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균 155만 대가량의 국산차가 판매되지만 '왜건의 무덤'으로 악명 높은 한국 자동차 시장. 해치백 역시 왜건과 함께 존재감 없는 차종으로 꼽힌다. 왜건이 세단의 트렁크를 넓힌 듯 D 필러가 존재한다면 해치백은 꽁지를 잘라내 C 필러 부근에 테일게이트가 위치한 형상이다.

협소한 공간에서 주차가 상대적으로 쉬우며 경쾌한 운동 성능을 제공하는 등 해치백은 장점이 많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해치백은 단 두 종류에 불과하다. 한때 국내 해치백 시장을 주도한 현대차 i30는 어째서 고국에서는 단종되고 해외에서만 인기를 누리고 있을까? i30의 흥망성쇠와 함께 그 이유를 간단히 짚어보았다.

당초 유럽 시장 공략용으로 개발
보급형이지만 상당히 공들였다고

현대차 준중형 해치백 i30는 그간 북미 시장을 겨냥해 만든 세단과 달리 유럽 시장 공략용으로 개발됐다. 유럽 소비자 대다수는 세단보다 해치백, 왜건을 우선으로 고려한다. 동급 세단보다 작지만 트렁크와 연결되는 실내, 2열 시트를 접으면 펼쳐지는 광활한 적재 공간 등 실용성 부분에서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i30는 유럽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입지를 넓혀 나가고자 투입된 신차인 만큼 보급형 모델 치곤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보급형 모델에서 만족한 소비자들이 점차 중형 세단, SUV 등 상위 모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초기에는 아반떼를 확장해서 1세대 i30를 만들 계획이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럽에서 인정받은 품질 수준
폭스바겐 회장 일화도 유명해

여기에 고장력 강판을 아낌없이 투입해 유로 NCAP에서 최고 등급의 안전성을 확보했고, 명성이 높은 '삭스' 사 댐퍼가 순정 사양으로 적용됐다. 여기에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기본 탑재해 까다로운 유럽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춘 핸들링 성능을 확보했다고. 덕분에 유럽 시장 출시 후 긍정적인 초기 반응이 이어졌으며, 이 기세로 2세대 모델을 출시했다. 2011년 출시된 2세대 i30는 내수 사양은 토션빔, 유럽 수출형은 멀티링크로 후륜 서스펜션을 차별화해 논란이 있었지만 유럽 현지에서는 높은 인기를 이어 나갔다.

해당 모델을 처음 선보인 2011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폭스바겐그룹 마틴 빈터콘 회장의 반응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그는 i30의 스티어링 칼럼 위치를 조정할 때 소음이 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폭스바겐 신차 개발 관계자를 불러 격앙된 목소리로 질문했다. "왜 현대차는 소음이 나지 않도록 만드는데 폭스바겐이나 BMW는 안 되냐"는 것이었다. 질문을 받은 관계자는 "해결책이 있지만 너무 비싸서.."라며 말을 흐렸다는 후문이다.

소형 SUV 열풍에 몰락
유럽에선 신형 출시 예정

이후 2016년 3세대 모델이 출시될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은 쌍용차(현 KGM) 티볼리를 필두로 소형 SUV, 크로스오버 열풍이 불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해치백보다 크고 세련됐지만 가격은 비슷한 소형 SUV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차의 크기가 최우선 가치였던 한국 소비자들에게 동급 세단 아반떼보다 비싼 가격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였다.

비록 2017년 8월 쉐보레 크루즈의 판매량을 꺾기도 했으나 실적은 이내 내리막을 달렸고 결국 2020년을 끝으로 국내에서 단종됐다. 현재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델은 3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올해 중 2차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다. i30는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의 최초 라인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만큼 더 이상 국내에서 i30 신차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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