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알송알 송편이 맵단짠으로 변신[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
모든 캠퍼가 제일 처음 떠난 캠핑에서 만들었던 요리를 기억할까? 아직 캠핑용 조리도구에도 익숙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식재료는 복구하기 힘든 경우가 많으며, 생각보다 동선이 많이 불편하다는 사실에 당황하게 되는 첫 캠핑. 메뉴 선정도 준비도 지금 돌아보면 캠핑에 어울리지 않고 어색한 것이 많았다. 의욕은 넘치고 현실적인 상황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자리도, 캠핑장에서의 하루도 낯설었던 첫 캠핑. 야트막한 산 중턱이지만 신기하게 캠핑카로 진입이 가능했던 탁 트인 전경의 캠핑장에서 좌충우돌하며 만들었던 첫 캠핑에서의 요리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아롱사태를 삶은 수육과 그 물에 익힌 부추, 이쑤시개에 맛살과 부챗살과 실파를 꽂아 부친 산적, 그리고 송편 강정이었다. 전반적인 콘셉트랄까 배경 상황이 추석 연휴였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는 여름철 성수기보다 캠핑장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처음 캠핑을 떠날 때는 미처 몰랐다. 추석에 민족대이동의 물결에 합류하지 않고 캠핑을 떠나는 집이 이렇게 많은지. 하지만 대학생 때부터 이어진 추석 기차표 예매 경쟁과 인파에 학을 떼서 오랜 조율을 거쳐 이제는 추석 앞 혹은 뒤 주말에 고향집을 방문하는 사람으로서 가족이 다 같이 재밌게 놀게 된 추석의 분위기가 매우 반갑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휴가를 내기도 힘든 바쁜 현대인에게 길면 4~5일씩 이어지는 추석은 참으로 귀한 연휴다. 그러니 바닷가나 개울, 물놀이장이 있지 않으면 자리가 남아도는 여름철 성수기보다 캠핑장 예약이 힘들 수밖에. 이번 추석도 미리 알람을 맞춰 놓고 티케팅에 나섰다. 거의 연휴 내내 캠핑장에서 먹고 놀 예정이다.
하지만 역시 조촐하게 보내는 추석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쉴 새 없이 먹고 떠드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 한가로운 고향 집의 거실, 그리고 익숙한 명절 음식이다. 첫 캠핑에서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산적을 굳이 만들어 부친 것도 그 때문이다.
고향 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만 이 산적을 부쳤다. 집집마다 다른 산적 레시피의 우리 집 버전은 맛살과 간장으로 양념한 소고기, 그리고 실파다. 어릴 적부터 딱 이 메뉴가 내 담당이었는데, 철없을 때는 손에 잡히는 대로 끼워서 들쭉날쭉이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생겨 맛살은 항상 빨간 부분이 앞을 보도록, 그리고 고기와 실파도 같은 크기로 썰어서 네모 납작한 모양이 되도록 집중한 기억이 선하다. 달걀옷을 입혀서 노릇노릇하게 부치고 한 입 베어 물면 부드러운 맛살과 짭짤한 소고기 사이로 달콤하고 촉촉한 실파의 채즙이 퍼진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이제는 캠핑에서 만드는 일이 없지만, 추석 연휴에 떠난 우리 가족의 첫 캠핑에 대한 추억에는 꼭 이 산적을 끼워 넣고 싶었다. 내 추석의 기억을, 내 새로운 가족의 기억으로.
하지만 산적과 달리 지금도 추석 캠핑을 떠날 때마다 매년 만드는 추석 특식이 있다. 어릴 때는 만들어 본 적도 먹어 본 적도 없지만 이제는 추석 캠핑을 대표하게 된 음식, 명절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산적이었다면 추석 캠핑을 기다리게 만든 것이 바로 이것, 송편떡볶이다.
송편 강정 a.k.a 송편떡볶이
우리 동네에는 활발하게 운영 중인 재래시장이 있다. 일에 치여서 마음이 복잡할 때 이곳만큼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산책로도 없을 정도다. 항상 사람이 많아서 몸은 이리저리 치이지만 마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채소와 제철 과일, 고소한 향을 풍기는 기름집과 ‘진짜’ 두부 맛이 나는 두붓집을 구경하다 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 듯하다. 그리고 잘 나가는 재래시장이 그렇듯 입구에서 출구까지 떡집이 여섯 개 정도가 있는데, 그중에 제일 맛있는 집이 있다. 그집은 추석 일주일 전부터 예약을 받는다. 송편 예약이다.
