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수 3년 20억 원. 이태양 2차 드래프트 양도금 4억 원. 합쳐봤자 연간 11억 원 수준이다. 요즘 FA 시장에서 쓸만한 불펜 투수 한 명 데려오려면 50억 원은 우습게 넘어가는데, KIA 타이거즈는 이 돈으로 뒷문을 통째로 재건했다. 공교롭게도 두 투수 모두 한화 이글스 출신이다. 한화 팬들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어질 노릇이다.
7연승 기간 불펜 ERA 1.52, 리그 1위

KIA는 8일 삼성전부터 16일 키움전까지 7연승을 달렸다. 17일 잠실 두산전에서도 7-3 승리를 거두며 8연승으로 질주 중이다. 연승의 핵심은 불펜이었다. 7연승 기간 팀 불펜 평균자책점 1.52. 10개 구단 중 1위다.

시즌 초반만 해도 KIA 불펜은 바닥이었다. 마무리 정해영이 4경기 평균자책점 16.88, 전상현이 4경기 평균자책점 13.50으로 무너지면서 2승 7패로 리그 최하위까지 추락했다. 결국 두 필승조는 11일 한화전을 앞두고 2군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 자리를 메운 게 김범수와 이태양이었다.
김범수, 개막전 3실점 후 8경기 연속 무실점

김범수는 한화에서 10년을 뛰고 지난 시즌 FA 자격을 얻었다. 한화와 협상이 난항을 겪던 중 KIA가 움직였다. 3년 최대 20억 원(인센티브 3억 포함). 이영하 4년 52억 원, 최원준 4년 38억 원이 시세인 요즘 불펜 FA 시장에서 파격적인 가성비였다.

개막전 SSG전에서 무사 만루를 만들며 3실점(2자책)으로 무너졌지만, 그날의 아픔이 오히려 예방주사가 됐다. 이후 8경기 연속 무실점. 17일 두산전까지 9경기에서 1세이브 4홀드를 기록하며 필승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범호 감독은 "범수는 데려올 때부터 1이닝을 쓰려고 했다. 좌우타자 상대 성적 차이가 별로 없어서 한두 타자 상대로 쓰기엔 아까운 투수"라고 말했다.
이태양, 2차 드래프트 4억의 기적

이태양은 더 극적이다. 지난해 한화 퓨처스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냈지만, 9월 확장 엔트리 때 오히려 말소당했다. 1군 기회를 얻지 못하자 본인이 직접 2차 드래프트를 요청했다. KIA는 1라운드에서 그를 지명했다. 양도금 4억 원.

17일까지 7경기 평균자책점 0.90. 멀티 이닝 소화도 가능한 미들맨으로 쏠쏠하게 굴러가고 있다. 지난겨울 공항 출국장에서 "베테랑은 늘 벼랑 끝에 서 있다"며 독기를 품었던 그의 절실함이 마운드 위에서 빛나고 있다.
"분위기 메이커, 불펜 전체가 밝아졌다"

이범호 감독은 두 투수의 실력만큼 성격을 높이 샀다. "범수와 태양이 성향이 기존에 있던 영탁이나 상현이, 해영이와 반대다. 기존 선수들은 신중한 면이 있는데, 범수와 태양이는 기분을 업시키고, 안 돼도 좋은 분위기로 만들려는 성향이다. 두 성향이 잘 맞아 들어가면서 불펜 전체가 힘을 내고 있다."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의 선수들이 팀 분위기까지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다. 17일 두산전에서도 김범수와 이태양은 각각 1이닝씩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한화는 왜 이들을 놓쳤나

한화 팬들 사이에서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온다. 김범수뿐 아니다. KT로 간 한승혁도 8이닝 3홀드 평균자책점 2.25로 변함없이 활약 중이다. 정작 한화 불펜은 14일 삼성전에서 한 경기 18사사구라는 36년 만의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KIA는 연평균 11억 원 수준의 투자로 뒷문을 재건했고, 한화는 그 선수들을 떠나보낸 뒤 시즌 최악의 불펜 붕괴를 겪고 있다. 남 좋은 일만 해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