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잘못 타고난 쌍용의 SUV! "경쟁자가 따라 올 수 없는 안정성과 오프로드 성능"
파워트레인은 새로 개발한 직렬 4기통 2.0L 디젤 단일 사양으로 5단 수동 및 4단 자동 변속기가 맞물렸습니다. VGT 시스템을 적용해 출력과 효율을 끌어올리면서 낮은 배기량에도 불구하고 경쟁 모델을 압도하는 넉넉한 파워를 제공했죠. 몸무게도 경쟁 모델을 압도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경쟁사의 제품들이 전륜구동 모노코크 설계를 적용한 것과 달리 하부의 무거운 프레임은 차급에 비해 지나치게 육중한 몸무게를 선사했고 당연하게도 주행 성능과 승차감, 연비 면에서도 불리했어요.
상위 모델 카이런의 전륜 더블위시본, 후륜 5-링크 서스펜션이 그대로 내려왔지만, 멀미를 유발하는 2열 승차감도 그대로 내려왔습니다. 그래도 높은 시트 포지션으로 탁 트인 시야, 연약한 도심형 SUV들과 달리 통뼈에서 오는 든든한 안전성과 안정적인 오프로드 실력은 경쟁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이 액티언만의 강점이었습니다. 파트타임 4륜 구동까지 더해져 거친 길을 누빌 일이 많은 현장직 소비자나 캠핑, 낚시 등 아웃도어 레저를 즐기려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죠.
이후 연식 변경을 통해 엄격해진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한 파워트레인과 편의장비, 휠 디자인을 손보는 등 소소한 상품성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2008년부터 멀티 AV시스템이라는 옵션을 선보여 여러 차종과 공유했는데, 4.3인치의 작은 LCD 터치스크린에 후방카메라, 지상파 DMB, 나중에는 내비게이션까지 넣은 독특한 물건이었습니다. 기존 DVD 내비게이션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선택할 수 있었고 없는 것보다야 낫긴 했지만, 그때도 액정이 너무 코딱지만 해서 이게 뭔가 싶었죠.
2009년형 모델부터는 검게 칠했던 전후면 범퍼를 바디 컬러로 도색해 신선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직전 사양의 터프함은 좀 줄었지만, 한결 도심형 SUV다워졌어요. 또 강화된 'EURO4' 배출가스 기준에 대응하기 위해 DPF를 장착했고 출력이 소폭 감소했는데, 그 대신 기존의 4단 자동 변속기를 동급 최초 6단 변속기로 대체해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었죠.
다만 스펙 경쟁에만 신경을 쓴 부작용일까요? 새로운 변속기는 높은 토크의 디젤 엔진, 무거운 차체와 궁합이 맞지 않아 저속에서 상당한 변속 충격과 내구성 부분에서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이 물건이 바로 쉐보레 '보령 미션', 현대 '7단 DCT'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트라 6단 자동 변속기'였죠.
여담으로 이 2009년형 모델은 신차 출시 일정에 맞춰 가지치기 모델인 액티언 스포츠와 함께 국산차 최초로 TV홈쇼핑을 통해 판매되기도 했어요.
끝물인 2010년형에서는 다시금 검은 범퍼가 돌아왔고 하이퍼실버 알루미늄 휠로 세련미를, '이게 왜 여태 없었나...' 싶은 크루즈 컨트롤과 하이패스 룸미러 같은 편의장치가 새롭게 도입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쌍용차가 휠 디자인만큼은 어느 브랜드보다 스타일리시하게 잘 뽑는 것 같아요.
남다른 개성으로 무장한 액티언은 출시 보름 만에 6,300여 대가 계약되는 등 열띤 관심 속에 출발했지만 신차 효과도 잠시, 소비자들을 사로잡지 못해 판매량은 가파르게 떨어져갔습니다. 역동성을 강조한 디자인과 달리 주행 성능과 승차감에서는 전형적인 보디온 프레임 SUV의 투박함이 묻어났고, 이는 세단과 SUV를 동일 선상에 놓고 고민하는 온로드 주행이 대부분인 보편적인 소비자들에게는 태생부터 승용인 경쟁차들과 비교시 단점으로 부각됐습니다.
또 '2WD' 판매량이 대부분이었던 컴팩트 SUV 시장 특성상 전륜구동 기반의 경쟁차들에 비해 눈/빗길 주행 안정성이 취약한 것도 걸림돌이었죠. 계산기를 두드려보던 몇몇 소비자들은 아예 세금과 가격 면에서 메리트가 있는 픽업트럭 액티언 스포츠 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어요. 실제로 SUV보다 이 트럭이 더 많이 팔렸죠.
