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홈플러스, ‘질서 있는 정리’가 답이다

법원, 회생 연장해도 내용은 자산매각 시간벌기

산은 빠지고 유암코 주저…메리츠는 담보채권자

‘2028년 흑자’보다 1만6000명의 ‘현실’ 고려해야

낮아진 익스프레스 몸값…대형마트 쇠퇴의 단면

기업회생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모든 회생이 부활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회생은 시간을 벌기 위한 절차이고, 어떤 회생은 청산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완충장치입니다. 지금 홈플러스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그 중간 어디쯤입니다. 겉으로는 회생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점점 정리 수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법원은 홈플러스에 다시 시간을 줬습니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달 30일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가결기간을 기존 5월 4일에서 7월 3일까지 두 달 더 연장했습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이 진행 중이고,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림그룹 계열 NS홈쇼핑과 후속 절차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홈플러스 노조는 법원의 회생계획안 제출 시한 2개월 연장 결정을 환영하며 “직원 월급을 포기해서라도 영업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간이 곧 회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번 연장은 회생의 신호라기보다 팔 수 있는 자산을 팔기 위한 시간벌기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모두가 회생을 말합니다. MBK파트너스는 김병주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의 자택 등 개인 재산을 담보로 1000억 원의 긴급운영자금, 이른바 DIP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여당의 주선으로 우리금융 계열사에서 어렵게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NS홈쇼핑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해 매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2028년 흑자전환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노조는 단식 농성을 벌였고, 정치권은 태스크포스를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모두가 “살리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정작 살릴 힘이 있는 주체들은 조용히 발을 빼고 있습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홈플러스 지원 요청에 선을 그었습니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직접 개입하기 어렵다, 개입할 공간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산업은행은 홈플러스 채권단도 아닙니다.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민간 유통기업에 공적자금을 넣을 명분도 약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자금 거절이 아닙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보기에 이 사안은 국가기간산업 구제가 아니라 사모펀드 MBK의 투자 실패와 민간 채권자인 메리츠금융의 여신 회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살릴 힘 있는 곳은 발 빼는 현실

유암코도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유암코는 공기업은 아니지만 은행권이 출자한 공적 성격의 구조조정 전문 플랫폼입니다. 유암코에는 연초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윤우 사장이 새로 취임했습니다. 여당 의원이 직접 나서 사정을 했지만 진전이 없습니다. 노조와 정치권은 유암코가 제3자 관리인으로 들어와야 시장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유암코로서는 홈플러스 사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임금 체불, 납품대금, 점포 폐쇄, 인력 구조조정, 지역상권 문제가 모두 얽혀 있습니다. 구조조정 전문기관조차 머뭇거리는 사안이라면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홈플러스 회생은 돈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인데 그 신뢰는 이미 크게 훼손됐습니다.

남은 것은 메리츠금융입니다. 그러나 메리츠는 전략적 회생 주체가 아니라 담보채권자에 불과합니다. 홈플러스 회생채권 시인액 2조5758억 원 가운데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의 의결권 합계는 약 49%입니다.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습니다. 메리츠는 홈플러스 점포 60여 곳을 담보로 가진 최대 채권자입니다. 메리츠가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에 못이겨 추가자금을 넣을 수는 있지만 이는 홈플러스를 장기적으로 살리겠다는 산업적 판단이라기보다 회수율을 극대화하겠다는 금융적 판단일 가능성이 큽니다. 담보채권자에게 회사의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리금 회수입니다.

이런 것들이 홈플러스 회생의 본질적 한계입니다. 산업은행이 빠지고, 유암코도 부담스러워하고, 메리츠금융은 전략적 회생 주체가 아니라 담보채권자이며, 익스프레스 매각대금은 2000억 원 이하로 떨어져 기대보다 낮고, 대형마트 업황은 구조적으로 나쁩니다. 이런 상황에서 ‘2028년 흑자전환’을 전제로 1.6만 명 직원들에게 계속 버티라고 하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희망 고문’에 불과합니다.

28년 흑자전환이라는 ‘희망 고문’

홈플러스와 MBK가 법원에 낸 2028년 흑자전환 시나리오도 믿기 어렵습니다. 회생계획안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2028회계연도에 영업이익 335억원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매출 목표는 5조5500억 원 수준입니다. 영업이익률로는 0.6% 안팎입니다. 그런데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2025년에만 영업이익 1293억 원을 냈습니다. 홈플러스가 어렵게 그리는 흑자 규모가 경쟁사 창고형 할인점 한 사업부의 이익에도 크게 못 미칩니다. 이 정도면 부활의 청사진이라기보다 회생에서 졸업한 뒤 다시 팔 수 있는 회사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한 손익계산서상의 ‘화장’(Make-up)에 가깝습니다.

더구나 그 흑자전환은 너무 많은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DIP 자금이 확보돼야 합니다. 익스프레스 매각이 차질 없이 끝나야 합니다. 납품업체들이 다시 상품을 공급해야 합니다. 점포 폐쇄 비용이 통제돼야 합니다. 인력 구조조정이 큰 충돌 없이 진행돼야 합니다. 남은 점포의 매출과 마진도 회복돼야 합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쉽지 않습니다. 하나만 어긋나도 전체 시나리오가 흔들립니다.

