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대그룹’이 흔들린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세계 경기 악화, 수요 둔화, 사법 리스크까지 ‘첩첩산중’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삼성전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3분기 영업이익은 9조1000억원에 그쳤다. 이미 낮아진 시장의 기대치보다도 못했다. 최근 보고서를 냈던 증권사 18곳의 실적 전망 평균치는 10조3000억원이었다. 당연히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7월 이후에만 삼성전자 주가 하락률은 30%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하다는 사과문까지 냈다.
악재는 쌓여 있다. 기본적으로는 반도체 시장이 예상보다 부진하다. 수요가 줄면서 가격은 내리고 있다. 한 달 전보다 D램 범용제품 가격은 17%, 낸드플래시는 11% 떨어졌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삼성전자의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이다. 알려진 대로 D램보다 3~5배 이익률이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에 대한 납품은 미뤄지고 있다. 비메모리 부문은 만성 적자다. 3분기에는 1조원 정도의 적자를 냈다고 한다. 작년에는 3조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막대한 투자에도 TSMC와의 격차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반도체 외에 다른 사업 부문도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 사실 삼성은 그동안 독자적인 운영체제나 반도체 후공정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것이 없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맞고 있는 어려움은 삼성전자의 경쟁력 문제만이 아니다. 한편에서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이 의심받고 있다면 다른 한편에 있는 불안의 씨앗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법 리스크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문제로 시작된 회계 부정 의혹은 이제 2심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당시 부회장이던 이재용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합병에 관여했고 자신을 위한 거래 구조를 만들어 주주에게 손해를 입혔다며 재판에 넘겼다. 일정을 고려하면 선고 시점은 내년 1월로 예상된다. 1심은 이재용 회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재판 결과는 모른다. 2024년의 삼성은 여러 가지로 답답한 상황이다.
SK그룹의 경우 삼성과는 사정이 다르다. HBM 신제품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경쟁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 3월 5세대인 HBM3E 8단을 엔비디아에 처음 공급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 9월에는 HBM3E 12단 제품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실적을 사상 처음으로 뛰어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SK그룹에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빚이 너무 많다. SK그룹은 지난해 기준 차입금이 116조원을 돌파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빚이 많은 그룹이 됐다. SK하이닉스가 예외일 뿐 SK그룹에는 수익을 내지 못하지만,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재무 부담만 늘리는 회사가 많다. 대표적인 기업은 물론 이차전지 업체 SK온이다. SK온은 2021년 10월 출범 이후 2년 만에 글로벌 톱5 배터리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간 매출액은 2022년 7조6000억원, 2023년 12조9000억원 등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수익은 출범 이후 1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둔화에 따른 공장 가동률 하락, 헝가리 신규 공장 가동으로 인한 초기 비용 증가 등으로 올 2분기에 기록한 영업손실도 4600억원이다. 적자는 누적되는데 계속되는 투자로 인한 재무 부담은 갈수록 늘고 있다. 흑자 전환 시점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 공약으로 '전기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를 선언한 상황이라 돌발변수마저 등장했다.
SK그룹 역시 대주주의 법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현재 진행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은 그 결과에 따라 지배구조를 흔들 수 있다. 2심 재판부는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은 상고심을 제기했지만, 만약 대법원에서 2심 결정이 유지된다면 최 회장은 천문학적인 현금이 필요하다. 최 회장의 자산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주식회사 SK의 지분 17.9%가 대부분이다. 자칫 지분을 매각하게 된다면 복잡한 상황이 된다.
변곡점 맞은 반도체·배터리 산업 '고전'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인해 혹한기를 맞고 있는 배터리 업종의 상황은 LG그룹이라고 다르지 않다. 물론 LG에너지솔루션은 SK온과는 차이가 있다. 기술 경쟁력도 상당하고 수익도 내고 있다. 작년에도 33조7000억원 매출에 2조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진한 업황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2분기 실적인 매출 6조1619억원과 영업이익 1953억원은 1년 전보다 매출은 29.8%, 영업이익은 57.6% 줄어든 수치다. 업황 부진으로 미국에 짓고 있는 배터리 3공장 건설도 일시 중단했다. 주가는 최근 조금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2년 전 최고점과 비교하면 30% 이상 떨어진 수준이다.
국내 4대 그룹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비교적 사정이 낫다. 실적은 여전히 괜찮다. 올해 3분기 현대차의 매출 전망치는 43조원으로 1년 전보다 5%, 영업이익 전망치도 4조원 정도로 3%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아자동차도 매출은 1년 전보다 4.5% 늘어난 26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13% 증가한 3조2000억원을 예상한다. 그러나 글로벌 자동차 수요 둔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GM과 포드에 대한 투자 의견도 낮아지고 있다. 현대차의 실적도 정점을 지났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현대차의 9월 세계시장 도매 판매 대수는 1년 전보다 3.7% 줄었다. 6월말 이후 주가는 20% 가까이 하락했다.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일은 현대차그룹도 숙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취임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다. 정 회장은 20% 지분을 가진 현대글로비스를 제외하면 주요 계열사 지분율이 2%를 밑돈다. 특히 사실상 순환출자의 핵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1차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하고 6년이 지났지만,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 변곡점을 맞고 있는 산업은 반도체뿐만이 아니다. 반도체에 이어 미래의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됐던 배터리 산업도 수요 정체와 투자 위축으로 고전하고 있다. 반도체는 물론 이차전지 업종의 경기 악화, 세계 자동차 시장의 수요 둔화까지 공교롭게도 국내 4대 그룹이 모두 만만치 않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지배구조의 법적인 문제까지 얽혀 고민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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