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8% 역대급 폭등한 날, 개미는 역대 최대 10조 던졌다
외인 사상 최대 9조 쓸어담아
정부는 웃었다, 거래세 6.8조
[왕개미연구소]

“혹시나 해서 국장으로 넘어왔는데 다시 미장으로 가려고요. 미장은 물려도 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데, 국장에는 그런 믿음이 없어요.”
코스피가 18% 급등하며 6595.45에 마감한 31일, 한국 증시는 역대급 상승장을 연출했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반응은 환호보다 경계에 가까웠다. 이날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는 “본전 왔을 때 정리했다”, “다시는 국장 안 한다”, “미국 주식으로 돌아가겠다”, “부동산이나 살 걸”이라는 글이 잇따랐다.
실제로 이날 개인 투자자들은 유가증권 시장에서 10조5000억원 어치 순매도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 치웠다. 하루 8% 넘게 급락하며 거래가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가 이틀 연속 발동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겪은 끝에 코스피가 급반등하자 기다렸다는 듯 매도에 나선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매도 행렬이 이어진 이날, 주식시장에서는 각종 신기록이 쏟아졌다. 이날 코스피 상승률 17.9%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이 전해졌던 2008년 10월 30일(11.95%) 기록을 넘는 역대 최고 수치다.
이날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는 사상 첫 상한가(171만8000원)로 장을 마쳤고, 시총 3위인 SK스퀘어는 오전부터 상한가(103만8000원)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이날 26.8% 급등한 26만2500원에 마감해 역대 최대 일간 상승률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전기·대덕전자·두산퓨얼셀·두산 등 주요 종목도 줄줄이 상한가로 마감했다. 반도체 관련 레버리지 ETF 역시 강한 매수세가 몰리며 일부 상품은 하루 상승 제한폭인 60%까지 올랐다.
개인이 내놓은 대규모 매도 물량은 외국인이 전부 받아냈다. 이날 코스피 외국인 순매수 금액은 8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이었다.
왜 같은 시장을 보고 정반대로 움직였을까. 개인들은 최근 극심한 변동성을 겪으면서 “일단 탈출해야겠다”는 심리가 강했던 반면, 외국인은 급락 과정에서 훼손됐던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이 다시 회복될 가능성에 베팅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실적 개선 기대가 커지면서 외국인 매수세가 집중됐다는 분석이다.
박진환 브이자산운용 대표는 “시장은 공포의 끝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왔고 이번에도 그 역사의 예외는 아닐 것”이라며 “대중이 시장을 떠날 이유를 찾을 때, 시장은 다시 올라갈 이유를 만들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다시 미장 가겠다”… 흔들린 국장 신뢰
증시 전문가들은 이날 개인의 매도를 단순한 차익 실현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한다. 최근 반복된 급등락으로 시장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 결과라는 것이다.
한 개인 투자자는 “국장이 발전하면서 자금이 몰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너무 아쉽다”며 “장기적으로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변동성이 너무 커 본전 수준에서 정리하고 나간다”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이번 코스피 급등락 사태를 겪고 나면 주식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더더욱 주식보다 부동산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며 국내 증시에 대한 신뢰 하락을 우려했다.
주부 이모씨는 이날 SK하이닉스가 장중 상한가를 기록한 상황에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SNS에서 SK하이닉스 상한가 소식이 계속 올라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상한가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하한가도 가능하다는 뜻 아니냐”고 말했다.
다만 모든 투자자가 시장을 떠난 것은 아니다. 일부는 급격한 변동성을 포트폴리오 재편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조윤종 티알에스투자자문 대표는 “반도체 대형주 비중을 줄이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종목 비율을 확대하는 포트폴리오 조정을 단행했다”며 “소부장 업종의 이익 성장 사이클이 메모리 반도체 3사보다 약 3개 분기 늦게 시작되는 만큼, 올해 2분기부터 본격적인 실적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 폭증에 증권거래세 6조8000억 껑충
흥미로운 점은 투자자들의 불만과 이탈 움직임 속에서도 정부의 증권거래세 수입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31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증권거래세는 거래대금 증가와 세율 조정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5조2000억원(338.7%) 증가한 6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증권거래세율은 지난해 코스피 0%, 코스닥 0.15%에서 올해 각각 0.05%, 0.2%로 상향 조정됐다. 투자자들은 시장을 떠나고 있지만, 거래가 폭증한 덕분에 정부의 증권거래세 수입은 역대급 수준으로 늘었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이날 기록적인 개인 순매도가 한국 증시에 대한 신뢰 회복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주가가 급등했음에도 개인 투자자들의 시장 이탈이 이어진다면 상승장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커질 수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 심리가 회복된다면 코스피는 6000 후반대까지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라며 “매물대와 청산 물량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에 대한 신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기 투자 자금이 국내 시장으로 들어올 유인이 약해지고 있는 점은 우려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시장이 확인하려는 것은 지수의 방향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국장에서 등 돌린 개인 투자자들이 다시 국내 증시로 돌아올 수 있을지가 향후 상승장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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