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2024] 생명현상의 기본 '단백질' 설계·구조 예측 AI 개발 과학자들 화학상(종합)

이채린 기자 2024. 10. 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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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의학, 생명공학, 신약은 물론 생체분자재료까지 광범위한 영향 줄 것"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마인드 최고경영자, 존 M. 점퍼 구글마인드 수석연구원. 위키미디어 제공

올해 노벨 화학상은 인간에게 유용한 단백질 구조를 설계하고 인공지능(AI)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데 기여한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8일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까지 AI 관련 연구에 주어지면서 과학계가 그만큼 AI의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9일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데이비드 베이커(62)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데미스 허사비스(48) 영국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39) 구글 딥마인드 수석연구원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단백질의 놀라운 구조에 대한 코드를 해독한 공로"라고 설명했다. 

● 50년 난제 '단백질 구조 예측' 새로운 돌파구 제시 

허사비스와 점퍼 연구원은 '단백질 구조 AI로 예측',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설계'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단백질은 20종의 아미노산이 복잡한 사슬 구조로 연결된 형태다. 사슬이 꼬이고 얽히며 접히는 현상이 일어나고 복잡한 입체 구조를 형성한다. 주어진 아미노산 서열로 만들 수 있는 단백질의 구조를 알면 이 단백질이 생체 내에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거꾸로 구조를 바꿔가며 원하는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설계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1970년대부터 연구자들은 아미노산 서열에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려고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단백질의 구조는 아미노산의 종류, 아미노산 분자간 상호작용, 주변 환경 조건에 따라 접히는 모양이 달라진다. 수많은 변수가 관여하는 셈이다. 

50년 된 난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인물이 허사비스와 점퍼 연구원이다. 이들이 이끄는 연구팀은 2018년 AI를 이용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 2020년 알파폴드2를 발표했다.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단백질의 3차원(3D) 구조를 예측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2억 개에 달하는 모든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해냈다. 하나의 단백질이 아닌 단백질-단백질 복합체 구조까지 예측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지난 6월 공개한 알파폴드3는 범위를 더 확장해 항체-항원 상호작용, 유전물질인 RNA와 DNA, 이온 등 다른 분자와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도 예측할 수 있다. 단백질을 넘어 광범위한 생체 분자 유형에 대해 결합 구조를 알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생명의 화학적 구성 요소인 20가지 아미노산이 지닌 잠재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면서 "2024년 노벨 화학상은 완전히 새로운 수준에서 단백질을 이해하고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master)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단백질 설계에 도전하다

베이커 교수는 2003년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가진 단백질'을 컴퓨터로 설계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베이커 교수 연구팀이 개발해 활용하던 분자 역학 모델을 이용해 분자의 구조를 예측하고 설계하는 방법이다. 

단백질의 기본 요소인 아미노산을 사용해 기존 단백질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베이커 교수의 연구팀은 의약품, 백신, 나노물질, 초소형 센서 등으로 쓰일 수 있는 단백질을 잇따라 설계했다.

그러다 베이커 교수는 알파폴드에 영감을 받아 단백질 구조를 해독하고 설계하는 AI 모델인 로제타폴드(RF)를 만들었다. 로제타폴드는 특정 단백질을 읽으면 보유한 단백질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이 단백질과 비슷한 아미노산 서열을 찾는다.

동시에 아미노산들이 어떻게 연결될지를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어떤 입체 구조를 띠고 있을지 예측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고 압축하면서 최종적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한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다. 

노벨위원회는 "두 발견은 서로 다르지만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성과를 활용하면 세상을 혁신할 신약, 나노 물질, 백신 등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커 교수의 제자 중엔 다수의 한국인 연구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로제타폴드 개발을 주도한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다. 이밖에 박한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박근완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상민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 등이다. 

베이커 교수팀에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박사후연구원과 연구 조교수로 함께했던 박한범 연구원은 "베이커 교수의 연구는 파급력이 굉장하기 때문에 노벨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단백질을 인간이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인식을 깨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한범 연구원은 또 "베이커 교수는 변함 없이 연구실 한명 한명의 연구 방향을 정확하게 다 이해하고 있고 매번 어떻게 개선을 할 것인가 고민했던 지도 교수였다"고 회상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에겐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4억3451만원)가 수여된다. 이번 화학상 상금은 베이커 교수가 절반, 허사비스와 점퍼 연구원이 상금을 각각 4분의 1씩 나눠갖는다. 

AI 연구가 올해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까지 받은 것에 대해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1980년대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관련 연구가 다수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면서 "오늘날 양자역할의 역할을 AI가 한다고 생각한다. AI가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까지 앞으로 수십 년간 연구에도 많은 파급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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