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메소드 연기’가 무엇이길래!

[장우현의 '당신을 위한 배우수업']

이순재 선생께서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선생을 무대나 일상에서 마주할 때마다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짙어질수록 무대 위 역할이 아닌 사람 그 자체의 인간성이 빛을 발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선생을 통해 연기교육의 목표가 배우 개인의 개성 발현이라는 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순재 선생께서는 안톤 체홉의 작품과 사실주의 연기의 가치를 항상 강조하셨고, 직접 체홉의 '갈매기'를 연출하며 배우로 참여하시기도 했다. 선생님의 영면을 기리며, 안톤 체홉의 사실주의 연극 그리고 사실주의 연기의 대표적인 방법론인 '메소드 연기'를 심층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구체적인 목표는 메소드 연기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고, 이 예술도구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해 일반인들도 연기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향년 91세의 일기로 타계한 배우 이순재. 사진= 연합뉴스

히스 레저의 죽음

2009년 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다크 나이트(2008년)의 조커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히스 레저도 당일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가 연기한 조커는 악몽 그 자체였다. 걸음걸이, 손동작, 말투, 표정 등 모든 면에서 히스 레저는 악마였다. 배트맨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악당이 영웅의 존재감을 압도했다.

부모님과 누나가 대리수상한 자리에서 모든 배우 및 영화 관계자들의 존경과 애도의 눈빛만이 현장을 가득 채웠다. 히스 레저의 공식 사인은 약물오남용이었다. 진통제, 항우울제, 불면증 치료제로 사용되는 6가지 약물의 사용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단순한 약물오남용이 아닌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라 불리는 극사실주의 연기방법론과 연관성이 있음을 주변 관계자와 본인의 증언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메소드 연기'가 무엇이길래 삶의 의지까지 꺾어놓는단 말인가.

수많은 배우들이 추종하는 ‘메소드 연기’. 이것이 만약 배우의 몸과 마음의 균형을 깨뜨리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면, 이와 관련된 안전한 사용법, 즉 매뉴얼 숙지는 필수일 것이다.

영화 배트맨 시리즈중 '다크 나이트' 편. 히스 레저가 조커역을 하는 모습.

'메소드 연기'란 무엇인가

‘메소드 연기’의 창시자는 러시아의 배우이자 연출가 그리고 연기교육자인 K. S. 스타니슬랍스키(Constantin Stanislavsky, 1863~1938)다. 그는 현대 연기 교육과 연기예술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가 개발한 연기방법론인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초기 형태가 미국과 아시아 그리고 유럽 등지로 전파되고 구체화된 결과물이 '메소드 연기'다. 특히 미국에 남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전파되었으며, 당시 유성영화산업의 성장과 연결되어 빠르게 체계화된 연기방법론이 바로 '메소드 연기'다.

일반적으로 배우와 역할이 융합된 '진정성 있는 연기'를 추구하는 극사실주의 연기를 두고 ‘메소드 연기’라 부르기도 한다. 메소드 연기의 교육을 받았거나 자신의 연기철학으로 이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배우로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다니엘 데이 루이스, 최민식 등을 꼽을 수 있다.

히스 레저 역시 다양한 영화와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집요할 정도로 영화에서의 역할과 자신을 융화시키기로 유명했다. 특히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 역할을 연기할 때, 조커의 분장과 가짜 배트맨을 고문하는 캠코더 씬, 병원 폭파 씬 등에서 그의 아이디어와 즉흥연기가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배우가 극중 역할과 융화되는 일은 가능하며, 또 안전한 것일까?

'메소드 연기'의 창시자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

만들어진 기억

스타니슬랍스키는 주변 환경과 배우 자신의 내외적 상태의 변화 등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진정성 있는 연기'를 반복적으로 펼치기 위해 다양한 학문과 예술 그리고 영적 수행법까지 통합적으로 검토하고 실험했다. 이 사실은 그의 저서가 아닌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력의 첫 번째 결과물은 ‘정서 기억법’이다. 배우가 극중 역할의 정서 혹은 감정을 유도하기 위해 배우 개인의 삶의 경험, 즉 기억을 활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아내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서 극도의 슬픔을 느끼는 장면을 연기한다고 가정해보자.

