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창세기전 모바일'이 템페스트로 돌아왔다. '5월 중순부터 복귀 이벤트와 함께 티저 페이지로 예고된 템페스트 업데이트였으니 깜짝 소식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두려움, 우려, 추억 등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키는 게 팬들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개인적으로도 우려가 컸다. 서풍의 광시곡보다 먼저 '템페스트'를 꺼냈으니, 시리즈 중 가장 이질적인 작품을 급하게 이어붙인 느낌이었다. 기존에 '창세기전 모바일'의 문제가 누적되어서 지친 나머지 이탈했다가 복귀하는데, 그 근본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가한들 그 위력이 발휘될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지만 '템페스트'에서부터 비로소 창세기전 모바일이 '추억'을 다시 살려보기 위해 주도적으로 굴레를 벗어던지고 이끌어가는 느낌이었다.
'회색의 잔영'의 굴레를 벗은 모델링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창세기전 모바일'을 접했을 때 "왜 굳이 콘솔 버전하고 똑같이 디자인했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맥락과 전략은 머리로는 어찌저찌 생각해볼 수는 있었다. '회색의 잔영'이 어차피 개발 중이었으니, 그 리소스와 디자인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면 새로 디자인해서 적용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전이라는 IP를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통일감을 유지하기 위한 시도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콘솔 패키지 게임과 수집형 RPG를 플레이할 때 각각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시선은 차이가 꽤 다르다. '회색의 잔영'은 옛날 그 시절 그대로 패키지를 돈 주고 온전히 플레이한 게임이니, 고전적이고 투박한 디자인에 대해서도 납득할 여지는 있다. 물론 이게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픽이나 이펙트, 디테일 등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아무리 참아주고 싶었어도 처음 천지파열무와 트리플 엘레멘탈 블래스트를 봤을 때 싸늘하게 식은 마음은 어떻게 돌이킬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고전적인 감성과 추억을 떠올리며 그 장대한 스토리를 읽어나가는 것을 가로막지는 않았다고 해줄 수는 있겠다.
수집형 RPG로 풀어낸 창세기전 모바일은 이야기가 다르다. 원래대로면 그냥 동료가 됐을 캐릭터가 재화 그리고 운이 뒷받침되어야 수집할 수 있는 뽑기 상품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그러니 유저들이 더더욱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볼 수밖에 없는데, 그 기준에 과연 부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추가될 때 가장 우려스러웠던 파트인 '템페스트'를 먼저 빼든 것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토니 타카, 그리고 김형태. 지금까지 이름을 날린 두 걸출한 아티스트들의 커리어 초창기를 장식한 작품 아니던가. 지금까지도 화자되는 특유의 아트 스타일에, 그 '아우라'라는 장벽을 뛰어넘으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으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두 사람 중 누구와도 협업했다는 말은 없었으니,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면 투박했던 '창세기전 모바일'의 선례를 떠올리며 불안한 것도 당연한 일일 거다. 통상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한 게임 내에서 캐릭터 디자인은 통일시키는 편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개발사인 미어캣 게임즈는 '템페스트'에 맞춘 모델링과 디자인을 새롭게 선보였다. 원체 걸출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참가했던 게임이니, 엄밀히 말해 그 시절의 아우라까지는 100% 구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초 공개 때는 일각에선 복장도 좀 달라지거나 원작에서 주로 사용하지 않은 무기를 든 점을 들면서 같은 캐릭터인지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창세기전 모바일'의 투박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튈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그런데 컷신이나 캐릭터창에서는 비주얼 퀄리티가 업 된 상태로 노출을 하되 인게임 내에서는 크게 튀지 않게 적용해서 의외로 튀지는 않았다. 아울러 일러스트 스타일이 카툰렌더링을 고려한 느낌이 아니었던 기존과 다른 만큼, 일러스트와 일치감이 느껴지는 것도 컸다. 주신교 복장이 바뀌면서 리나 맥로레인은 아예 좀 캐릭터가 바뀐 느낌이긴 하지만,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PV에서부터 상당히 힘을 싣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경우를 앞으로도 마주치게 될 텐데, 100%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확인은 할 정도로 끌어올렸다고 할까.
