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300분 거리가 2500분 걸렸다… '지속가능한' 고통의 여행기
독일 베를린 ~ 스웨덴 우메오 출장길
'탄소 주범' 비행기 대신 '친환경' 기차 탑승
탄소 배출량, 350㎏에서 39㎏으로 '급감'
"작은 의지들 모으고... 인프라-제도 받쳐줘야"
지구의 환경을 미래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뜻의 '지속가능한 삶'은 인류의 지상 과제가 됐다. 이상기후가 본격 기후재앙으로 닥쳐 오는 것을 막으려면 탄소 배출량부터 줄여야 한다.
'일상의 스트레스 배출'을 위해 떠나는 여행이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행위라는 것을 아는가. 항공기는 가장 탄소 집약적인 이동 수단이다. 영국 정부 계산에 따르면, 항공기가 1㎞ 비행할 때 배출하는 탄소(195~254g)는 기차(6~41g)보다 월등히 많다(2019년 기준).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여행은 '지속 불가능한 여행'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항공기 이용을 줄이자'는 자발적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태동해 전 세계로 퍼진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비행하는 수치)이란 캠페인은 '비행기를 타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개념이다.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하고, 기내식을 먹고, 수하물을 찾는 등의 행동을 오직 낭만으로 포장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폐막한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에서도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전용기를 탄 사람들을 비판하는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어떻게 하면 여행은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비행기와 이별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기 위해 한국일보가 비행기를 타지 않는 지속가능한 여행에 도전해 봤다. 코스는 독일 수도 베를린과 스웨덴 북동부의 대학 도시 우메오 왕복. 결론부터 말하면, 보람찼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다.
"탄소 절감엔 '기차'가 최고!" 호기롭게 택했다
베를린에서 우메오의 직선 거리는 1,500여㎞. 서울에서 부산까지(325km) 5번 갈 수 있는 거리다. 기차만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두 도시를 잇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동하려면 훨씬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될 터였다. 직선 비행 거리도 길어지는 데다, 비행기는 이·착륙 때 탄소를 대량 배출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여행'을 실험하겠다는 명목으로 일부러 여행을 한다면, 그 역시 불필요한 탄소를 배출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기획기사 취재를 위한 우메오 출장을 기회로 삼았다.
계획할 땐 자신감이 넘쳤다. 16살 때 무동력 요트로 대서양을 건넌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같은 극한의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니니,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철도 노선을 검색하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약 1,700㎞의 거리를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최소 3번, 최대 9번까지 환승해야 했다. 편도로 24시간은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소요 시간에 서둘러 출장길에 올랐다.
베를린역에서 기차에 탄 건 10월 25일 오후 6시 38분. 독일 함부르크와 스웨덴 스톡홀름을 거쳐 우메오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함부르크부터 스톡홀름까지는 침대가 있는 열차를 탔다. 그래도 꼬박 하루 동안 기차를 타는 건 고역이었다. 낯선 환경인 데다 열차가 덜컹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두 번이나 기차를 갈아타는 동안 녹초가 됐다.
우메오에 도착한 건 하루가 지난 26일 오후 6시 32분. 두 도시의 시차가 없으니 소요 시간은 6분 모자란 24시간으로, 총 1,434분이었다. 함부르크와 스톡홀름에서 대기한 시간을 빼고 기차에 1,215분(20시간 15분)을 타고 있었다.
비행기로 이동했다면 어땠을까. 베를린에서 출발해 경유지 스톡홀름을 거쳐 우메오에 닿기까지 비행시간 기준으로 2시간 35분이면 충분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보낸 시간은 1,293분(21시간 33분). 비행기로는 160분(2시간 40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결과적으로 315분(5시간 15분)이면 될 거리를 2,508분(41시간 48분)을 쏟아부으며 왕복한 것이다. 체력은 체력대로 떨어졌고, 비용은 비용대로 더 들었다.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기준으로 하면 항공료가 왕복 56만 원 정도였으나, 침대 칸을 이용하느라 결과적으로는 두 배 이상 들었다.
