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니까
일제도 대한제국 각료 출신의
친일파들이
딱히 쓸모가 없어졌잖아요.

그렇다고 딱히
감투를 안 줄 수가 없어서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에
자문을 해주는 기구
‘중추원’을 만들고
이완용을 부의장에 임명합니다.

그리고 현 시세
약 100억 가량의 보상금은 물론
1등 작위까지 하사받습니다.
창덕궁을 일제황실의 별장으로
만들자고 주장했다가
총독부가 거절할 정도였다고 해요.

3.1운동 직전엔
3.1운동을 기획했던 손병희가
이완용을 찾아가
이완용도 3.1운동에 참여해
죄를 씻으라며 제안을 했는데
이완용은 본인이 나서는 순간
맞아죽을 것 같다며
거절합니다.
알긴 아네요..

그렇게 평생을 누리고 살다가
1926년 67세 나이로 사망합니다.
이완용이 가지고 있던 땅이
여의도 면적의 7배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죽기 전 이완용은
그 땅을 현금화 했고
그 현금이 그대로 그의 아들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이완용의 아들 이항구는
당대에도 방탕하기로 유명했다고 하고
그의 아들들
그러니까 이완용의 손자들이죠?

이 아들들도 싹 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하사받습니다.
작위를 하사받은 만큼
일본이 중일전쟁이니 대륙전쟁을 할 때
징병을 홍보해주고 헌금도 주도하는
친일행위를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