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팬알기] ⑳ KBO & 베어스 역사속 출루율상 이야기

『두산은 MVP와 신인왕에다가 최다득점상(89득점)의 고영민, 최고출루율상(0.457) 김동주를 배출했다. 투수 부문 최다탈삼진상(178개)은 한화 류현진이 받았고, 최다세이브투수상은 삼성 오승환(40세이브), 최다홀드상(23)은 LG 류택현이 받았다.』 <2007년 10월 31일자 뉴시스>
두산 베어스는 2007년 의미 있는 개인 타이틀 수상자를 내놓았다. KBO 출범 첫해부터 타자 부문 공식 개인 타이틀 시상 분야였지만, 유난히 인연이 없던 출루율왕을 창단 후 26시즌 만에 처음으로 배출했기 때문이다.
[베팬알기-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기록 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KBO와 베어스 역사 속 출루율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출루율은 과거엔 야구 기록과 통계의 관심사에서 변방에 머물러 왔지만 현대야구에선 주류로 진입해 각광을 받고 있다. 책이나 영화로 나온 '머니볼'에서 알려진 것처럼 오히려 타율보다 출루율이 팀 득점에 더 기여하는 지표로 확인되면서 선수를 평가하는 핵심 항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MLB, NPB보다 먼저…세계 최초로 시상한 KBO 출루율
출루율(出壘率). 메이저리그에서는 ‘On Base Percentage(OBP)’ 또는 ‘On Base Average(OBA)’라 일컫는다.
원래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 브랜치 리키와 통계 전문가 앨런 로스가 1954년 처음 고안해 발표할 때는 ‘On Base Average(OBA)’였다. 하지만 최근엔 메이저리그에서도 ‘On Base Percentage(OBP)’로 통용되고 있다.
야구에서 타자가 아웃되지 않고 누(壘)에 살아나간 비율(퍼센티지)을 설명하는 용어다.
흥미로운 점은 KBO가 프로 출범 원년인 1982년부터 출루율을 공식 개인 타이틀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원년 KBO 타자 개인 타이틀은 총 6개였는데 ‘트리플 크라운’을 형성하는 전통의 타이틀 ▲타율 ▲홈런 ▲타점 외에 ▲승리타점 ▲도루 ▲출루율 부문이 추가됐다.
오히려 메이저리그(MLB)와 일본프로야구(NPB)보다 먼저 공식 시상 타이틀이 됐다는 점이 특이하다.
MLB에서는 1984년부터, NPB에서는 1985년부터 공식 타이틀로 인정 받았다. 그러니 MLB보다 2년, NPB보다 3년 앞서 KBO가 세계 최초로 출루율을 공식 시상식 부문에 포함시킨 것이었다.
이는 한국야구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통계학적·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의 선구자 역할을 한 고 박기철 기록위원(전 스포츠투아이 부사장) 덕분이다.
그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76학번) 출신의 공학도였지만 야구의 기록과 통계에 심취해 1982년 KBO 원년 공식기록원으로 입사했고,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 기록의 기초를 정립하고 체계를 잡았다.
출루율의 가치를 일찌감치 주목한 그는 KBO 원년의 공식 타이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MLB와 NPB에서도 시상하지 않고 있는 타이틀”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너무 앞서 나갔기에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KBO 김창웅 홍보실장이 박기철 기록위원의 건의를 받아들이면서 공식 타이틀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의 고집으로 KBO 출루율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빛을 보게 됐다.

◆베어스 구단엔 좀처럼 열리지 않은 출루율왕의 문
이처럼 시대를 앞서 나간 KBO 출루율상이지만, 베어스 구단과 인연을 맺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원년 MBC 청룡의 백인천을 시작으로 2006년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까지 KBO리그에 존재했던 모든 구단이 출루율 1위 수상자를 한 번 이상 배출했지만, 유독 베어스 구단만 그때까지 출루율왕의 문을 열지 못했다.
2006년 이전까지 베어스 역대 선수 중 2위에 오른 선수도 찾을 수 없다. OB 베어스 시절엔 1982년 윤동균이 0.433의 출루율로 3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순위였다.

두산 베어스 시절로 넘어와 2001년 심재학이 0.473의 높은 출루율로 2위까지 올라갔다. 예년 같으면 출루율왕을 거머쥘 수도 있는 기록. 실제로 이 수치는 KBO 역대 8위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출루율이다. 현재까지 베어스 역사상 단일 시즌 최고 출루율 기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해 심재학은 불운하게도 2위에 머물렀다. 같은 해 롯데 외국인타자 펠릭스 호세가 KBO 역사상 최고 출루율 기록을 작성했기 때문이었다. 호세는 그해 0.503의 출루율로 1982년 백인천(0.502)의 기록을 깨고 KBO 단일 시즌 최고 출루율 신기록을 작성했다. 심재학은 그해 타율(0.344) 부문에서도 LG 양준혁(0.355)에 밀려 2인자가 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 다음으로 2003년 ‘두목곰’ 김동주가 0.450의 출루율로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왕관을 쓰는 데 실패했다. 그해 김동주는 베어스 구단 역사상 최초로 타격왕(0.342)에 올랐지만 출루율 부문에서는 현대의 ‘헤라클레스’ 심정수(0.478)에 밀리고 말았다.

