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초기 폭음, 영구적인 뇌 변화 일으켜

- 20대 초반 폭음 후 술을 끊더라도 뇌 변화는 유지돼
- ‘억제성 뉴런’ 과활성화, 감정 표현 무뎌질 수 있어

성인 초기의 과도한 음주가 뇌에 장기적이고 영구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초창기에 많은 술을 마시게 되면 뇌의 세포 구조에 변화를 초래하게 되고, 이는 술을 끊더라도 회복되지 않고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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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폭음, 주중 휴식 패턴 실험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과도한 알코올 노출이 가져올 수 있는 영향을 연구했다. 연구팀은 쥐에게 4일 간격으로 알코올을 섭취하도록 했다. 3일 연속으로 수돗물에 희석한 20% 에탄올을 2시간 동안 투여했고, 4일째에는 4시간 동안 투여했다.

이후 3일 동안은 순수한 물만 투여했다. 이는 미국 국립 알코올 남용 및 알코올 중독 연구소가 제정한 ‘폭음’의 기준에 따른 것으로, 주말에 술을 많이 마시고 주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음주 패턴을 반영한 것이다. 4일째 이전보다 오랜 시간 알코올을 투여하는 것은 숙취의 영향까지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험에 동원된 쥐들은 생후 8주~12주 사이 4주에 걸쳐 알코올에 노출됐다. 인간으로 치면 20대 초반에 해당하는 시기다. 그런 다음 쥐들은 생후 9~12개월, 인간으로 치면 30대 후반~40대 중반이 되는 시기까지 알코올을 일절 섭취하지 않았다.

연구를 주도한 펜실베니아 주립대 신경과학 연구소 니키 크롤리 박사는 “쥐는 인간보다 수명이 짧지만 생리학적 특징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라며 “인간이 겪는  사회적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이 배제된 실험실의 통제된 환경에서 알코올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독으로 이해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성인 초기 이후 술을 끊어도 영향 남아

연구팀은 초창기 알코올을 지속적으로 섭취한 다음, 생후 9~12개월까지 술을 끊은 쥐들을 대상으로 전기 생리학 연구를 진행했다. 폭음이 뇌 세포의 전기적 특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전극을 사용해 세포 내부의 전기적 변화를 측정하는 ‘세포 패치 클램프’ 기술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뉴런(신경세포)의 두 가지 유형인 ‘피라미드 유형(흥분성 뉴런)’과 ‘GABAergic 유형(억제성 뉴런)’이 각각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뉴런 사이의 통신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등을 확인하고자 했다.

크롤리 박사는 “복잡한 인지 작용을 위해서는 가속(흥분)과 브레이크(억제)가 균형을 유지하며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라며 “우리는 이 균형이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과도한 알코올 소비가 그 잠재적 원인이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흥분’ 뉴런 둔화, ‘억제’ 뉴런 민감

연구 결과, 쥐에게 약 6개월의 금주 기간을 주었음에도, 초창기에 폭음을 한 영향이 뇌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피라미드 뉴런과 GABAergic 뉴런 모두에서 장기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크롤리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원활한 인지 작용을 위해서는 가속(흥분)과 브레이크(억제)가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알코올에 의해 변화된 구조에서는 두 뉴런 간의 의사소통이 더 어려워졌다. 피라미드 뉴런은 더 큰 자극이 가해져야만 작동했고, GABAergic 뉴런은 더 자주 작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신경전달물질의 한 종류인 ‘글루타메이트’는 특정 뉴런의 반응, 활성화를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알코올에 의해 변화된 구조에서는 이 물질이 GABAergic 뉴런에 더 자주 신호를 보내는 현상을 보였다.

억제성 뉴런의 활성화는 기본적으로 뇌의 과도한 흥분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정도가 과도하면 꼭 필요한 수준의 활성화도 억제되는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나 반응 행동도 억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글루타메이트의 농도가 과해지면 독성이 생겨 뉴런의 손상을 유발한다. 이는 신경퇴행성 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뇌 손상 및 질환과 관련이 있다.

음주 문화를 돌아봐야 할 시점

이 연구 결과는 ‘예방’과 ‘회복’,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먼저 ‘예방’의 관점에서 보면, 성인 초기의 음주 패턴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음주에 관대한 경향을 보인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경향이 있지만, 대학생들이 음주를 활발하게 즐기는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연구팀이 실험에 사용한 방법에서의 음주량은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시판되는 소주보다도 높은 알코올 도수가 일정 시간 동안 끊임없이 주입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편인 사람들의 음주 패턴을 고려하면 비슷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 시절은 연구에서 말하는 ‘성인 초기’에 해당한다. 말이 성인이지, 사실상 청소년기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시기다. 청소년기에 음주를 금지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성인 초기의 음주도 절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편, ‘회복’ 관점에서의 접근도 중요하다. 성인 초기 이후로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폭음으로 인해 이미 발생한 뉴런 변화는 돌이켜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연구팀은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크롤리 박사는 연구팀과 함께 향후 뉴런 간 통신을 돕는 단백질을 사용해 인지 저하를 회복하는 치료 방안을 찾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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