홈플러스의 최근 실적은 이미 경고음을 냈습니다. 2024회계연도 영업손실은 3141억 원, 당기순손실은 6758억 원이었습니다. 2021회계연도 이후 4년 연속 적자입니다. 유동자산은 8578억 원인데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부채는 2조6499억 원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아닙니다. 사업모델과 재무구조가 동시에 흔들리는 위기입니다.

더 불편한 숫자도 있습니다. 법원이 지정한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은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를 약 2조5000억 원, 청산가치를 약 3조7000억 원으로 평가했습니다.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약 1조2000억 원 높다는 뜻입니다. 회사를 계속 굴리는 것보다 정리하는 편이 채권자에게 더 낫다는 신호입니다.

업황도 홈플러스 편이 아닙니다. 온라인 유통은 이미 한국 유통시장의 대세가 됐습니다. 2026년 3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비중에서 온라인은 60.6%, 대형마트는 8.1%에 그쳤습니다. 같은 달 대형마트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15.2% 감소했습니다. 대형마트는 2024년 2분기 이후 8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식품과 생필품까지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대형마트가 과거의 집객력을 되찾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홈플러스의 경쟁자는 옆 동네 마트가 아니라 쿠팡, 네이버, 컬리, SSG 같은 플랫폼입니다.

쿠팡·네이버·컬리를 이길 수 있나

그런데 홈플러스가 내놓은 해법은 성장보다 축소에 가깝습니다. 직원 수는 회생절차 개시 전인 2025년 2월 1만9924명에서 2026년 4월 기준 1만6450명으로 줄어듭니다. 3474명, 17.4% 감축입니다. 회사는 이를 통해 인건비 16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정리 대상 점포 41곳 중 19곳은 연내 영업 종료할 계획입니다. 동광주점, 유성점, 야탑점, 서수원점, 진해점 등 5개 점포를 팔아 4075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있습니다.

그러나 점포를 팔고, 사람을 줄이고, 알짜 사업부를 매각한 뒤 남는 홈플러스는 어떤 회사입니까. 더 작고, 더 약하고, 더 투자 여력이 없는 대형마트 본체입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단순한 매각 자산이 아닙니다. 이커머스와 근거리 장보기 시대에 홈플러스가 활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미래형 자산입니다. 이것을 팔아 현금을 마련하면 당장은 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는 본체는 더 무거운 대형마트일 뿐입니다.

직원들에게 가장 잔인한 시나리오는 청산 그 자체가 아닐 수 있습니다. 더 잔인한 것은 회생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에 걸쳐 천천히 무너지는 것입니다. 임금이 밀리고, 퇴직금 지급이 불안하고, 점포 폐쇄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조금만 더 버티라”고 말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빚을 떠안기는 일일 수 있습니다. 같은 직장을 잃더라도 빈손으로 잃는 것과 생활비를 위해 대출을 끌어다 쓴 뒤 잃는 것은 다릅니다. 회복 시간도 다르고, 삶의 피해도 다릅니다.

‘회생’이라는 단어 뒤에 숨는 비겁함

그렇다고 정리하자는 말이 곧 전면 폐업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질서한 청산’이 아니라 ‘질서 있는 정리’입니다. 익스프레스는 매각하되 고용승계 조건을 최대한 붙여야 합니다. 핵심 점포는 유통 대기업, 농협 하나로마트, 코스트코, 지역 유통업체, 부동산 개발 사업자 등 가능한 매수자에게 개별 매각해 고용을 이어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자가 점포 중 비핵심 부지는 디벨로퍼와 부동산 펀드 등에 매각해 복합시설 전환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임차 점포는 임대차 해지와 전환배치를 병행해야 합니다. 정리 대상 노동자에게는 충분한 유예기간과 법정 퇴직금 이상의 위로금, 재취업 지원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조화된, 질서 있는 정리’입니다. 청산보다는 훨씬 인간적입니다.

정치권은 “홈플러스를 살리겠다”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1만6000명 넘는 직원, 협력업체, 입점업주, 지역상권이 걸린 사안에서 “정리하자”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표가 걸려 있고,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는 근거 없는 낙관을 파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홈플러스 직원들을 위한다면 회생이라는 단어 뒤에 숨지 말고 임금과 퇴직금, 고용승계와 전직 지원, 대주주 책임과 채권자 손실분담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진짜 문제는 이 합리적 결정을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MBK는 손실 확정을 미루고 싶고, 메리츠금융은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 싶고, 정부는 대규모 실업을 떠안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결정을 다음으로 미룹니다. 법원은 두 달을 더 줬고, 시장은 두 달을 더 지켜볼 것입니다. 그 사이 근로자들과 협력업체만 불확실성에 갇힙니다.

홈플러스 사태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청산이 아닙니다. 청산 또는 과감한 정리가 현실적 선택지임을 알면서도 ‘회생’이라는 단어 뒤에 숨는 비겁함입니다. 산업은행도, 유암코도, 메리츠금융도, 정부도, 그리고 MBK 자신도 이미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1만6000명 근로자들에게 진실을 말할 때입니다. ‘회생’이라고 쓰지만 ‘정리’라고 읽습니다. 그것이 홈플러스의 현주소입니다. 안타깝지만 더 이상 ‘희망 고문’하지 말고 ‘질서 있는 정리’에 나서야 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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