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물에 빠진 사람 구할 ‘법적 의무’ 있을까
‘내 책임이다’고 말해달라…그 말이 곧 위로이고 애도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구해야 할까. 너무 당연한 물음이라면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구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을까. 물음표가 생긴다.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야 할 ‘법적 의무’를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는 법이다. 구하지 않으면 형사처벌될 수도 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미국 일부 주에서 ‘구조거부죄’로 도입하고 있다. 1997년 영국 다이애나비가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옆에서 구조하지 않고 사진만 찍은 파파라치들이 이 법으로 처벌됐다. 한국은 사람을 구하지 않은 죄는 없지만 선의로 구하다가 생명이나 재산에 위해를 가한 경우 면책하는 법은 있다(응급의료법 제5조의2).
그럼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없는 한국에서는 자신이 위험에 처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아도 될까. 아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구해야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구한다는 건 전 세계 모든 어린이들도 배우는 인류 보편적 명제가 아니었던가. 거기서 ‘법적 의무’가 있는지 없는지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다. 물에 빠진 아이들을 보고도 옆에 있는 튜브조차 던져주지 않아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 둔 자가 “나는 보호자도 아니니 구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면 어떻겠는가. 형사처벌은 안되어도 온 국민에게 지탄받고 ‘국민 사이코패스’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 한여름 인파가 몰린 휴일 날 계곡에 예상치 못한 게릴라성 호우가 왔다면 경찰이나 정부는 사람들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 귀가조치를 하거나 이미 빠진 사람을 구조할 ‘법적 의무’가 있을까. 국민 개인에게는 몰라도 국가와 경찰에게는 분명히 있다. 헌법에도 있고, 경찰관직무집행법에도 있고, 재난안전법에도 있다. 국가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헌법 제34조 제6항, 재난안전법 제4조 제1항), 경찰관은 천재, 사변,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그 장소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거나 피난시키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 제1항).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갑자기 발생한 사고를 예방하고 피난 조치를 할 의무까지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건 법적 의무가 있든 없든 구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국가가 국민이 물에 빠질 위험을 예방하고 구조하는 건 꼭 법적 의무 내지 권한이 있어야만 되는 일인가.법적 의무를 따지기 전에 상식적으로도 원래 국가는 그런 일을 하라고 존재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존재 이유다. 그런데 국민 156명이 주말 길거리에서 압사로 희생되는 어이없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대통령실의 언론 브리핑은 “경찰은 집회나 시위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제도적 권한이 없다”였다.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리다. 전 국민적 트라우마가 될지도 모를 끔찍한 참사를 두고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이게 꼭 개별 법률을 찾아봐야만 알 일인가.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일로 온 국민이 듣기평가를 하게 하더니, 뻔히 사과하고 책임을 이야기해야 할 시점에 온 국민을 때아닌 ‘법리 다툼’이나 하게 만들 셈인가.
말한 것처럼 법적 권한이 없다는 건 사실도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과도한 인파로 사고위험이 높은데도 국가는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것인가. 경찰권의 신중한 행사를 주장하는 이도 있던데, 누가 신중한 행사를 걱정할 만큼 과도한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는가. 평소처럼 차량만 조금 통제하거나 사람들이 일방통행을 하도록 호루라기 들고 계도만 했어도 됐을 일 아닌가. 하다못해 112신고에만 제대로 대처했어도 될 일이다. 갑작스러운 게릴라성 호우가 와도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제도적 권한이 없으니 피서객들을 돌려보내지도 않고 손 놓고 있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왜 그랬을까. 평생 엄격한 법해석이 필요한 형사법만 다뤄온 검사들이어서 세상만사 법해석의 틀에 갇혀 상식을 보지 못하게 된 걸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참사 이후 정부는 ‘참사’는 ‘사고’로, ‘희생자’는 ‘사망자’로 고쳐 쓰게 했다. 그들은 156명의 목숨이 사그라진 순간 법적, 정치적 책임부터 떠올렸던 것이다. 그러고는 공무원의 ‘기강해이’가 우려된다며 뜬금없이 휴가 사용과 출장을 제한했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그들은 늘 그렇듯 아랫사람을 닦달하는 걸로 면피하려 한 것이다.

“내 책임이다.” 그 말이 곧 위로이고 애도다. 현장 경찰관과 이태원 상인도 한 말이다. 조문하러 온 시민도 미안하다고 했다. 이 말 한마디 한다고 없던 법적 책임이 새삼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의 책임이니 도의적 책임이니 하는 수식어는 빼고, 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담아 말해 달라. “내 책임이다.”
김두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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