원래 '미연시'에서 출발했던 프로젝트, 현대화해서 담다
이미 창세기전 팬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사실이지만, '템페스트'는 처음에는 창세기전 시리즈로 제작되던 게임이 아니었다. 원래는 전혀 연관이 없는 미연시로 개발 중이었다가, IMF가 터지고 사정이 안 좋아지자 다급하게 창세기전으로 선회한 작품이었다. 따라서 시리즈 중 가장 이질적인 시스템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창세기전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유저를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템페스트'는 창세기전 이후 팬드래건 왕국에서 벌어진 왕위계승전이 주요 배경이다. '창세기전'이 끝나고 성왕에 오른 라시드가 74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 아들들이 계승권을 놓고 1차로 전쟁을 벌어지게 된다. 그 전쟁에서 사남 윌리엄 팬드래건이 승리하지만, 즉위한지 얼마 후에 사망해서 결국 왕위는 막내 리처드 팬드래건이 차지한다. 그리고 리처드 팬드래건은 불안의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윌리엄의 자식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엘리자베스, 메리, 필립, 존을 처리할 계획을 꾸미게 된다.
다행히 엘리자베스와 메리는 왕궁을 탈출한 이후 용자의 무덤을 제패한 샤른호스트에게 의탁하게 되고, 그러면서 '템페스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 일련의 장대한 이야기를 SRPG로 풀었던 전작과 달리, 이미 전작부터 손꼽히는 강자인 샤른호스트가 히로인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이나, 서커스단으로 위장해서 각 지역의 귀족들과 접선하는 사이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육성 시뮬레이션식으로 다룬 게 '템페스트'의 특징이다.
창세기전 모바일에서는 이를 '모바일'에 맞춰서 재구축했다. 원작대로라면 일행이 팀을 짜서 훈련을 하면서 각 루트별로 공략하기 위해 호감도나 레벨을 관리하는 등 상당히 복잡하다. 더군다나 마을 안을 돌아다니면서 이리저리 쓸만한 아이템을 찾아다니는 요소도 있었으니 기존의 창세기전 모바일의 틀 안에서 구현하기란 힘들어보였다.
창세기전 모바일은 그 문제를 유저들에게 친숙한 '모바일 육성 시뮬레이션'의 공식으로 풀어갔다. 공략할 대상 한 명만 골라서 그쪽만 집중 훈련하고 랜덤 이벤트 및 여러 스토리도 그 한 명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방식은 최근 모바일 게임 유저들에게 '우마무스메' 등으로 친숙해져있는 상황이었다. 미어캣 게임즈는 이러한 방식을 '창세기전 모바일'에 맞춰서 다듬어냈다.
창세기전 팬들이라면 이미 발키리 아머가 나오지 않은 것에서 짐작했겠지만, '템페스트' 파트는 아직 완전히 나온 게 아니다. 등장인물마저도 이미 예고한 것처럼 엘리자베스, 오필리어, 리나 이렇게 셋의 루트만 마련되어있고, 그마저도 중간에 브레드포트 영지에서 승리하고 난 직후까지만 나와있다. 그 단계까지 총 7번의 필수 퀘스트가 있고, 그 퀘스트 사이에 9턴씩 주어진다. 그 9턴 동안 훈련, 휴식, 전투 및 서커스를 잘 배분해서 필수 퀘스트에서 승리하기 위한 명성과 스탯, 그리고 진엔딩을 감상하기 위한 호감도를 확보하는 것이 '템페스트' 파트의 플레이다.
'모바일 육성 시뮬레이션'의 공식에 맞췄다고 한 것처럼, 그렇게 키운 캐릭터를 활용하는 전투 및 명성과 호감도를 키우기 위해 수행하는 '서커스'는 오토로 풀어냈다. 나름 조작하는 맛을 살리고자 했던 서커스나, 초반에 이런저런 아이템도 즉석에서 만들고 무기도 주워서 임기응변으로 싸우던 맛이 있던 전투가 그렇게 된 건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다른 기반의 게임을 마개조해서 별도의 모드처럼 풀어낸 터라 이 선택은 전략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육성을 진행하는 동안 랜덤하게 붙은 이벤트와 버프, 디버프에 울고 웃던 그 일련의 과정을 템페스트식으로 깨알 같이 핵심은 잘 구현해놨으니, S급으로 마무리 짓겠다고 경우의 수 따지고 효율적인 육성 코스 짜던 그 심정을 '창세기전 모바일'에서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전 모바일', 조각난 추억이라도 잘 이어붙여주기를
개인차는 있겠지만, 창세기전 팬들 중에는 아마 이렇게 얘기하는 것조차 언어도단이라고 할 만큼 비분강개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창세기전 IP의 행보는 순탄치 못한 것을 넘어서, '희망고문' 그 자체였다. 그나마 희망을 갖고 오매불망 기다렸던 '회색의 잔영'은 서풍의 광시곡을 예고하는 등 카타르시스는 보여주고 핵심 스토리는 잘 풀어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결국 개발팀이 해체되면서 싱글 패키지 게임으로 다시 창세기전을 볼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드는 상황이다.
