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전기자동차(EV)의 대중화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였던 배터리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각) BloombergNEF의 연례 배터리 가격 조사에 따르면, 2024년 리튬 이온 배터리 팩의 평균 비용은 20%나 하락하여 킬로와트시(kWh)당 11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17년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로, 생산 능력 과잉, 원자재 및 부품 가격 하락, 그리고 저렴한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 사용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배터리 팩 가격은 그동안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급격한 가격 하락으로 인해 전기차가 이르면 2026년 초에 휘발유 차량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때 평균 배터리 비용은 kWh당 10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전기차의 대중적 보급을 의미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가격 하락 추세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이미 2024년에 전기차 및 에너지 저장 시스템 부문의 전 세계 수요의 92%를 충족할 만큼 충분한 배터리 셀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막대한 생산 능력은 전 세계적인 가격 하락을 주도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전기차 가격이 이미 휘발유 차량보다 저렴해져 시장 점유율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가격 경쟁력의 일부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보다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기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러한 공급 과잉 상황이 무한정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은 자동차 판매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수요가 안정화되기 시작하면 과잉 생산 능력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다.
BloombergNEF는 배터리 팩 가격이 2030년까지 kWh당 69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지만, 몇 가지 불확실성이 이러한 전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지정학적 요인과 정책 변화는 제조업체와 공급업체 모두에게 큰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이 예상보다 일찍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하면서 전기차 보급이 늦춰지고 있으며, 내연기관 퇴출 시기를 연기하려는 로비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중국 수입품에 최대 60%, 다른 국가의 상품에 10~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보고서는 “변화하는 관세 제도를 파악하는 것이 배터리 공급업체와 고객에게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터리 가격 하락은 소비자들에게는 곧 더 저렴한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진다. 현재 전기차와 내연기관 차량 모두 구매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신차 평균 구매 가격은 5만 달러(약 700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고가의 배터리는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배터리 팩 비용이 지속적으로 하락함에 따라 전기차와 기존 차량 간의 가격 차이는 곧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올해 소비 심리 위축으로 침체된 자동차 시장에서 새로운 구매자를 유치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및 정치적 불확실성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정태 글로벌모터즈 기자 jt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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