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종교 권력의 ‘자기 비움’

김영호 성공회대 석좌교수 2025. 10. 2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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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이란 실상 종교적 단어
결핍 아닌 내면의 참된 충만함
일부 종교계, 정치 도구 전락
탐욕 내려놓고 본질 붙들어야

김영호 성공회대 석좌교수

얼마 전 유튜브에서 유명 여배우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돈을 얼마나 가져야 부자인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얼마면 부자인가요?”라고 되묻고는 “돈의 액수보다 중요한 것은 소중한 것을 가지는 것과 건강한 것”이라고 답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던진 그 한마디가 진솔한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과 검소하기까지 한 자신의 집 거실에서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찰은 오늘 우리의 현실, 즉 탐욕이 넘치는 세상에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되묻게 하는 것이 아닐까. 돈이나 권력, 명예를 위한 ‘채움’의 삶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비움’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움’이란 실상 종교적 단어이다. 종교의 본질은 탐욕을 내려놓는 ‘비움’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기독교 핵심 교리 또한 ‘자기 비움(케노시스, κένωσις)’이다. 예수가 신적 권리와 영광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세상에 온 사건 자체가 완전한 자기 비움으로 이해한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완성한 그 행위야말로, 예수께서 보여준 사랑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불교 또한 ‘비움’을 수행의 근본 덕목으로 삼는다. ‘무소유(無所有)’는 단순히 재물(財物)의 유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얻는 진정한 자유를 의미한다.

결국 두 종교가 공통으로 말하는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내면의 참된 충만함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 일부 종교계에서는 이러한 ‘비움’의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세 확장을 위한 욕망이 오히려 ‘탐욕’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교권(敎權) 확장을 위해 정치권과 결탁하거나 금전과 권력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종교가 가진 본질적 ‘비움’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종교 권력이 세상 권력을 쥐는 순간, 신앙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신도는 이용당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이미 역사 속에서 증명되었다.

종교 권력의 탐욕은 건전한 민주주의를 왜곡시키고 일부 정치인을 그들의 꼭두각시로 만들기도 한다. 결국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종교 권력의 탐욕은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최근 모 단체가 신도 명단을 특정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시켜 투표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이야기, 어떤 교주가 국회의원과의 금전 거래로 구속된 사례, 신도(信徒)를 단체로 정당에 가입시키려는 녹취록 공개 등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행태들은 종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신앙 공동체를 세속적 계산의 장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움’을 위한 수행의 길이 아니라 종교 권력으로 ‘채움’으로 세속 이익 계산이 앞서는 순간, 종교는 그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기독교의 비움은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한 비움이며 불교의 비움 역시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수행이다. 그러나 일부 종교 가면을 쓴 종교 권력의 행동이 순수한 종교 역할에 대해 찬물을 끼얹는다. 이러한 종교 권력은 결국 신앙과 믿음의 탈을 쓴 세속 권력의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앞서 언급한 여배우의 말이 비록 종교적 언어는 아니지만 그녀의 삶에서 우러나는 깊은 통찰, “소중한 것과 건강한 것”은 곧 비움의 다른 종교적 성찰 언어이다. 탐욕을 내려놓고 주변에 대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건강한 정신이 본질적인 삶의 가치를 붙들 수 있다는 태도다. 그런 삶의 지혜와 혜안(慧眼)이 오히려 종교가 구도하는 인간을 향한 사랑과 자유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싶다.

종교가 권력을 위해 더 많은 사회적 권력이나 신도 증가가 아니라 ‘자기 비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여배우의 담담한 한마디가 화려한 설교보다 더 깊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영호 성공회대 석좌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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