여기에 '창세기전 모바일'이 출시된지 이틀 만에 창세기전 개발팀이 해체됐으니, '창세기전 모바일'에 눈총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 '창세기전 모바일'도 '회색의 잔영'과 겉으로 보기에 너무 닮아있어서 오히려 창세기전을 했던 유저라면 더욱 애증으로 보게 될 위험도 높았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회색의 잔영'을 엔딩을 본 뒤, '창세기전 모바일'을 다시 훑어보면서 너무 안이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손이 잘 안 갔다. 창세기전 모바일의 노고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모바일에서 이미 클래식 SRPG를 복원하기 위해 공을 들였던 선두주자들의 노하우를 창세기전에 맞춰 다듬은 게임플레이는 짜임새가 있었다. 여기에 '회색의 잔영'에서는 누락됐던 다양한 전직 시스템이나 좀 더 디테일한 스토리 연출 등으로 퀄리티를 끌어올렸다. 그런 점은 평가를 높게 쳤지만, 봤던 걸 또 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당시에는 스토리 외에 유저들을 끌어들일 킬러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에, 일부 모바일 클래식 SRPG들이 다 같이 겪고 있는 재화 수급 문제까지 겹쳐졌다.
그나마 그 뒤로 로그라이크 콘텐츠인 '빙룡성 탈출', 여러 조건을 더해서 더 높은 점수로 고난도의 스테이지를 도전해보는 '용자의 무덤' 등 창세기전의 컨셉에 맞춘 새로운 콘텐츠를 업데이트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연장 점검이나 긴급 점검도 많았고, 캐릭터 밸런스 이슈도 잦았다. 여기에 심지어 캐릭터 라인업을 추가할 때 갑자기 원작에서 비중도 없던 에리카 마이어스가 전설급으로 나와서 원성을 사기도 했다. 오죽하면 남기룡 디렉터가 뒤끝 세미나에서 이 부분을 해명하기도 했을까.
그랬던 '창세기전 모바일'이 이번 '템페스트'부터 자기주도적으로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좀 더 유연하게 초반의 문제를 대처하는 자세도 눈에 띄었다. 기존 창세기전은 장비나 재화를 파밍하기 위한 행동력이나 콘텐츠 입장 횟수가 상당히 부족해서 일정 궤도에 올라서지 않으면 육성이 꽤 오랫동안 멈추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템페스트' 파트에서 얻는 코인으로 재화를 교환하게끔 해서 완화시켰다. 모바일 육성 시뮬레이션인 '템페스트' 파트는 현 창세기전 모바일의 레벨과 관계 없이 클리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얻은 재화를 바탕으로 캐릭터들을 육성하면서 창세기전 모바일의 나머지 콘텐츠를 하나하나 극복해나가다가 다시 '템페스트'에서 재화를 수급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됐다.
물론 그 선순환 구조는 완벽하지는 않다. 한 번 클리어하고 난 뒤에 '숙제'가 되어버리는데, 그 부담감과 피로도를 해소할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아직 메리나 앤, 코델리아 등 공략해야 할 캐릭터 라인업도 남아있고 끝까지 이야기를 다 보여준 것도 아니니 현 단계를 공략이 끝난 '숙제'로 치부하기엔 시간이 남아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를 온전히 기대하기엔 팬들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근본적인 문제로 또 회귀한다.
특히 '창세기전' IP는 그간 싱글 패키지 게임 외에는 그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놓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거나 이야기 전개에 지지부진했던 전례가 있다. 그런 상황에 외적으로 썩 좋지 않은 일이 이어졌으니 불안감을 한 번에 해소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위기 상황에 '템페스트'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던 것도 창세기전 IP에서 전례가 있었으니, 이 한 걸음만으로 안심하라고 하기엔 시기상조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이 밈의 말로가 떠오를 테니까. 그리고 싱글 패키지 게임의 추억이 되살아날 것 같았다가 그 꿈이 한동안 좌초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어줍잖게 옹호하는 것도 같잖아 보일 것이다.
다만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자신의 한계 안에서 어떻게든 '창세기전'의 이야기를 담고자 고군분투하는 진심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심기일전의 과정을 보여줄 로드맵 그리고 이를 실천하면서 증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은 '창세기전 모바일'이 템페스트까지, 더 나아가 창세기전의 그간의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놓고 아직 가지 못한 길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