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헌재법에 위헌소송? 상식 깬 발상으로 헌재 마비 막은 변호사
“대응방안 생각하라” 재판관 지적에 번뜩
“재판관 공백 문제, 제도적 보완해야”
헌법재판소가 지난 14일 재판관이 최소 7명 있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도록 한 헌법재판소법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면서 ‘기능 마비’ 사태를 막았다. 재판관 9명 중 3명의 퇴임을 앞두고 모법(母法)의 효력을 정지해 심판 기능을 살린 헌재의 이례적인 결정은 최창호(60∙사법연수원 21기) 법무법인 정론 변호사의 기지로 가능했다.
최 변호사는 국회에서 탄핵이 소추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 심판 사건 대리인으로, ‘심리 정족수 7명’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과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홀로 수행해 가처분 인용 결정을 받아냈다.
지난 15일 본지와 만난 최 변호사는 “문형배 재판관이 헌재 마비 상황을 앞두고 ‘억울함에 대한 대응 방안을 생각하라’고 지적한 것이 가처분 신청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앞서 문 재판관은 8일 열린 이 위원장 탄핵 심판 사건의 변론 준비 절차에서 “헌법재판관 3명이 공석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회 측과 이 위원장 측에 입장을 따져 물었다. 세 재판관의 후임은 국회가 선출해야 하는데, 여야 대립으로 이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당시 문 재판관은 국회 측 대리인에게 “재판관이 6명이면 헌재법에 따라 변론을 할 수가 없다. 대응 방안이 있느냐”고 했고, 대리인은 “국회에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문 재판관은 이어 이 위원장 대리인인 최 변호사에게도 “헌재가 법률에 기속(羈束)되면 어떻게 위헌 결정을 하느냐. 이 위원장 측도 억울함에 대한 법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헌법은 법률의 상위”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처음에 재판관 말을 들었을 때는 헌재도 당연히 법률에 기속되는 것 아닌가, 왜 국회가 아닌 탄핵 피청구인에게 대응 방안을 묻는가 싶어 의아했다”면서 “그 말을 계속 되새기며 고민하다 보니 (심리 정족수를 규정한) 헌재법에 대한 위헌 소송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말했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이 처음 떠올리기 어려운 낯선 발상이었다.
그는 곧바로 전직 헌법재판관, 헌법학 교수, 헌법 전문 변호사 등에게 연락해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의 형식, 인용 가능성 등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이틀 뒤인 10일 사건을 접수했다. 주말 포함 나흘간 심리를 진행한 헌재는 모법의 효력을 정지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지키는 결정을 내렸다.
최 변호사는 “문 재판관의 지적은 헌재 마비 사태에 대한 깊은 답답함의 표현이거나, 심판 당사자가 무엇이라도 대책을 마련해보라는 절박한 마음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면서 “재판관들이 정파적 이익을 따지지 않는 법률가라면 가처분을 당연히 받아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정치적 고려로 헌법재판관 후임 선출 절차가 중단되면 헌법기관은 마비될 수밖에 없다. 그는 “헌재가 국회의 입법권 남용, 횡포에 적절히 제동을 걸었다”며 “재판관들도 헌재가 몇 달씩 식물 기관이 되는 것을 수용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심리 정족수 7명 조항의 효력은 일시적으로 정지됐지만,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 심판 사건은 계속된다. 최 변호사는 재판관 공석에 대비한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제시해 위헌성을 입증할 계획이다. 최 변호사는 “헌재가 공백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지 않으면 임시로 기존 재판관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즉시 ‘예비 재판관’을 투입하는 제도 등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이런 대안이 없는 현행 헌재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검사 출신이지만 헌재에 파견돼 헌법연구관으로 약 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을 역임하고, 헌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작년 7월 헌재에서 기각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을 담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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