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과 화끈한 ‘깐부 회동’...젠슨 황의 쇼맨십, 한국엔 누가 있나? [황인혁칼럼]

황인혁 기자(ihhwang@mk.co.kr) 2025. 11. 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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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 회동’에 한국인들 열광
CEO 소통 행보가 세상 바꿔
한국선 ‘튀면 찍힌다’ 인식에
은둔형 기업인들이 대부분
당당히 뛸 수 있는 풍토 시급
젠슨 황(오른쪽)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깐부치킨 매장에서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 회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릴 적 젠슨 황은 뛰어난 탁구선수였다. 고등학교 시절 전미 대회에 출전해 복식 3위를 차지하며 미국 북서부의 유망한 탁구 유망주로 꼽혔다. 대만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 켄터키주로 이주한 그는 서툰 영어와 동양인 외모로 심한 인종 차별을 겪었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었고, 시간을 쪼개 탁구 훈련에 매진했다. 이 때의 시련이 훗날 그를 강인한 소통가로 만들었다.

그의 친화력은 한국에서 빛을 발했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치킨집을 회동 장소로 정한 게 신의 한수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을 즐기는 장면은 한국인들을 열광케 했다. 한술 더 떠 치킨과 바나나맛우유를 주변 시민들에게 나눠줬으니 정치인 뺨 치는 쇼맨십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재벌 회장들만 챙기지 않았다. 코엑스에서 행사를 마치고 다시 깐부치킨을 찾아 엔비디아 직원들과 늦은 밤까지 함께 어울렸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소통 행보는 경영 실적을 극대화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삼성, SK, 현대차 등에 26만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안기면서 ‘깐부 회동’을 통해 한국 기업들을 강력한 우군으로 포섭했다. 덤으로 일반 대중까지 사로잡아 1박2일의 짧은 출장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APEC CEO 서밋’ 마지막 특별 세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경주/한주형 기자]
젠슨 황의 성장 스토리를 집중 탐구한 책 ‘생각하는 기계’에서 저자인 스티븐 위트는 “젠슨의 1분 가치가 100만달러쯤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톱스타인 그가 보내주는 관심과 교류는 상대를 자신의 팬으로 만드는 촉매제다.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눈치 볼 일이 많다. 자칫 튀는 행동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권의 각종 민원과 정부 감시망에 얽히기 싫다는 기업인들이 대부분이다. ‘설레발친다’ ‘관종이다’와 같은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그래서 행동 반경이 갈수록 좁아지고 본인 성향과는 무관하게 은둔형 리더가 되고 만다.

일론 머스크처럼 미국 정부효율부 수장을 맡아 칼자루를 휘두르는 캐릭터는 좀 과한 느낌이지만, 존경받는 기업인이 사회적 접점과 상호작용을 넓히는 건 기대효과가 크다.

젠슨 황은 모국 대만에서 열리는 테크 행사 컴퓨텍스에 매번 참석하는 간판 연사다. 그의 연설에 매료된 대만 청년들은 ‘나도 이공계 출신의 성공한 기업인이 되고 싶다’는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된다.(그는 오리건주립대 전기공학 학사,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한국에도 ‘젠슨 황 쇼맨십’에 버금가는 기업인이 출현한다면 고질적인 의대병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는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라 자신의 산업을 대표하고 국익을 키우는 민간 협상가가 될 수 있음을 젠슨 황은 여실히 보여줬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워싱턴과 베이징을 수차례 오가면서 자사 H20 칩의 대중 수출을 재개해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지난달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젠슨 황 오른쪽 앞쪽 여성은 황 CEO의 차녀인 매디슨 황. [매경DB]
탁구선수 경력은 일찍 끝냈지만 소위 ‘핑퐁외교’를 연상케하는 미·중 가교 역할을 멋지게 수행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평가했다. 일본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유사한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고, 미국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미·일 동맹의 끈을 단단히 묶고 있다.

혁신은 기술과 도전에서 비롯되지만 존경은 소통과 공감으로 완성된다. 우리 CEO들이 세상과 더 활발히 교류할 때 한국의 위상이 올라갈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풍토다. 기업인의 발목에 채워진 각종 족쇄와 편견을 풀어야 이들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다. 특히 툭하면 기업인을 국감장에 세우고 법과 규제로 윽박지르는 정치권의 구태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젠슨 황의 삼성동 치맥 이벤트를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황인혁 국차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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