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금연 국가' 실현에 드리우는 청소년 전자담배 중독의 그림자

오클랜드 학부모들이 학교 근처의 전자담배 매장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섰다

"접하기 쉬워져서 중독됐어요. 주변에서 다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었어요."

코코(가명)는 12살 때 처음으로 전자담배를 피웠다. 이제 15살이 됐고 금연을 시도 중이다.

그는 옆에 앉은 어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엄마가 화나서 휴대전화를 압수했었다"고 말했다.

코코는 전자담배를 집에 가져온 적이 없었지만, 습관이 자리잡으면서 방과 후에도 전자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다.

“저는 '복숭아 아이스'나 '리치-포도' 향이 더 좋았어요. 비디오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전자담배도 있어요. 밝은 색상이고 풍선껌이나 솜사탕 향이 나죠.”

뉴질랜드에서는 18세 미만에게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것이 불법이지만, 코코는 다들 전자담배를 쉽게 구했다고 말했다.

코코는 "나이가 더 많은 학생들이 더 어린 학생들에게 판매하고, 많은 가게가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는다"면서 "그냥 들어가서 '딸기, 라즈베리, 수박 주세요' 하면 다 팔아준다. 심지어 교복을 입고 가도 아무 말도 안 한다"고 설명했다.

뉴질랜드는 2025년까지 사실상 ‘금연 국가’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다만 그 대상은 궐련이나 잎담배다. 이를 틈타 전자담배가 부상했다. 성인 장기 흡연자에게는 덜 해로울 수 있으나,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십 대 청소년은 물론 때로는 더 어린 아동까지 접하기 쉬워졌다는 부작용이 있다.

작년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 전자담배를 꾸준히 피우는 십 대 청소년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배 증가했다.

정부는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확인되고 있다며 전자담배를 옹호했지만, 한편으로 청소년의 전자담배 사용이 급증한 점을 인정하고 새 규정을 시행했다.

새 규정에는 일회용 전자담배를 대부분 금지하고, 학교에서 300m 이내에 전자담배 판매점을 새로 열 수 없으며, 향을 일반 명칭으로 묘사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다양한 향 자체를 규제하는 규정은 아직 없다.

고등학교 교장 본 쿠일로는 전자담배가 학생들의 생활용품이 됐다고 말한다

사우스오클랜드 파파토에토 고등학교 교장 겸 뉴질랜드 중고등교장협회 회장 본 쿠일로의 교장실에는 압수된 액상형 전자담배가 가득하다.

빨간 립스틱처럼 생긴 일회용 액상형 전자담배 라벨에는 "딸기 아이스크림"이라고 적혀 있다. 밝은 노란색 라이터처럼 보이는 또 다른 담배에는 "파인애플 아이스"라고 적혀 있다.

쿠일로는 "'파인애플 아이스'가 30년간 담배를 피워 온 장기 흡연자를 겨냥한 이름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가 전자담배의 온상이 된 과정을 직접 목격했으며, 전자담배 중 상당수가 청소년을 겨냥한다고 설명했다.

“전자담배는 이제 생활용품입니다. 학생들은 한쪽 주머니에는 휴대전화를, 다른 주머니에는 전자담배를 넣고 다니죠.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상품 마케팅 관점에서는 천재적이었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원래 흡연을 했던 경우에는 금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연초 담배를 한 번도 피우지 않았거나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전자담배는 두세 개씩 가지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제 전자담배는 전 세계 수많은 청소년의 습관이 됐다.

코코는 "학교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쪽이 안 피우는 쪽보다 더 많고, 화장실이 그런 아이들로 꽉 찬다"고 말했다. "다양한 향이 나오면, 다들 사용해 봐요."

마르니 윌튼은 최근 아들이 다니는 오클랜드 교외 학교 근처에 전자담배 가게가 많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불과 60m 떨어진 한 매장을 가리키며 "아이들이 어느 문으로 나오든 전자담배 가게가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프프리키즈NZ’의 마니 윌튼 공동 설립자는 새로운 규정이 아이들을 보호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한다

윌튼도 많은 엄마들처럼 전자담배 확산의 심각성을 우려한다. 같은 걱정을 하는 다른 부모들과 함께 ‘베이프프리키즈’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윌튼은 새로운 정부 규제가 전자담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금 뉴질랜드에 전자담배 매장이 7500개가 넘는다. 기존 매장은 새 법률의 영향을 안 받는다. 많은 매장이 아이들의 학교, 놀이터처럼 안전해야 할 공간 근처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웃 국가 호주는 강경한 방식을 사용한다. 취미용 전자담배 사용을 금지하고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벤 유단은 영국과 뉴질랜드에서 20년 가까이 담배 규제·캠페인 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전자담배를 금지해도 아이들이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 시장을 찾게 될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전자담배 금지와 상관없이 이미 진행 중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전자담배 업계가 화려한 전자담배 디자인과 다채로운 향으로 청소년을 공략한다고 말한다

유단은 현재 뉴질랜드 ‘금연 국가’ 달성을 위한 로비 단체 ‘애쉬 NZ’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그는 전자담배 논의에서 더 큰 그림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바꾼 덕분에 뉴질랜드 흡연율이 크게 감소한 것은 자명합니다. 지난 2~3년 동안 흡연율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는데,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유단은 그 부작용으로 "전자담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도 인정한다.

"전자담배 업계는 주로 성인 흡연자의 금연을 돕기보다 '빨리 돈을 버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전자담배 시장을 너무 늦게 규제한 나머지, 이런 상황이 만들어져 버렸습니다."

그는 많은 청소년의 전자담배 의존이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지만, 그저 호기심에 피워보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모든 아이들이 중독된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부모와 가족들은 청소년의 전자담배 사용을 줄이려 하고, 정부는 성인 흡연자를 줄이려 한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전자담배의 출발점이 연초 흡연의 대안이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