지속가능한 여행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달가운 일'은 분명 아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자주 스쳤다. 짧은 휴가를 쪼개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결코 선택하지 못했을 방식이다.
'비효율적 여행'이지만... 탄소는 1/9로 줄였다
그럼에도 보람은 있었다. 단순 계산 결과 탄소 배출이 상당히 줄었다. 기차 운영회사인 독일 도이치반과 스웨덴 SJ의 계산법을 토대로 재 보니, 왕복 여행에서 기자가 배출한 탄소는 39.37㎏이었다. 비행기를 탔다고 가정하면, 탄소 배출량이 350㎏에 달했을 것이다. 고생을 한 덕에 탄소 배출을 9분의 1로 줄인 것이다.
친환경 항공유 등을 사용해 일반 항공편보다 탄소를 30% 덜 내뿜는다는 지속가능한 항공편을 이용했다고 가정해도 배출량은 245㎏이나 됐을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적어도 6분의 1은 줄인 셈이었다.
◆ 베를린 ↔ 우메오 왕복 1인당 탄소 배출량
① 비행기를 탔다면: 총 350㎏
② 기차를 이용하니: 총 39.37㎏
혼자서는 감당 불가... 팀워크가 필요했다
그러나 냉정히 따지자면, 기자가 기차 여행으로 탄소를 '실질적으로' 줄인 건 아니다. 기자의 탑승 여부와 상관없이 베를린과 우메오를 오가는 경유편 항공기는 스케줄대로 운항했기 때문이다. 탑승객이 0명이라도 해당 항공기는 떴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지속가능한 여행이 보편화해 항공 노선이 취소되는 방법밖에 없다.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뜻이다.
결국 정치적, 정책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기차 같은 대체 이동 수단 개발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럽에서는 철도망이 점점 촘촘해지고 있다. 단거리 비행 노선을 적극적으로 없애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에서는 기차 혹은 버스로 2시간 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싸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선택하지 않도록 비행기에 대한 보조금 정책을 짜야 한다는 제언도 많다.
이 역시 한국에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육로로 국가 간 이동이 가능한 유럽과 달리, 한국은 북한과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사실상의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여행을 강조하는 것이 여행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의 밥줄을 끊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결국 당장의 현실적인 해법은 환경과 삶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강미희 글로벌지속가능관광협의회 프로그램디렉터는 "비행기 탑승을 죄악시하거나 무조건 금지하는 방향보다는 비행기를 덜 타도록 하는 것이 실현 가능한 방법"이라며 "항공업계가 친환경 에너지 사용 비중을 늘리거나, 여행업계가 한 군데서 오래 머무르며 이동을 최소화하는 여행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여행을 한 번 다녀오면 친환경 사업에 기부하거나 투자하는 등 배출한 탄소를 상쇄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하다"고 했다.
'쓸모 없는 2508분이었나' 좌절은 금물! "개인 의지가 동력"
전문가들은 기자의 실험 역시 결코 쓸모 없는 도전이 아니었다고 격려해 주었다. 스웨덴 국영연구소 라이즈의 알버트 에드만 선임프로젝트매니저는 "기업과 정부를 바꾸는 건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고 압박하는 다수의 목소리"라며 "개개인의 작은 의지를 짜내고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작은 실천이 다른 실천들을 낳는 '마법'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돌이켜 보니,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마음먹고 난 뒤로는 호텔 예약 사이트에 붙은 '지속가능한 숙소' 인증이 유독 눈에 들어왔고, 카페에 갈 때마다 텀블러를 더 챙기게 됐다.
COP27이 열린 이집트에서도 작은 도전들이 이어졌다. 72세 환경운동가 도로시 힐데브란트는 7월 1일 스웨덴 스톡홀름을 출발해 전기자전거로 4개월여를 달린 끝에 12일 이집트에 도착했다. 그의 일념은 단 하나였다. "인간은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는 것!
베를린∙우메오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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