 25개 구를 관할하는 것처럼 통합대구시가 좀 더 큰 권한을 가지고 대구·경북 전체를 관할하는 구조다. 이때 경산·구미·상주 등 시·군 기초자치단체는 서울의 ‘구’와 같은 성격을 띤다. 정책 결정의 권한과 힘이 좀 더 광역자치단체에 집중되는 구조다. 홍준표 시장은 8월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31개 기초자치단체가 각개전투하는 모습보다는 통합특별시장이 중심이 되어 혁신 체제를 갖추자는 데 (통합의) 목적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기대했던 통합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광역지자체가 상당 부분 넘겨받고, 과거 도의 권한 중 일부를 하위 단위인 시·군에 추가 분배하는 방식에 가깝다. 일종의 ‘도 기능 확장’ ‘양적 확장’이다. 8월27일 경북도의회 본회의에 참석한 이 지사는 통합의 기대 효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중앙에서 권한을 가지고 오면 도에서 가지고 있던 권한도 시·군에 넘겨주는 것이다. (지금은) 시·군에서 30층 이상 건축허가를 내지 못한다. 도에서 한다. (통합 대구·경북이) 중앙으로부터 권한을 다 가지고 오면, 시·군에 (건축허가와 같은)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 우리(통합 광역지자체)가 (개별 시·군이 하는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결국 시·군 권한을 강화해야 하는데, 대구는 ‘구’처럼 하겠다고 한다. 모든 계획을 광역 정부에서 하겠다는 뜻이다. 시장·군수 권한을 줄였을 때 시·도 통합이 되겠나? 불가능한 일이다.”
서로 다른 두 그림은 청사 배치 문제에서도 충돌했다. 경북은 현재 경북도청 이전 신도시(안동·예천)에 조성한 도청사와 대구시 청사 두 곳에서 행정을 나누어 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대구시는 안동 북부청사(현 경북도 청사), 대구청사, 포항 동부청사로 3분할해 행정을 총괄하자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대구의 구상이 경북의 역린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청사 위치 문제는 2020~2021년 통합 논의 당시에도 뜨거운 감자였다. 특히 경북 입장에서 ‘신도시·신청사의 기능 약화’는 가장 우려스러운 미래다.
여기서 잠깐 경북 신도시·신청사의 딜레마를 살펴보자. 경상북도는 2008년, 대구시에 위치해 있던 경북도청을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평면 일대로 옮기겠다고 발표한다. 이 지역에 신청사를 중심으로 신도시를 조성해 그동안 포항·구미 등에 비해 낙후된 경북 북부지역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마침 당시 중앙정부 역시 국토 균형발전을 추진하며 지역별 혁신도시를 확대하던 분위기였다.
경북은 새로 만드는 ‘도청 이전 신도시’를 2027년까지 완성해서 인구 10만명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시점에서 이러한 장밋빛 미래는 요원해 보인다. 도청 이전은 2016년에 마무리했지만, 도청을 둘러싼 신도시 조성사업은 총 3단계 사업 중 1단계만 마무리한 상황이다. 땅을 사고 구획은 나누었지만 건물은 올리지 못한 곳이 부지기수다. 2단계, 3단계로 조성하기로 했던 토지는 여전히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다.
신도시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수요 부진 때문이다. 일자리가 충분치 않은 신도시는 행정기관 직원을 제외하면 인구가 늘어날 만한 요인이 많지 않다. 오히려 신도시를 조성해 아파트와 상가를 몰아넣었을 때 외부에서 인구가 유입되기보다는 인근 지역 원도심 인구를 흡수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행정기관 이전을 통해 신도시 건설을 추진한 전남(남악 신도시)과 충남(내포 신도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홍준표 ‘비효율’ vs 이철우 ‘비민주’
그 때문에 경북 북부지역에서는 대구·경북 통합보다 미완성 상태인 도청 이전 신도시 정상화가 먼저라고 주장한다. 8월27일 경북도의회에서 이형식 도의원(예천)은 이렇게 말했다. “(도청 이전) 신도시를 걸을 때마다 참담하다. 사업비 2조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10만 자족인구를 만든다는 목표였지만 지금 인구는 계획 대비 22%에 불과하다. 신도시 상가 1200여 곳 중에 절반 정도는 빈 점포에 전단지만 날리고 있다. (통합 시) 지역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도청 신도시를 포함한 북부권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대구의 주장대로 통합될 경우, 경북 북부지역의 신청사가 발휘할 수 있는 행정력의 범주는 좁아질 것이고, 산업시설이 많은 남부(대구 포함) 위주로 재편될 거라고 경북 북부 지역민들은 우려한다.
