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고교 여자배구 선수 수는 5만 5000명입니다.” 오사카 마블러스 도마 히로유키 단장이 한 말이다. 단 한 문장이지만, 아시아 여자배구의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은 어떤가. 고교 여자배구팀은 17개, 선수 수는 고작 211명. 비교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팬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선수 좀 키워라.” 하지만 정작 뽑을 선수가 없다면? 그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이제는 “왜 이렇게 됐나”를 넘어 “앞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일본에는 여자 고교 배구부가 3천7백여 개, 선수는 5만 5천 명에 달한다. 드래프트 제도 없이 구단이 직접 신인을 찾아 영입한다. 그래서 팀 사무국의 역할이 크고, 전국 대회와 학교 네트워크를 통해 선수 정보를 꾸준히 모은다. 그 과정이 곧 전력으로 이어진다.

반면 한국은 고교팀 17개, 선수는 200명 남짓. 한두 명이 부상으로 빠지면 팀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때도 있다. 이 숫자는 곧 리그 전체 수준을 결정한다. 선수 풀이 좁다 보니 특정 포지션이 약해지면 팀 전력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리그 전체 경쟁력도 떨어진다.
2024-2025 시즌 초반 한국도로공사의 성적은 이런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2승 11패, 리그 6위. 경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수비 연결과 세터 자리였다. 공이 원활히 연결되지 않으니 공격이 단조로워졌고, 상대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선수층이 얇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핵심 포지션에 한 명이 빠지면 대체할 선수가 없다. 이건 특정 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여자배구 전체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첫째, 학령인구 감소다. 아이들 수가 줄면서 학교 운동부 자체가 줄어들었고, 그 여파는 배구에도 그대로 미쳤다.
둘째, 학교 체육의 축소다. 예산 부족과 시설 낙후로 운동부 운영이 힘들어졌다.
셋째, 관심 분산이다. 배구는 신체 조건과 훈련 환경이 중요한데, 다른 스포츠나 활동에 눈을 돌리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이와 함께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이 허술하다. 부상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공정한 선발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다. 결과적으로 유망주가 줄고, 국제 경쟁력은 약해졌다. 김연경 이후 “차세대 스타”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를 시작한다. 기본기, 특히 리시브 훈련을 많이 한다. 또 봄고배, 인터하이 같은 큰 대회를 목표로 고교 선수들이 뚜렷한 목표를 갖고 훈련한다.
스카우트 시스템도 잘 되어 있다. 구단이 직접 학교를 찾아다니며 선수들을 발굴한다. SV리그는 외국인 선수를 늘리면서도, 일부 팀은 국내 선수 육성을 위해 3명까지만 외국인을 쓰겠다고 한다. “리그 수준을 높이는 것”과 “자국 선수 키우기”를 동시에 고민하는 모습이다.
단기적으로는 유소년 대회와 클럽팀을 늘려 아이들이 공을 더 많이 만지게 해야 한다. 지도자 교육도 강화해 안전과 훈련의 질을 높여야 한다. 세터, 리베로, 미들블로커 같은 핵심 포지션은 별도 아카데미로 키울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국 단위 유소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선수 데이터를 관리하고, 연령별 훈련센터를 운영하며, 학교와 프로 구단이 더 촘촘히 연결돼야 한다. 무엇보다 공정한 선발과 투명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부모와 아이들이 안심하고 배구를 선택할 수 있다.
팬들의 역할도 크다. 중계 시청, 경기장 방문, 굿즈 구매 같은 행동 하나하나가 곧 투자 신호다. 더 많은 경기가 열리면 더 많은 선수가 뛰고, 그걸 보는 아이들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비판은 하되 냉소하지 않는 것이다. “얇다”는 현실은 맞지만, 그 말만 반복하면 아무도 시작하지 않는다. 오늘의 응원이 내일의 선수를 만든다.

일본의 5만 5천 명은 ‘많아서 강한’ 결과다. 한국의 211명은 ‘적어서 약한’ 원인이다. 이 단순한 숫자에서 눈을 돌리지 말자. 유소년부터 프로까지 단계별로 채워가야 한다. 외국인 선수도 필요하지만, 국내 선수들이 뛸 시간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배구는 결국 공을 만지는 시간만큼 성장한다. 더 많은 아이들이 코트에 서고, 더 안전한 환경에서, 더 공정한 기회를 받는 것. 이 세 가지만 지켜진다면 한국 여자배구도 다시 코트를 꽉 채울 수 있다. 숫자는 차갑지만, 숫자는 결국 우리가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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