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Governance)를 분석합니다.
캄보디아 소재 부영크메르2(BOOYOUNG KHMER II) 법인의 과반수 지분이 지난해 말 부영그룹 오너 일가에게 이전됐다. 지분을 취득한 인물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과 그의 딸 이서정 부영주택 전무다. 재벌 오너 일가의 해외 계열사 지분 직접 취득은 이례적인 일이다.
부영크메르2는 부영그룹이 캄보디아 프놈펜시에 건설하는 최초의 주상복합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법인으로, 2023년 기준 자산총액이 7000억원이 넘는 기업이다. 부동산 개발에 따른 투자와 매몰 비용 탓에 지금은 자본잠식(약 2700억원) 상태이지만 분양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기존 계획대로 개발이 이뤄질 경우 상당한 기대 차익을 예상해도 좋을 기업으로도 분석된다.
10일 ㈜부영이 2024년 5월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공개한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에 따르면 이 회장과 이 전무는 부영크메르2 지분 9.8%, 46%를 각각 취득해 보유(부영그룹의 2024년 대기업집단 지정일 기준) 중이다. 부녀의 합산 지분율은 55.8%로, 부영크메르2 법인의 과반수 지분율을 넘겨 보유하고 있다.
그 1년 전만 하더라도 부영그룹 오너 일가는 부영크메르2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이 회장은 2023년 5월30일 공시에서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국외 계열회사 현황으로 부영라오(이 회장 보유 지분 34.29%)를 보고했다. 부영크메르2는 총수 일가 지분 보유 계열사로 보고하지 않았다.
부영그룹 계열사들이 공시한 내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부영크메르2 최대주주는 황금연씨였다. 황금연씨는 부영크메르 법인장으로 확인된다. 황 법인장은 2015년부터 부영크메르2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황 법인장의 부영크메르2 지분은 2015년과 2016년에 51%였고 2017년부터 지분율이 낮아져 46%를 보유하고 있었다. 2014년까지는 김정환 전 부영씨앤아이 대표가 부영크메르2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회장과 이 전무가 부영크메르2 지분을 보유한 시기는 2024년이다. 부녀 외에도 정덕순씨가 부영크메르2 지분 5%를 보유하고 있다. 정덕순씨는 공정위에 보고된 총수 일가 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은 인물이다. 정덕순씨가 언제부터 부영크메르2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재벌 총수 일가가 해외 계열사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일은 흔치 않다. 공시와 규제가 국내 법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이유로 총수 일가의 해외 계열사 지분 보유 자체가 탈세 등 부정적 시선을 받을 수 있어서다. 간혹 총수 일가의 강력한 투자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해석 되기도 하지만 흔한 사례는 아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국 소재 오글테크놀로지(OGLE TECHNOLOGY INC.)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이 기업은 신기술 발굴 및 연구개발 사업을 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다수의 일본 계열사(패밀리, 롯데그린서비스, 광윤사) 지분율 보유하고 있고 신 회장 일가(신동주, 신영자, 신유미, 서미경) 역시 일부 해외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영국령 케이만군도 소재 아이에이홀딩스(I.A. Holdings Limited) 지분 100%와 독일 기업 엘비인터내셔널(LB International Gmbh)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미국 소재 에프엑스피(FXP LLC) 및 와이씨에스피(YCSP LLC) 지분을 각각 62.88%, 10%씩 갖고 있다. 박 전 회장 일가(박진원, 박석원)도 이 회사 지분 일부를 보유 중이다.
이 외에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국 로봇 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21.27%를 갖고 있다. 정 회장의 사촌동생인 정문선 현대BNG스틸 부사장은 트리니온아메리카(TRINION AMERICA, INC.) 지분 100%와 트리니온멕시코(TRINION MEXICO S.A. DE C.V.)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재벌 기업 총수 대부분은 부영그룹 사례와 달리 투자 초기부터 해당 해외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부영크메르2는 부동산 개발 목적으로 2007년 설립됐다. 설립 17년 만인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시에서 지하 4층~지상 21층·4개동·1474가구 규모 후분양 아파트를 완공, 공급하고 있다. 프놈펜시에서 2만호를 단계적으로 공급하는 '미니 신도시' 부영타운 개발의 주체이기도 하다.
부영크메르2의 캄보디아 부동산 개발 비용은 대부분 국내 본사인 부영주택에서 빌린 돈으로 충당했다. 2023년 기준 부영크메르2가 부영주택에서 빌려간 자금은 3150억원이다. 2023년 기준 부영크메르2의 부채총액이 9851억원이고 부영크메르2가 별다른 조달 루트가 있을 만한 기업 상황이 아님을 감안하면 대부분 부영그룹에서 빌려간 자금일 것으로 추정된다.
재벌 총수 일가가 국내 계열사에서 수천억원의 자금을 빌려 개발 사업을 벌인 해외 계열사의 과반수 지분을 취득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총수 일가가 지분을 새로 취득한 이후 해당 계열사의 실적이 크게 좋아진다면 문제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너 일가가 과반수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해외법인(부영크메르2)에 계열사인 국내 법인(부영주택)이 자금을 대여해주고, 주택개발로 얻는 성과의 절반 이상을 오너 일가가 갖고 가는 구조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2023년까지 부영크메르2의 자본총액은 마이너스(-) 2774억원이다. 2024년에도 이 재무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영크메르2가 2024년부터 후분양 아파트의 판매에 들어간 만큼 2025년 이후 시점에서는 분양에 성공하는 즉시 분양 성과가 대부분 부영크메르2 당기 실적에 플러스(+)로 바로바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부영크메르2의 캄보디아 개발 사업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일각에서는 부영그룹의 뚝심, 그리고 캄보디아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 등을 이유로 성공 가능성을 점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캄보디아 역시 부동산 경기 둔화세를 겪고 있어 분양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김진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