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가장 나쁜 타이밍에 가장 나쁜 일이 벌어진다.
새 팀, 새 계약, 새 시즌. 모든 것이 시작을 향해 정렬된 순간이었다. 김하성은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1년 2000만 달러에 FA 계약을 맺었다. 샌디에이고에서 4년을 보낸 사내가 새 유니폼을 받아 든 그 겨울,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프로는 돈이고, 계약은 기대다. 그 기대를 짊어진 채 그는 한국에서 몸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빙판길에 미끄러졌다.
오른손 중지 힘줄이 파열됐다. 수술대에 올랐다. 시즌 시작은커녕 글러브를 끼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겨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야구 밖의 일상에서, 야구 선수의 오른손이 망가졌다.
이후의 시간을 우리는 '재활'이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 부른다. 하지만 재활이라는 건 숫자로 채워지는 시간이 아니다. 테이프와 얼음찜질과 조용한 실내,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자 견디는 감각들이다. 옆에서 동료들이 스프링캠프를 열고, 시범경기를 뛰고, 개막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동안 김하성은 마이너리그 더블A 더그아웃에 앉아 있었다.
4월 말, 콜럼버스 클링스톤스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섰다. 그다음 주에는 트리플A 그위넷 스트라이퍼스 소속으로 공을 받아쳤다. 9경기 동안 19타수 5안타. 숫자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요점이 아니었다. 요점은 다시 서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5월 13일, 트루이스트 파크.
226일 만이었다. 지난 시즌 피츠버그 파이리츠전에서 유니폼을 벗은 뒤 딱 226일. 그 사이 지구가 몇 바퀴를 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김하성의 시간은 그 부상 순간에서 멈춰 있다가 이날에야 다시 흘렀다.
8번 타자, 유격수. 소박한 자리다. 하지만 소박함에는 정직함이 있다.
첫 타석은 3회말이었다. 컵스 선발 콜린 레아와 7구 풀카운트 승부를 펼쳤다. 쉽게 내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결과는 2루수 땅볼이었지만 1루 주자를 2루로 보내는 진루타였다. 다음 타자 야스트렘스키의 적시타로 선제점이 났다. 작은 기여였지만 야구는 늘 그런 식으로 연결된다.

두 번째 타석은 3루수 뜬공. 세 번째 타석에서는 볼넷을 골랐다. 제구가 흔들리는 투수를 상대로 흔들리지 않고 기다렸다. 시즌 첫 출루였다.
타격보다 더 선명했던 건 수비였다.
4회초, 1사 만루 위기. 컵스의 바예스테로스가 세게 뻗은 타구가 2루 베이스 쪽으로 날아갔다. 안타가 될 법한 방향이었다. 그런데 김하성이 쫓아갔다. 잡았다. 2루에 던졌다. 아웃. 만루에서 최소한의 실점으로 이닝을 넘겼다. 경기는 애틀랜타가 5-2로 이겼다. 3연승.
3타수 무안타 1볼넷. 숫자만 보면 초라하다. 하지만 숫자란 언제나 다음 이야기의 시작점일 뿐이다.

한 겨울 빙판길에서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수술을 받고, 조용한 재활실을 견디고, 마이너리그 더그아웃에서 다시 감각을 끌어모아 돌아왔다. 안타는 없었다. 그래도 수비에서 몸을 날렸고, 볼넷 하나를 선택했고, 팀은 이겼다.
야구는 그런 스포츠다. 한 번에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증명해준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