추석 음식에 관해서 가장 흐린 눈으로 지나치고 싶은 뉴스가 송편 칼로리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에는 밥을 먹고 밥만큼 송편을 먹어도 명절이라고 살이 붙는 일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송편은 여섯 개만 먹어도 밥 한 공기만큼의 칼로리가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빵쟁이이자 떡쟁이인 사람이 송편 없이 추석 연휴를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시장 안의 제일 맛있는 이 떡집에서 송편을 반드시 1㎏씩만 판다는 것이다. 1㎏! 깨송편을 사든 콩송편을 사든 상관없지만 기본적으로 1㎏ 단위씩 구입해야 한다. 물론 그래도 길게 늘어선 송편 구매 줄은 매년 더 늘어나기만 한다.
식구가 세 명밖에 되지 않아도 캠핑장으로 가지고 떠난 송편은 1㎏. 평범하지만 가장 맛있는 송편의 양은 말랑말랑한 시기가 지나도 거의 반도 줄어들지 않는다. 멥쌀가루로 빚은 송편은 하루만 지나도 처음 빚어냈을 때의 쫀득하고 말랑한 느낌을 잃고 퍼석퍼석 딱딱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추석 다음날이 되면 살짝 마르고 단단해진 송편으로 떡볶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떡볶이 브랜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떡 옵션으로 치즈떡이 있다. 얼마 전에 즉석떡볶이 전문점에 방문했을 때는 치즈와 함께 옥수수까지 집어넣은 콘치즈떡이라는 신문물도 봤다. 치즈떡은 이미 쌀떡파인가, 밀떡파인가의 논란에서 벗어난 제3의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송편으로 떡볶이를 만들면 역시나 그런 취향에서 벗어난 ‘맵단짠’의 대통합을 맛볼 수 있다. 매콤달콤한 떡볶이 소스가 착 배어든 멥쌀떡 속에서 달콤하고 고소한 참깨소가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송편 강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역시 고추장 소스에 버무린 쌀떡은 완벽한 떡볶이의 분류에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우리 집 캠핑에서만큼은 그냥 송편보다 송편떡볶이의 인기가 더 높다. 평범한 추석 연휴와 특별한 추석 캠핑이라는 분위기의 차이 때문일까? 밥을 먹고 그냥 과일과 떡을 꺼내면 열심히 먹는 것은 나뿐이지만 매콤하게 볶아 놓으면 식구들의 젓가락질이 빨라진다. 이래서 송편은 1㎏은 사야 한다니까, 하고 뿌듯해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추석 캠핑을 기념하는 송편떡볶이는 어떻게 만드는가? 우선 떡볶이 소스를 평소보다 조금 단맛이 돌게 배합한다. 다진 마늘의 양은 살짝 줄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리들에 식용유를 두르고 불에 올려 딱딱해진 송편을 넣는다. 굴려 가면서 골고루 노릇노릇, 바삭바삭해지도록 지지면 송편이 다시금 따끈따끈 말랑말랑해진다. 소스가 타지 않도록 물을 살짝 부은 다음 준비한 떡볶이 소스를 붓는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살짝 졸아들어 버무려질 때까지 볶고, 땅콩가루를 뿌려서 내면 완성이다.
깨송편이고 콩송편이고 밤송편이고, 이제는 송편을 일부러 남겨서라도 떡볶이를 만든다. 솔직히 추석 캠핑에서 돌아오고 나면 한동안 기억이 나서 주기적으로 송편을 사러 다시 떡집에 들르기도 한다. 밥 대신 송편으로 탄수화물을 채운다면 괜찮지 않을까? 주객전도가 되었지만 어쨌든 새로운 추석 캠핑의 추억으로 자리잡은 ‘남은 송편 해치우기’, 송편떡볶이다.
▲송편떡볶이
재료
남은 송편 약 15개, 식용유, 물, 땅콩가루, 소스 (고추장 2큰술, 케첩 1작은술, 물엿 1큰술, 간장 1/2작은술, 다진 마늘 1쪽 분량)
만드는 법
1. 그리들에 식용유를 두르고 불에 올린 다음 송편을 넣는다.
2. 모든 소스 재료를 잘 섞는다.
3. 송편을 골고루 노릇노릇하게 지진 다음 물을 약간 붓는다.
4. 소스를 넣어서 잘 버무린 다음 살짝 졸아들 때까지 골고루 잘 볶는다.
5. 땅콩가루를 뿌려서 낸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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