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을 열면 래커 벽의 가는 스트립이 점차 깊이를 얻고, 150cm 높이의 흑요석 돌담이 시선을 부드럽게 붙잡는다. 남녀 평균 눈높이에 맞춘 이 벽은 거실을 바로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창밖 풍경을 ‘잘라서’ 들인다.

돌결 사이로 멀리 겹겹이 솟은 산등성이가 프레임처럼 걸리고, 반투명한 여백은 실내의 고요를 더한다. 현관의 수납은 벽면과 결을 맞춰 반개방으로 숨겼다. 슬리퍼를 툭 벗어 놓을 자리만 남기니, 작은 집이 답답해지지 않고 첫 호흡부터 느긋해진다.
거실, 서로의 거리로 완성

이 집에서 거실의 크기는 평수가 아니라 ‘두 사람이 편안히 마주 앉을 거리’로 정해진다. 거친 돌에서 매끄러운 스테인리스로 재질이 바뀌는 면은 실내의 레이어를 정교하게 전환하고, 일본식 방과 주방 사이에 놓인 거실은 세 공간의 대화를 중재한다.

그릴의 선이 빛에 따라 길게 미끄러지며, 가라앉은 명도 속에서 표정이 달라진다. 접시 부딪히는 소리와 잔의 울림이 스며들고도, 시선은 막히지 않는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얇아진 자리에서, 생활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이닝 & 키친,

폐쇄적이던 주방의 칸막이를 걷어내자 거실–다이닝–키친이 하나의 축으로 펼쳐졌다. 중앙 아일랜드는 오픈 키친의 심장처럼 놓이고, 낮춘 격자 천장이 다이닝까지 직선으로 흐름을 잇는다.

7미터 길이의 원목 테이블은 작업대이자 모임의 무대가 된다. 짙은 회갈색의 주방 수납은 그릴 배경 속에 매끈히 숨어, 필요한 부피만 남긴다. 세련된 화강암 질감 위로 소품의 색이 얹히면, 채도 높은 요소조차 과장되지 않는다.
다기능 일본식 방

긴 무지개 유리를 타고 들어온 햇살이 바닥의 단차와 프레임을 스치며 번진다. 접이식 파티션을 접을 때마다 좁았던 거실은 한 호흡 더 길어지고, 문을 닫으면 집중의 밀도가 생긴다.

높은 바닥 아래엔 수납이 숨듯 자리하고, 창턱과 가까워진 데이베드는 작은 여관의 다다미방을 연상시킨다. 나무 프레임은 독서의 시선을 고요하게 붙잡고, 따스한 조도는 앉음과 눕는 자세를 구분해 눈부심을 피한다. 이 방의 ‘용도’는 매 순간 바뀐다. 낮엔 작업과 차를 위한 소란스럽지 않은 살롱, 밤엔 담요 한 장을 더해 쉬는 별도의 객실.
마스터 침실, 은은한 조도

헤드보드 벽의 촉감이 낮은 조도에서 더 또렷해진다. 서로 다른 우드 톤이 겹치며 깊이를 만들고, 슬라이딩 파티션은 입구의 시선을 한 번 더 꺾어주는 역할을 한다.
옷장과 화장대는 벽면과 수평으로 이어져 면을 정리하고, 거울 도어는 열리는 순간 공간을 한 뼘 넓힌다.

TV는 과시 대신 배경으로 물러서고, 빛은 침대 곁을 타고 얕게 흐르며 수면의 리듬을 건드리지 않는다. 일본식 여관의 정적이 호텔의 편의와 겹쳐진 장면, 작지만 빈틈이 없다.
두 번째 침실

부드러운 색감의 벽지와 격자 헤드보드가 작은 방의 결을 정돈한다. 문선을 뒤로 옮겨 길게 확보한 진입부는 유리문으로 자연광을 끌어들이며, 작은 드레스룸을 만들어낸다. .

열린 캐비닛과 서랍은 ‘보이는 수납’의 장점을 취해 옷의 질감과 톤을 공간의 표정으로 바꾼다. 벽면은 필요 기능을 흡수해 매끈하게 남고, 슬라이딩 파티션은 동선을 끊지 않는다
동선·조명·마감

입구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길은 일부 칸막이를 덜어 수월해졌고, 옻칠 벽과 검은 거울의 깊이가 복도 너머의 공간을 암시한다.
반대편 갤럭시 그레이 대리석 계단은 낮은 광택으로 올라가는 길을 밝혀, 공용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차분히 분리한다. 조명은 공간을 ‘밝히기’보다 ‘구성’한다.

레스토랑엔 선형 조도를 깔아 식탁의 길이를 강조하고, 복도는 벽을 비추는 빛으로 흐름을 만든다. 전반의 그레이스케일 위에 우드의 온기가 얇게 겹쳐지며, 스테인리스와 석재, 특수 페인트의 다른 촉감이 어둡지만 답답하지 않은 분위기를 완성한다.
이 32㎡의 집은 면적을 키우지 않고 장면을 확장한다. 반투명 경계는 가상과 현실 사이를 왕복시키고, 차경은 산과 강을 실내의 프레임으로 초대한다. 주오인 디자인은 늘어진 한 칸을 덜어내기보다, 각 칸의 ‘관계’를 다시 짰다. 그래서 이 작은 휴양지는 날마다 다른 하늘과 함께 갱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