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변의 법꾸라지 일기] 아직은 도둑질하기 좋은 세상

김태현 기자 2025. 12. 21.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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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만든 콘텐츠를 도용당해도 받는 배상금은 고작 천만 원. 남의 지식재산으로 몇 억을 벌고 나중에 벌금 몇백만 원만 내면 그만인 세상에서, 도둑질은 가장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버렸다.

[우먼센스] "변호사님, 이거 소송하면 배상금 얼마나 나올까요?"

의뢰인의 눈은 기대에 차 있었다. 밤새워 만든 수십 개의 영상 소스들을 상대방이 무단으로 편집해 자기 것인 양 쓰고 있었으니, 분통이 터지는 건 당연하다. 명백한 도둑질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깊은 한숨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쓰디쓴 진실을 말해주었다.

"글쎄요. 천만 원 나오면 아주 잘 나온 겁니다."

명백히 남의 것을 베껴다 썼는데도, 소송으로 가면 피해자가 바보가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큰 문제는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배상 액수다. 우리 법원은 손해 인정에 지독할 만큼 인색하다. 각종 지식재산법령에 손해액 추정 규정이 있긴 하다. 침해자가 얻은 이익이나 통상적인 로열티를 손해액으로 봐줄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들인데, 입증의 문턱이 너무 높다 보니 중소 규모 분쟁에서 넉넉하게 인정되는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변호사 비용이 더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니, 도둑질하는 사람들은 이걸 악용한다. "아, 미안합니다. 몰랐네요"라며 잡아떼거나, '소송하라. 판결금 나오면 주겠다'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남의 지식재산으로 사업해서 몇 억을 벌고, 나중에 걸리면 벌금 몇백만 원, 손해배상액 몇백만 원 내고 끝내면 그만이니까.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나. 도둑질이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버린 셈이다.

잔뜩 기대에 차 있던 의뢰인의 허탈한 표정을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든다. 변호사로서 솔직하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결국 형사고소로 전과자 만들고, 거래처 끊어서 괴롭히는 방향이 그나마 타격이 크다'라는, 다소 과격한 조언뿐이다. 의뢰인은 형사고소를 하면 변호사 비용은 상대방에게서 받을 수 있느냐고 궁금해하는데, 이 비용도 고스란히 의뢰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니 설명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 답답해진다.

악의적인 침해에 대해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려 패가망신을 시키는 일은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다. 침해자가 훔친 기술, 훔친 저작권, 훔친 재산권으로 얼마나 벌었는지를 피해자가 입증하지 못하면, 결국 궁색한 배상액만 인정되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것이 재판 현실이다. 지식재산권 분야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제도 전반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기도 하다.

"훔치는 비용이 사서 쓰는 비용보다 비싸다"라는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도둑질을 막을 수 있을까? 손해배상 소송을 하다 보면 가끔은 손해를 배상받으려는 것인지 위로금을 받으려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언제쯤 우리는 손해다운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게 될까.

CREDIT INFO

임현서 리바이어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기업분쟁부터 조세, 집행, 금융, 부동산, 형사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인플루언서 변호사로 <더 커뮤니티>, <더 인플루언서>, <피의 게임3> 등의 방송에 출연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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