배우는 먼저 자신의 삶에서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한 경험을 탐색한다. 없다면 최대한 비슷한 맥락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해당 장면을 연기할 때마다 당시 기억을, 좀 더 정확히는 당시의 내외적 상태를 반복적으로 떠올린다. 그 후 상실한 대상과 관련된 상황을 자신의 경험에서 역할의 경험으로 순차적으로 치환한다. 그렇게 배우는 역할로서 자신의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주어진 상황을 반복해서 감각적으로 느낀다. 이후 바탕재료인 자신의 기억이 역할의 기억으로 변화될 때, 연기에서 요구되는 극도의 슬픔이란 감정행동이 도출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언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는 역할의 에피소드 기억을 새롭게 저장하고 또 그 기억을 자극할 수 있는 감정 트리거를 준비하는 것이 '정서 기억법'이다. 그 결과, 무대 위에서 혹은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배우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역할이 되어, 무너진 세상을 느끼며, 압도하는 슬픔의 바다에 잠기게 된다. 배우의 연기에서 매번 진정성이 느껴지며, 지켜보는 관객들도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된다. 히스 레저는 이러한 방식으로 '조커'란 역할의 크나큰 상처와 파괴적인 감정과 관련된 수많은 생생한 기억들을 스스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특히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가짜 배트맨을 고문하는 씬은 원래 대본에 없었던 것을 히스 레저가 스스로 캠코더로 촬영한 것으로 최종 편집본에 포함되었다. 철저히 계획적이고 대본수정이 적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업성향을 비춰볼 때, 이는 이례적이라 볼 수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카우보이로 나왔던 히스 레저. 선한 미소를 가진 그는 '메소드 연기'에 너무 깊게 빠졌다.

예견된 위험성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배우의 연기는 '그럴싸한 가짜'이고, 때때로 관습적인 연기를 마주하며 실망하던 관객들에게 '정서 기억법'이란 체계적인 훈련을 마친 배우들의 연기는 ‘진짜’였다.

무대 위에서 또 다른 '진짜 삶'이 펼쳐졌고, '진짜 감정'을 느낀 관객들은 이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후 절대적인 대중의 지지와 세계 각지에서 보내는 관심에 호응하듯, 스타니슬랍스키와 그의 모스크바예술극장 단원들은 해외 순회공연을 다녔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후 앞에서 설명했듯, 현지의 배우들과 연출가, 연기교육자들을 통해 초기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메소드 연기로 더욱 구체화되고 전세계로 전파됐다.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국제적 명성이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가장 뛰어난 배우 중 하나이자 연출가이던 V. E. 메이예르홀드(Vsevolod Emilyevich Meyerhold, 1874~1940)가 스타니슬랍스키를 찾아와 독대를 요청한다.

“콘스탄틴 세르게이치(스타니슬랍스키의 존칭), 배우들에게 '정서 기억법'을 훈련시키는 일을 멈추셔야 합니다. 역할의 기억과 융합된 배우 개인의 기억들은 연기가 끝나도 명확히 분리되기 어렵습니다. 이건...너무 위험합니다.”

메이예르홀드는 '메소드 연기'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기억과 정서들의 심리적인 요소들을 다루고 재조직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며, 새롭고 안전한 접근법을 찾지 못한다면 연기훈련과 역할연기가 배우의 몸과 마음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배우가 무대와 현실의 경계에서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 결론내렸다.

그리고 당시 자신의 직관을 수용하지 못하는 스타니슬랍스키를 뒤로 하고 새로운 연극과 연기방법론을 찾기 위해 모스크바예술극장을 떠났다. 이후 그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찾았고, 스타니슬랍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연출가가 되어 그의 시스템의 대척점에 선다. 메이예르홀드의 새로운 방법론은 이후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 통합되었으며, 시스템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배우의 안전하고 건강한 연기와 새로운 연기예술을 위해 그가 찾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배우의 '설계된 몸'이었다. 메이예르홀드는 배우의 몸을 해체하고 연극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맞춰 새롭게 몸을 구성하는 방법론을 개발했으며, 이를 '생체역학'이라고 이름 지었다. 다음 회엔 이 내용을 더 이어가겠다.


※ 장우현은 러시아의 모스크바 슈킨연극대를 졸업하고, 귀국 후 상담심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이란 통합적 연기방법론과 상담심리를 융합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마약사범을 위한 중독회복, 예술가의 무대공포증 대처, 교사들을 위한 트라우마 대처, 그리고 일반대중을 위한 안전한 감정만끽 등 다양한 주제의 구조화된 프로그램들을 교육하고 있다. 연기예술이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균형 있게 사용하는 매우 실용적 방법임을 확인하며, 모두를 위한 연기예술 프로그램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