한편 이러한 북부지역 시·군의 반발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동안 ‘통합 비관론’을 품어왔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시·군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소지역주의 문제 때문이다. 홍 시장의 통합론에는 특별시(광역지자체)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필요에 따라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쏟아내는 구상이 포함되어 있다. 자원을 시·군별로 나누어 분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관점이 홍 시장의 말과 행보에서 자주 발견된다. 특히 이런 관점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구·경북의 다른 쟁점, 대구경북 신공항 문제에서도 불거진다.
민간 공항과 군 공항이 함께 이전하는 대구·경북 신공항은 경북 의성군 비안면과 대구 군위군(공항 부지 확정 후 대구에 편입) 소보면 일대에 지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신공항 화물터미널 위치를 두고 의성군의 반발이 상당하다. 의성군은 연계 산업단지 조성이 가능한 활주로 서쪽에 화물터미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토교통부는 비용이 절감되는 활주로 동쪽에 화물터미널을 두자고 제안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그런데 의성군의 이러한 반발에 대해 홍준표 대구시장은 ‘플랜 B’를 언급하고 있다. 9월20일 대구시 간부회의에서 홍 시장은 “플랜 B가 가동되지 않도록 경북도와 의성군은 늦어도 10월 말까지 국토부와 국방부가 제시한 안에 대해 수용해줄 것을 요청한다”라며 강경 대응했다. 여기서 플랜 B란 이미 합의한 군위·의성 신공항 예정지를 군위군 우보면 일대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홍준표 시장은 9월11일에도 “의성군의 행태를 보면 화물터미널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토지 수용 때 보상가격을 두고 또 집단 떼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홍준표 시장의 이러한 주장에 경북은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9월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터미널 입지 문제는 국토부와 의성군이 당사자다”라며 대구시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홍 시장이 주장하는 플랜 B에 대해서도 “홍 시장이 주장하는 입지 변경은 왕조시대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대구·경북이 일어설 기회를 한 사람의 독단으로 놓쳐서는 안 된다”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 지사가 공개적으로 홍 시장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 것은 이날 기자회견이 처음이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독단’ ‘왕조시대’ 같은 표현을 꺼내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구·경북 통합을 확정하는 방식에서도 대구와 경북은 엇갈렸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주민투표 없이 각 지자체 의회 의결을 거치는 속전속결 방식을 주장했고,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주민투표를 거쳐 절차적 정당성을 더 확보하는 안을 주장했다. 주민투표를 하느냐 안 하느냐는 통합까지 걸리는 시간에 차이를 보인다. 속도를 중시하고 중앙집권적 행정 시스템을 통해 비효율을 줄이려는 ‘홍준표식 모델’과, 현행 절차와 시스템 내에서 양적 통합을 이루자는 ‘이철우식 모델’이 여러 측면에서 충돌하는 형국이다. 홍 시장은 ‘비효율성’을, 이 지사는 ‘비민주성’을 상대방에 대한 비판의 논거로 활용한다.
홍준표 시장의 ‘파기 선언’ 이후 대구·경북 통합 논쟁은 일축되는 분위기다. 다만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형식적으로나마 9월 들어 행정 통합 논의가 재개되기는 했다. 9월6일 관계 기관 간담회에 참석한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도 통합 논의 재개 소식을 알고 있다. 적극 지원해서 어떻게든 성사시키라는 지시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지원해서 합의점을 찾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그러나 통합의 방향성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인지한 상황에서, 합의 또는 대안 도출이 쉽지는 않다.