◆첫 수상자 김동주 배출까지 26년…2위 양준혁과 단 1리 차
철옹성처럼 버티던 출루율왕의 문은 2007년 마침내 열렸다. 최초의 주인공은 역시 정교함과 장타력, 선구안을 모두 겸비한 ‘두목곰’ 김동주였다.
2003년 2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재도전에 나선 김동주는 그해 0.457의 출루율로 자신의 단일 시즌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출루율왕에 등극했다. 쉽사리 허락된 왕관은 아니었다. 그해 2위 삼성 양준혁(0.456)과는 불과 1리 차이였다. 이는 역대 출루율 부문 1~2위의 격차가 가장 적은 사례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출루율왕 싸움에서 김동주가 승리했다.
이렇게 베어스는 창단 후 26번째 시즌 만에 마침내 출루율왕을 내놓으며 한을 풀었다. 베어스가 아직 1위와 인연을 맺지 못한 장타율을 제외하면 첫 타이틀 홀더 배출까지 가장 오랜 세월이 걸린 부문이 바로 출루율이다.

한번 물꼬가 트이자 연이어 경사가 터졌다. 2008년까지 2년 연속 출루율왕이 나온 것. 이번엔 김현수(현 LG 트윈스)가 주인공이었다. 0.454의 출루율을 기록하면서 2위인 SK 박재홍(0.420)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2006년 두산 육성선수로 유니폼을 입은 김현수는 입단 3년 만에 생애 첫 타격왕(0.357)과 최다안타왕(168개)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다시 인연이 끊겼다. 베어스는 2007년의 김동주와 2008년의 김현수 단 2명의 출루율왕을 배출했을 뿐이다. 2009년의 김동주(0.455), 2018년의 양의지(0.427)가 도전했지만 아쉽게 2위에 머물렀다.

◆출루율왕 최다 배출은 삼성 10회…kt만 유일하게 미완
1982년부터 2024년까지 43차례 출루율왕이 탄생했다. 구단별로 살펴보면 삼성이 10회로 가장 많다. 이어 KIA 타이거즈(해태 시절 포함)가 7차례로 2위, LG 트윈스(MBC 시절 포함)와 한화 이글스(빙그레 시절 포함)가 5차례로 공동 3위에 포진해 있다. 롯데는 4회 수상으로 뒤를 잇는다.

삼성은 장효조와 양준혁이라는 최고의 눈을 가진 선수를 보유한 덕분에 출루율왕 배출 단골손님이 됐다.
장효조의 별명은 ‘안타제조기’. 여기에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다”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탁월한 선구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출루율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사를 써나갔다. 삼성 입단 첫해인 1983년 첫 수상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5년 연속 출루율 1위 자리를 지켰다. 아직까지 KBO 역대 최다 수상과 연속 수상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장효조는 롯데로 이적한 뒤 1991년 생애 6번째 출루율왕을 차지한 뒤 유니폼을 벗었다.
양준혁은 1993년과 1998년, 2006년 등 세 차례 출루율왕에 올랐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3할은 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안타 생산 능력이 출중했던 양준혁이지만, 오히려 그가 타석에서 더 치중한 부분은 볼넷을 비롯한 출루였다. 선구안을 바탕으로 나쁜 공에 손을 대지 않았기에 선수 생활 내내 높은 출루율과 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해태는 한대화와 장성호가 각각 두 차례씩 출루율 1위에 오르면서 총 7차례 출루율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LG(MBC 시절 포함)와 한화도 5차례씩 출루율왕이 나왔다. LG는 최근 ‘출루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홍창기의 지분이 크다. 홍창기는 2021년, 2023년, 2024년 등 3차례 출루율 정상을 차지하면서 2020년대 가장 선구안이 좋은 타자로 주목 받고 있다.
한화는 김태균의 존재감이 독보적이다. 4차례(2012, 2013, 2014, 2016) 출루율왕에 오르면서 장효조(6회 수상)에 이어 역대 출루율 최다 수상 2위에 랭크돼 있다. 1995년 장종훈까지 한화는 총 5차례 출루율 1위를 배출했다.
롯데는 3명이 4차례 수상에 성공했다. 구단 역사상 첫 출루율왕은 장효조. 1988년 말 삼성에서 롯데로 트레이드된 뒤 1991년에 롯데 최초 출루율왕에 올랐다. 2001년에는 앞서 설명한 대로 호세가 KBO 역대 최고 출루율 0.503을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출루율왕이 됐다. 이대호는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 수상했다.
NC는 2015년 에릭 테임즈에 이어 2019년 양의지, 2020년 박석민 등 3명의 출루율왕을 배출했다.
두산은 쌍방울, 현대, 히어로즈와 함께 2차례 출루율 1위 선수를 내놓았고, SSG는 SK 시절이던 2005년 김재현이 유일하게 출루율상 트로피를 받아갔다.
2015년 1군 리그에 진입한 kt는 10년 동안 아직 출루율왕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지금까지 KBO에 존재했던 모든 팀 중 유일하게 출루율 타이틀을 가져가지 못한 구단이다.

