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해안 지역에 벼멸구 발생 급증 ‘비상’

서륜 기자 2024. 9. 1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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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말부터 발생, 서천·보령·서산·홍성 등지 100㏊ 피해 추정
추석 연휴에도 30℃ 넘는 더위 계속…벼멸구 지속 확산 우려
충남 서천군 한산면 동산리에 있는 논. 벼멸구 발생으로 군데군데 ‘호퍼번(hopper burn)’ 피해가 생겼다.

“벼멸구 때문에 올 농사는 망쳤어요. 불과 3~4주 후면 수확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쌀값은 떨어졌는데 생산비는 많이 들고 수확량은 크게 줄어드니 올해 농사는 헛일한 거나 마찬가지네요.”

14일 찾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 일대 들녘.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날씨 속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필지에서 벼들이 군데 군데 말라 죽어 있었다. 마치 여기 저기 땜빵을 한 듯 보였다. 

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은 바로 벼멸구다. 벼멸구는 10㎝ 높이 이내의 볏대에 집단으로 서식하면서 이를 흡즙해 피해를 준다. 심한 경우 벼가 완전히 말라 죽고 국소적으로 폭탄을 맞은 듯 주저앉는 ‘호퍼번(hopper burn)’ 피해를 유발한다.

이 곳에서 만난 벼 농가 김종은씨(77·한산면 단상리)는 “8월말쯤부터 찰벼를 중심으로 벼멸구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메벼로까지 번지고 있으며, 필지에 따라서는 수확해도 건질 게 없을 정도로 심하게 발생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볏대에 붙어 있는 벼멸구. 볏대를 흡즙해 피해를 입힌다.

충남 서천·보령·서산·홍성 등 서해안 지역 논에서 벼멸구 발생이 급증해 방제에 비상이 걸렸다. 충남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10일 기준으로 도내 서해안 지역 8개 시·군의 논 약 100㏊에서 벼멸구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남부 및 동남부 지역에서 6월 30일과 7월 6일 다량 비래한 이후 고온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2~3세대를 거치며 밀도가 급격하게 증가해 벼에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것으로 기술원은 분석했다.

문제는 방제가 쉽지 않다는 것. 벼 생육이 많이 진행된 현 단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제법은 볏대 아랫 부분까지 약제가 들어갈 수 있는 분제 제형의 살충제(등록약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제 살충제는 드론을 이용해 살포할 수 없는데다 최소 2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게 단점이다. 무엇보다 분제이다보니 바람에 쉽게 날려 살포 작업을 하는 농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또한 분제 살충제는 벼에 이슬이 앉아 있는 오전에는 사용하지 못하고 무더운 한낮에 살포해야 하는 것도 큰 단점으로 꼽힌다. 분제 살충제를 어렵사리 살포한다고 해도 웃을 수만은 없다. 방제 관련 비용이 예년에 비해 급증해 농가수익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벼 농가 박우철씨가 부인과 함게 벼멸구 방제를 위한 분제 살충제를 살포하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살충제 입자가 체내에 들어갈 수 있어 위험한 작업이다.

9.91㏊(3만평) 규모로 벼 농사를 짓는 박우철씨(73·한산면 마양리)는 부인과 함께 뙤약볕 아래에서 벼멸구 살충제를 뿌리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하얀색 가루인 이 살충제는 바람에 펄펄 날렸다. 박씨와 부인은 이 살충제 일부를 들이마시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박씨는 “최근 액체 살충제를 살포했는데 효과가 거의 없어 할 수 없이 분제를 추가로 사용했다”며 “3966㎡(1200평) 기준으로 살충제 값만 5만4000원이 들었고 100만원짜리 분제 살포기도 구입해 이래저래 지출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벌써 6번째 방제를 해서 비용이 예년에 비해 3배는 들어갔다”며 “쌀값까지 계속 떨어지고 수확량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올해 벼 팔아 돈 벌기는 이미 틀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액체 살충제 효과가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이상기후와 기후변화 등을 고려한 농약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천 한산농협 관계자는 “올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공동방제를 3번이나 시행했는데 여기에는 벼멸구 살충제 성분이 들어 있었고, 마지막 방제 때는 벼멸구 살충제를 추가로 넣었는데도 벼멸구 대발생을 막지 못했다”며 “벼멸구가 기존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건 아닌지 국내 농약회사가 심각하게 살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관구 한산농협 조합장은 “선선한 바람이 좀 불어야 벼멸구가 사라질텐데 추석을 코앞에 두고도 한낮 기온이 36℃에 달하니 벼멸구가 당분간 극성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벼 수확 이전 2주 동안은 농약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기간에 벼멸구가 확산하면 속수무책으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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