중앙정부에서 대구·경북 통합 논쟁에 적극 개입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어느 지역에 살든 공정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주장했고, 지난해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주장과 달리 수도권 집중화는 집권 이후에도 가속화되었고, GTX 확대를 비롯해 수도권 인프라에 자원을 쏟아붓는 정책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구·경북 통합은 현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일종의 성과로 작동한다.
대구·경북 통합 문제는 여타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광주·전남, 충청권(대전·세종·충북·충남) 광역지자체 행정 통합안 등이 각 지역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시·군 단위 통합도 입에 오른다. 경남 진주·사천, 전북 전주·완주, 충남 천안·아산, 전남 목포·무안 등 기초자치단체 간의 연계성을 강화하려는 행정 통합 논의도 국지적으로 남아 있다. 이런 논의 가운데 대구·경북은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여겨진다.
대구·경북 통합 문제는 ‘광역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광역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대구·경북, 광주·전남, 부산·경남, 대전·충남·충북의 관계가 서울·인천·경기의 관계처럼 대도시와 인근 위성도시로 기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도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작동한다. ‘부산이 경남 인구를 뺏어간다’ ‘경북 인구는 여전히 대구로 향한다’ ‘지방 외곽도시에 살면서 일자리는 광역시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와 같은 서사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전대욱 연구위원은 “오히려 지방 광역시는 수도권과 반대”라고 지적한다. 수도권과 달리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오히려 광역시가 베드타운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일터는 외곽에, 거주는 광역시에서
주간 인구와 정주 인구의 차이를 바탕으로 추출한 주간인구지수를 살펴보면 좀 더 수치화된 비교가 가능하다. 2020년 기준 서울의 주간인구지수는 108.8이었다. ‘주간 인구가 정주 인구보다 더 많은 구조’다. 그러나 대전(99), 광주(97.2), 대구(94.7), 부산(99.4) 등은 모두 100 이하를 기록해 인천(94.2)이나 경기(94.5)와 같은 구조를 보인다. 반대로 경북(103.5), 전남(102.2), 충남(103.1) 등은 서울처럼 정주하는 사람보다 주간에 찾아오는 인구가 더 많다. 예상과 달리, 광역시가 각 지역에서 ‘미니 서울’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주거지로서 기능한다는 의미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대욱 위원은 “일터는 외곽에 있는데, 자녀 교육이나 자산 가격 때문에 광역시에서 거주하는 이들도 존재한다”라고 설명한다. 광역시가 베드타운이 됨에 따라 광역 단위의 재편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 통합을 단순히 몇몇 정치인의 치적 쌓기로 볼 것이 아니라, 40년간 유지돼온 광역시·도의 행정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구·경북 통합 시도와 그 좌절은 마냥 해프닝으로 일축할 일이 아니다.
대구·경북 행정 통합은 부울경 메가시티와 같은 듯 다른 경로를 밟고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광역화된 환경(교통 등)을 먼저 만들고, 사람들이 광역권 내에서 더 많은 교류를 하게 한 뒤 행정 통합은 나중에 천천히 고민하자’는 접근에 가까웠다. 그래서 통합 방식에 대한 지자체 간의 갈등이 전면에 불거지진 않았다. 그러나 대구·경북 통합은 행정 통합을 먼저 이룬 뒤 광역화된 인프라를 더 효율적으로 조성하려는 접근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지자체 간 협상과 갈등이 부각된다. 어떤 방식이 수도권에 대항해 인구를 지키고 자생력을 갖추는 방식인지는 논쟁의 영역이다. 다만 2010년대 후반부터 불거진 광역시·도 관계 재편 움직임은 다가오는 비수도권 인구 위기에 대응하는 나름의 노력으로 볼 여지도 있다. 비록 속도감 있는 통합 논의는 ‘일장하몽’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지방행정 체계의 적극적인 변화 시도는 앞으로 더 빈번히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구·경북 통합 논의에서 나타난 ‘관점의 차이’를 전국 각지의 정책 담당자들이 진지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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