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등산에도 볼 수 없는 `구급함`…단풍철 등산객 안전 `빨간불`[르포]
구급함은 단 '7대'…관리 주체 제각각, 전무한 산도
등산사고·인명피해, 단풍철인 10월 연중 1위
전문가 “명확한 컨트롤타워 아래 일관된 지침 필요”
[이데일리 박동현 기자] “6시간째 산 타고 있는데 (구급함은) 하나도 못 봤어요.”
지난 20일 북한산 원효봉에서 만난 등산 경력 30년 차 정현철(60)씨는 그간 여러 등산로를 다녀봤지만 구급함을 본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유명한 산은 돌아가며 등산하러 다니는데 그동안 (구급함을) 보지 못했다”며 “오늘도 대동문에서 출발해 6시간 넘게 코스를 타고 있는데 구급함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을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 계절이 되며 주요 산에는 등산객들로 북적이고 있지만 위험에 처했을 때 ‘생명줄’이 될 수 있는 구급함은 적절하게 관리가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산별로 관리 주체가 제각각이고 구급함 설치 여부가 선택 사항인 탓에 한 대도 설치되지 않은 곳 역시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등산사고 시 초기 조치가 중요한 만큼 명확한 관리 하에 일관된 지침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20일 방문한 북한산은 단풍 구경을 하러 나온 등산객들로 붐볐다. 하지만 구급함의 존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등산로에서 만난 권주화(74)씨는 “주말마다 북한산에 등산하러 오는데 그간 다양한 코스를 타며 구급함은 한두 번 정도밖에 못 본 것 같다”며 “오늘 발이 삐끗했는데 구급함이 안 보여 얼른 하산하고 편의점에서 압박붕대를 살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산 방문객은 약 630만명으로 집계됐다. 서울시민 3명 중 2명은 북한산에 다녀간 적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치는 등산객 숫자에 비해 구급함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립공원공단은 현재 북한산 등산로(서울 지역 기준)에 총 7대의 구급함 만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탓에 등산로에서 만난 시민들 중 구급함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구급함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마저도 찾을 수 없어 이를 활용하기란 더 어려웠다. 실제 부상을 입은 한 등산객이 자신이 들고온 파스로 간단히 응급조치를 하고 하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등산객은 “구급함이 있었다면 치료를 더 단단히 하고 내려갈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북한산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국립공원공단의 관리를 받지 않는 산은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서울 주요 산 12곳 중 국립공원공단이 관리하는 북한산·도봉산 등에는 최대 7개의 구급함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각 지역의 구청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구룡산과 인왕산 등에는 구급함이 한 대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등산객이 몰리는 단풍철은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0월 전국 각지에서 단풍을 즐기기 위해 국립공원을 찾은 탐방객은 404만 명으로 월평균 234만 명보다 1.7배가량 더 많았다. 인명피해 역시 총 9352명 중 13.8%(1294명)가 10월에 집중됐다. 행정안전부의 재난연감에 따르면 산행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33%는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사고’였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현장에서 구조하는 산악구조대 역시 구급함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국립공원공단 소속 한 산악구조대원은 “산에서는 일반 도심지에 비해 구조까지 소요 시간이 최대 수십 분은 더 걸린다”며 “가장 많이 다치는 경우가 실족(미끄러짐)인데 출혈은 상처 압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구급함이 곳곳에 필요한 이유”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응급조치가 미비할 시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만큼 명확한 안전 관리 주체를 설정하고 적극적으로 예산 투입할 것을 제언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등산객 수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구급함으로 작은 부상이 커져 2차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인력을 보충하고 명확한 컨트롤타워를 둬 산마다 일관된 지침을 내려 구급함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동현 (parkd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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