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악화되는 산불 대응, 그리스는 에어버스 헬리콥터로 잡기로 했다.

최근 강원·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한국 사회는 다시 한번 기후위기의 현실과 산불 대응 시스템의 한계를 마주해야 했다. 건조한 기후와 강풍이 결합하며 산불의 규모와 빈도는 점차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중해성 기후로 산불 위험이 높은 그리스가 유럽연합의 지원 아래 새로운 산불 대응 체계를 구축하며 주목받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최근 에어버스 헬리콥터스(Airbus Helicopters)와 계약을 체결하고 H215 다목적 헬기 8대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추가로 2대의 구매 옵션도 포함돼 있으며, 해당 사업은 기후위기 대응을 목표로 하는 ‘아이기스(Aegis)’ 국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헬기의 기술적 우수성뿐 아니라, 운영 방식에서도 새로운 접근을 택했다는 점이다. 기체 소유는 정부가 유지하면서 실제 운용은 민간 전문업체에 위탁하는 ‘GO-CO(Government-Owned, Contractor-Operated)’ 모델이 채택됐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SAF 헬리콥터와 Airtelis가 실질적인 운항을 맡는다. 이들은 산악 구조, 송전선 점검, 산불 진화 등 고위험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온 전문 기업이다.
19명 수송·4톤 물 투하 가능한 다목적 헬기
H215는 ‘슈퍼 퓨마(Super Puma)’ 계열로 전 세계적으로 1,100대 이상이 운영 중이며 누적 600만 시간 이상의 비행 실적을 기록한 검증된 기체다. 산불 진화를 포함한 긴급 임무에 최적화된 설계를 갖췄다. 최대 19명의 소방대원을 태울 수 있으며, 4톤 이상의 물을 투하할 수 있다. 물 투하는 외부 ‘밤비 버킷’ 또는 기체 하부에 탑재 가능한 통합형 물탱크를 통해 이뤄진다.
특히 H215는 H225 헬기에서 채택된 4축 자동조종장치와 이중 엔진을 통해 안정적 운항이 가능하며, 주야간 비행 모두를 지원하는 고성능 항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항속거리는 1,000km에 달해, 넓은 지역을 신속히 커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수 화점(火點)에 동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 적합하다.
단순 구매 아닌 ‘체계 구축’ 중심의 접근
이번 헬기 도입은 단순한 장비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SAF와 Airtelis는 이미 유럽 구조·구난 체계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그리스에 H215를 투입한 경험도 있다. 이와 함께, 정비 인프라 확대와 현지 인력 양성도 포함돼 있어, 그리스 국내 항공·정비 산업 전반의 역량 강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리스는 이미 공군 및 소방당국에서 슈퍼 퓨마 계열 헬기를 운영해 온 만큼, 이번 H215 도입은 기종 표준화 측면에서도 효과가 크다. 부품 호환성과 정비 효율성 향상은 물론, 조종사 및 기술인력 교육 비용 절감이라는 부수 효과도 기대된다.
공공-민간 협력으로 민첩한 대응력 확보
이번 사업의 핵심은 ‘GO-CO’ 모델이다. 민간 전문 운영사가 즉각 대응 능력을 갖추고 출동까지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한편, 정부는 전략적 계획 수립과 자산 관리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다. 이는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산불 대응 체계로 이미 입증된 모델이다. 그리스는 이를 도입해 실질적인 전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이와 같은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은 기후위기에 직면한 다른 국가, 특히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도 봄철 대형 산불이 반복되며, 기종 노후화와 지역 간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 등이 지적 돼왔다. 그리스의 사례는 공공 자산을 민간 전문성과 결합해 유연하고 신속한 대응 체계를 갖추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향후 한국 역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중장기 전략 수립 과정에서 단순 장비 확충을 넘어선 ‘운영 체계’의 혁신 필요성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선택은 기술, 전략, 운영이라는 세 축을 아우른 통합적 대응 모델의 하나로, 아시아 지역의 산불 대응 전략 수립에도 중요한 참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코저널리스트 쿠 ecopresso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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