◆1982년 백인천 출루율 논란?…희생플라이 때문
오늘날 출루율 산출 공식은 다음과 같다.

다시 말해 출루율은 안타수와 4사구의 합계를 타수, 4사구, 희생플라이의 합계로 나눈다.
야구에서 출루로 인정받는 기록은 안타와 4사구(볼넷+몸에맞은공)뿐이다. 안타와 4사구로 출루하면 출루율 공식에서 분자가 커지기 때문에 당연히 출루율이 높아진다.
하지만 나머지 기록은 모두 출루로 인정받지 못한다. ▲상대실책 ▲야수선택(땅볼 때 수비 측에서 타자를 1루에서 잡는 대신 선행주자를 잡기 위해 다른 베이스로 송구함)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삼진 때 포수가 제3의 스트라이크 투구를 손이나 미트로 정상적으로 포구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뜨림)일 때는 타자가 아웃된 것과 마찬가지로 처리한다. 이럴 경우 타수(분모)만 증가하기 때문에 출루율은 낮아지게 된다.
한편, ▲타격방해 ▲주루방해로 타자가 1루에 나가는 것은 아웃도 아니고 출루도 아니다. ▲희생번트와 같이 분자와 분모 모두 변동이 없다. 다시 말해 타격방해, 주루방해, 희생번트는 아무리 많아도 출루율 수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출루율을 논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은 ‘희생플라이’다.
브랜치 리키와 앨런 로스가 출루율 기록을 처음 발표한 1954년 이후 희생플라이는 출루율 계산 시 한동안 분모에서 제외했다. 희생번트처럼 출루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록 항목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MLB는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1984년부터 희생플라이를 분모에 포함시켰다. 다시 말해 출루율 계산 시 희생플라이를 일반적인 범타와 같은 범주에 넣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희생번트는 벤치 작전에 의한 타격 행위로 애초에 타자가 출루 의사를 버렸기 때문에 타율이나 출루율 계산 시 제외한다. 하지만 희생플라이는 처음부터 희생을 목적으로 타격한 결과물이 아니라 타격을 하다 보니 희생플라이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희생플라이는 적극적인 타격 행위이기에 일반적인 플라이 아웃처럼 분모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KBO는 1982년 출범과 동시에 희생플라이를 분모에서 제외하는 출루율 공식을 사용했다. 앞서 설명한 대로 MLB보다 먼저 출루율 부문을 공식 타이틀로 인정했고, 당시에는 MLB에서도 희생플라이를 분모에서 제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86년부터 MLB와 같이 희생플라이를 분모에 포함하는 출루율 공식을 사용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까 1982년부터 1985년까지 4년 동안의 KBO 공식 출루율은 오늘날의 출루율 산출 공식과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렇다 보니 1982년 백인천의 출루율 0.502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는 2001년 롯데 호세가 기록 0.503이 등장하기 전까지 KBO 단일 시즌 출루율 1위 자리를 지킨 기록이었다.
백인천은 1982년 250타수 103안타로 역대 유일한 4할대 타율(0.412)을 작성했다. 아울러 42개의 볼넷과 3개의 사구(몸에맞은공), 3개의 희생플라이를 기록했다.
당시 희생플라이가 분모에서 제외되는 공식 (103안타+4사구 45개) / (250타수+4사구 45개)에 대입해 보면 0.502(0.5017 반올림)라는 출루율이 산출된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희생플라이가 분모에 포함되는 공식 (안타 103개+4사구 45개) / (250타수+4사구 45개+희생플라이 3개)에 대입해 보면 0.497(0.4966의 반올림)이라는 출루율이 나온다.
문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백인천의 1982년 출루율 중 어떤 것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할 것이냐다. KBO에서도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국 과거 기준에서 산출된 공식은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기록 역시 시대상을 반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기록을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른다.
우리가 인지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래서 1985년까지의 KBO 출루율은 희생플라이가 빠진 채 산출된 기록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과거와 현재 기록을 비교하거나 순위를 매길 때는 별도의 표시가 필요하다.
※덧1) 오늘날과 같은 공식으로 출루율을 산출한다면 1982년 백인천의 출루율 0,4966이다. KBO 기록대로 0.502이라면 2001년 호세(0.503)에 이은 역대 2위이지만, 오늘날의 출루율 공식에 따라 0.4966이라고 한다면 2015년 에릭 테임즈(0.4975)에 이어 역대 3위로 밀려난다.
※덧2) 4사구 개수보다 희생플라이 개수가 많다면 타율보다 출루율이 떨어지는 기현상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