이 차의 독특한 스타일도 문제였습니다. 액티언이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이런 형태의 SUV를 찾기 힘들었다 보니 생소함에서 오는 거부감이 작용한 것도 분명 있었겠지만, 얼마 후 튀어나온 BMW 모델에 대한 반응은 남달랐던 것을 떠올리면 단지 형태만 문제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죠. 앞서 출시된 두 주력 모델의 생김새를 떠올려 보면 강력한 유전자 탓을 안 할 수가 없네요.
한편 젊은 소비자들을 타겟으로 한 만큼 고리타분한 아저씨 차로 여겨지던 쌍용차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다채로운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죠. 연비왕 선발대회, 패션쇼와 디제잉을 곁들인 신차 발표회 등 오프라인 행사는 물론, 온라인에서는 인기 드라마 스타 소지섭과 이연희를 주인공으로 한 애드무비를 선보이거나 데칼 디제잉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타객 고객의 성향을 맞춘 트렌디한 이벤트를 준비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런 게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때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갔던 분들이 시간이 흘러 티볼리나 토레스를 사게 되는 데 은근히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한때 쌍용차 전체 판매량의 40%를 차지할 만큼 브랜드에 있어 중요한 모델이었지만, 경쟁사들의 신차 러쉬가 이어지면서 매니아들만 찾는 모델이 됐고, 결국 2010년을 끝으로 쓸쓸하게 단종됐습니다. 이 와중에 회사에 칼바람이 불면서 후속 계획에도 차질을 빚어 2011년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며 준비한 야심작 '코란도C'가 국내 시장에 출시되기 전까지 1년이 넘도록 국내 컴팩트 SUV 시장에 참전할 수 없었죠. 그나마 형제 모델 액티언 스포츠는 코란도 스포츠로 새단장해 2018년까지 판매되었으니 액티언의 명맥이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국내에서는 단종됐지만 해외 시장에는 꾸준히 수출됐고 코란도 스포츠의 그 얼굴을 그대로 입혀 판매하기도 했죠. 일부 국가에는 '노마드'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이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코란도C가 한창 팔리던 2013년부터 러시아와 동유럽 등 쌍용차의 주력 수출 시장에 투입되어 비교적 최근인 2021년까지 판매됐습니다. 코란도 스포츠야 투박한 트럭 베드가 달려있으니 달라진 전면부가 나름 조화로웠는데, 액티언의 쿠페형 바디에 밋밋한 얼굴만 덩그러니 붙이니 좀 언밸런스한 느낌이네요.
여담으로 못난이 삼형제 중 유일하게 미국물을 먹은 모델이었습니다. 당연히 정식 진출은 아니고 미국의 소규모 전기차 제조업체 피닉스에서 액티언과 액티언 스포츠의 차체에 전동 파워트레인을 탑재해 판매한 건데요. 덕분에 미국의 도로 위에 액티언 전기차가 달리고 있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됐죠. 당연히 잘 팔리진 않았지만, 왠지 야생동물 같은 액티언의 디자인이 주변 풍경이랑 나름 잘 어울리네요.
이 밖에 못난이 삼형제 아니랄까봐 결함마저 사이좋게 공유했죠. 차체 곳곳 일어나는 부식은 물론 운행 중 차가 갑자기 주저앉는 '볼 조인트 결함', 같은 파워트레인을 공유했던 카이런, 액티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비트라 6단 자동변속기 관련 문제로 큰 폭의 감가에도 불구 한때 중고차 시장에서마저 기피당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강화된 노후경유차 운행제한 조치로 안타깝게도 운행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에 운행중이시거나 예정인 분들은 관련 정보를 꼼꼼하게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쌍용의 컴팩트 SUV이자 못난이 삼형제의 막내 액티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앞서 소개한 두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호불호 갈리는 스타일과 난해한 브랜드 전략, 아쉬운 상품 구성으로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죠.
하지만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우리나라 도로 풍경을 다채롭게 만든 것, 회사의 주인이 숱하게 바뀌는 어수선한 분위기, 개발비조차 넉넉지 않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류 브랜드가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할 모험에 당당하게 나선 그들의 도전 정신만큼은 박수를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쉴 새 없는 풍파 끝에 다행히 'KG 모빌리티'로 사명까지 바꾼 지금은 암울했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쇄신하면서 미래가 기대되는 회사로 거듭나고 있는데요. 모쪼록 예전의 활기를 되찾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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