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공포의 제구력을 가졌던 투수

이혜천, 이름만 들어도 KBO의 좌타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투수죠. 그런데 이 선수, 원래 오른손잡이였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소 여물 만들다 작두에 손가락이 끼이면서 오른손 약지가 절단되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왼손으로 야구를 시작했고, 부산상고 시절부터 ‘좌완 파이어볼러’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8년, OB 베어스(현 두산)에 2차 2라운드 12번으로 입단. 전통적으로 좌완 투수에 목말라 있던 팀이 큰 기대를 걸었던 재능이었죠.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더 무서웠던 투수

이혜천을 상대했던 좌타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이 어디로 올지 몰라서 무서웠다.”

투구폼도 독특했지만, 제구가 너무 불안정해서 맞을까봐 피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공이 몸으로 날아올까봐 무서웠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몸쪽 승부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혜천. 공포의 좌완, 그 자체였죠.

불펜으로 6년 연속 50경기 이상 출장, 역대 최연소 500경기 출장 신기록까지. 두산 좌타자들이 “같은 팀이라 다행이다”고 말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습니다.

선발 전환으로 류현진의 3관왕을 위협하다

2005년부터 선발로 보직을 바꾸면서 이혜천은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됩니다. 완봉승도 기록하고, 평균자책점 2점대 중반으로 리그 상위권을 유지했죠.

그리고 2006년, 류현진이 신인 첫 해에 탈삼진·다승·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하며 3관왕을 노릴 때, 이혜천은 바로 그 마지막 자책점 타이틀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유일한 투수였습니다.

후반기 들어 자책점이 다소 오르긴 했지만, 당시 류현진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인 제구를 보여주며, 두산 팬들 사이에선 “올해 진짜 이혜천 미쳤다”는 말이 나왔죠.

일본 진출… 그러나 무난한 결과

2008년 FA를 앞두고는 다소 부진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일본 진출에 성공합니다. 야쿠르트에서 2년간 뛰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고, 결국 KBO로 복귀합니다.

복귀 후에는 NC 다이노스로 이적했지만, 예전 같은 구위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2015년을 끝으로 KBO에서 은퇴합니다.

마지막까지 잊혀지지 않는 존재감

이혜천은 리그에서 가장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아니었지만, 가장 예측할 수 없는 공을 던졌던 투수였습니다. 포크볼처럼 떨어지는 슬라이더, 불안정한 제구, 그리고 왼손에서 날아오는 묵직한 한 방. 좌타자 입장에선 마치 "도박"처럼 타석에 들어가야 했던 상대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