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공포에 떠는데 “한국만 예외?”… 이란 전장서 ‘위험천만 사태’ 터지자 ‘화들짝’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 한국행 유조선 통과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어떤 선박도 통과할 수 없다”는 무선 경고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한국행 유조선 ‘이글 벨로어호’만이 속도를 높여 해협을 빠져나갔다.

마린트래픽의 실시간 추적 사진엔 수십 척의 선박이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채, 단 한 척만이 유유히 해협을 통과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 사진은 SNS를 통해 확산되며 “한국의 운”이라는 반응과 함께 “위험천만한 도박”이라는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이글 벨로어호는 지난달 26일 이라크 남부 알바스라항을 출항해 이틀 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HD현대오일뱅크가 계약한 이 말레이시아 국적 유조선엔 원유 200만 배럴이 실려 있다.

한국의 하루 원유 소비량(280~290만 배럴)에 맞먹는 규모다. 같은 날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해협을 지나던 이 유조선은 말 그대로 ‘타이밍의 승부’로 위기를 넘긴 셈이다.

하지만 이 극적인 통과 뒤에는 한국 에너지 안보의 구조적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선박 통행량은 기존의 3분의 1 미만으로 급감했고, 한국 선박 40척이 대피 조치됐다.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20~30%가 지나는 이 좁은 수로는 이제 이란의 ‘전략 자산’이자 국제사회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폭 10km 수로에 갇힌 글로벌 에너지 안보

호르무즈 해협 / 출처 :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가치는 그 지리적 특수성에서 나온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이 해협에서 대형 유조선이 통과할 수 있는 수로 폭은 약 10km에 불과하며, 이 구역 전체가 이란 영해에 맞닿아 있다.

이란은 국제적으로 불리해질 때마다 이 해협을 ‘정치적 볼모’로 활용해왔다. 실제 물리적 봉쇄가 아니더라도, 전쟁 위협만으로 선박들의 리스크 회피가 발생하면서 실질적인 봉쇄 효과가 나타난다.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이 전면 봉쇄될 경우 국제 유가가 약 70%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정부는 중동사태 비상대책반을 구성하고 해수부는 선박들에 해협 진입 금지를 지시했다.

HMM(현대상선)은 호르무즈를 건넌 컨테이너선 1척을 두바이항에 정박시키고 우회 항로를 검토 중이다. 문제는 우회로인 희망봉 항로는 거리가 2배 이상 늘어나 운송비가 급증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안보 사각지대, 군사적 대응 능력은

호르무즈 해협 / 출처 : 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한국의 해상 교통로(SLOC) 보호 능력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선 호르무즈 해협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핵심 해로에서 발생하는 위기 상황에 한국군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청해부대가 아덴만에서 해적 대응 작전을 수행하고 있지만, 호르무즈처럼 국가 간 군사 충돌이 벌어지는 해역에서의 작전은 차원이 다르다.

국방 전문가들은 “에너지 안보가 곧 국가 안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란과의 직접 충돌을 피하면서도 한국 선박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받으려면, 외교적 역량과 함께 다국적 해양안보 협력체제 내에서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원유 수입선 다변화와 전략비축유 확대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타이밍의 행운, 그 너머의 구조적 과제

호르무즈 해협 / 출처 : 연합뉴스

현재 이글 벨로어호는 아라비아해를 12.6노트 속도로 순항 중이며, 20일 충남 서산 대산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200만 배럴의 원유는 정제 과정을 거쳐 한국 경제의 혈액으로 공급될 것이다.

하지만 이 ‘극적 탈출’이 단순한 행운으로만 기억돼선 안 된다. 유가·환율·주식시장까지 요동치는 글로벌 경제 비상 상황 속에서, 한국은 에너지 안보의 구조적 취약성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다음번엔 이글 벨로어호 같은 ‘타이밍의 행운’을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한국이 진정한 해양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먼 바다에서 국익을 지킬 수 있는 해군력 증강과 함께, 에너지 수급 체계의 근본적 재편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그 시급성을 일깨우는 경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