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온라인 게임의 메카였다. 1996년 세계 최초의 그래픽 MMORPG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1998년 '리니지'가 단일 게임 최초로 누적 매출 1조 원을 달성했으며, 2002년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독특한 그래픽과 음악으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역시 20년 가까이 서비스되며 한국 게임 산업의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 한국 게임 산업의 성공 배경에는 빠른 인터넷 보급과 PC방 문화가 있었다. 월 이용료 기반의 정액제 구독 모델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게임사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 패키지 게임의 몰락, 그리고 온라인으로의 대이동
한국 게임 산업이 온라인 게임 중심으로 재편된 데는 불법 복제라는 뼈아픈 역사가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창세기전' 시리즈,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등으로 대표되는 국산 패키지 게임의 전성기가 있었다. 1992년 소프트액션의 '폭스레인저'가 1만 장 이상 판매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등 국내 게임 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초고속 인터넷이 전국에 보급되면서 '와레즈'라는 불법 복제 게임 공유 사이트가 범람했다. 2001년 손노리가 3년 제작 기간과 6억 원의 개발비를 투입한 공포 게임 '화이트데이'는 초도 물량 8천 장도 다 팔지 못했지만, 게임 패치 다운로드 횟수는 15만 건에 달했다. 10명 중 9명이 불법 다운로드를 한 셈이었다.
불법 복제 문제로 패키지 게임 시장이 붕괴되자, 게임사들은 복제가 불가능한 온라인 게임으로 대거 이동했다. 온라인 게임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어서 불법 복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고, 패키지 게임처럼 한 번 팔면 끝이 아니라 꾸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 정액제에서 뽑기로, 수익 모델의 변화
온라인 게임이 자리를 잡으면서 수익 모델도 변화했다. 초기 '리니지'와 같은 게임들은 월 이용료를 받는 정액제 모델을 채택했지만, 점차 무료로 게임을 제공하고 아이템을 판매하는 부분유료화 모델이 확산됐다. 부분유료화는 진입장벽을 없애 더 많은 플레이어를 끌어들이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정액제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 일명 '가챠' 시스템을 도입하며 단기 수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러 조각을 모두 모아야 최종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컴플리트 가챠' 방식은 사행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1년부터 국정감사장에서 본격적으로 논란이 제기됐고, 2025년에는 이를 금지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은 법적으로 '사행성'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게임사들이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바꾸는 시스템을 제공하지 않아 대법원이 판단하는 핵심 요건인 '환금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저들은 게임성보다 과금에 집중하는 게임 산업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 게임성 상실과 글로벌 경쟁력 약화
단기 수익에 집중한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 본연의 창의성과 게임성을 약화시켰다. 대부분의 국내 게임사들은 신규 IP 발굴 대신 매출이 보장되는 인기 IP를 재활용하는 '리니지 라이크' 게임만 양산했다. 이러한 획일화된 개발 전략은 한국 게임 산업의 '갈라파고스화'를 초래했다.
반면 미국, 일본, 중국은 게임성과 창의력, IP 확장에 집중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일본은 한때 내수 시장에 안주하며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는 '갈라파고스화'를 경험했지만, 게임성에 집중하며 다시 경쟁력을 회복했다. 중국의 '원신'은 2020년 출시 이후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국내 게임 산업의 위기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2025년 조사에 따르면 10대 이하 이용자가 가장 많이 이용한 게임 앱 상위 10개 중 국산 게임은 단 하나뿐이었다. 향후 게임 산업의 주 소비층이 될 1020 세대가 국산 게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 업계 자체도 고령화되고 있다. 2년 사이 게임사 20대 직원 수는 30.6% 감소한 반면, 50대 이상 직원 수는 61.5% 증가했다.
>> 변화의 조짐, 그리고 희망
그러나 최근 일부 게임사들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넥슨은 2007년부터 '넥슨 드림 멤버스(NDM)'라는 게임 제작 동아리 후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청년 인재 발굴에 나섰고, 독립 개발사를 지원하는 등 게임 산업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특히 넥슨의 자회사 민트로켓이 개발한 '데이브 더 다이버'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게임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2024년 10월에는 '메이플스토리'와의 대규모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하며 같은 회사 IP 간 시너지를 창출했다.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 역시 주목할 만한 성과다. 2024년 4월 플레이스테이션5로 출시된 이 게임은 2025년 6월 PC 버전까지 출시하며 누적 판매량 300만 장을 돌파했다. 극한의 액션과 수려한 그래픽, 뛰어난 최적화로 메타크리틱에서 이용자 평점 9.2점을 기록하며 K-게임의 PC·콘솔 경쟁력을 입증했다.
전 플레이스테이션 CEO 요시다 슈헤이는 "'스텔라 블레이드'의 전투는 어렵지만 보람 있는 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다"며 게임의 성공 요인으로 게임성을 꼽았다. 공격과 패링, 회피를 조합한 화려한 액션은 소울 시리즈의 수비적 플레이와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의 화끈한 액션이 공존하는 독특한 전투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이 한국 게임 산업의 본질적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게임성과 창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들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유저와 소통하고, 새로운 IP를 개발하며, 게임 본연의 재미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때 비로소 한국 게임 산업은 다시 한번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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