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배우 박해일을 정서적으로 힘들게 했던 영화 '은교'

배우 박해일이 한 영화를 촬영하던 중 극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여 모든 촬영이 전면 중단되었던 과거 일화가 눈길을 끈다. 문제의 작품은 지난 2012년 개봉한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다.

당시 정지우 감독이 파격적인 설정의 중심에 선 70대 노시인 이적요 역으로 박해일을 낙점한 첫 번째 이유는 ‘호감’이었다. 파격적인 스토리 특성상 관객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을 신뢰감을 가진 배우가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인터뷰에서 "뭘 해도 호감이 가는 배우는 아무나 될 수 없다"며 박해일이 힘든 시기를 버텨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 실제 촬영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다. 박해일은 한겨울 추위 속에서 격일로 평균 8시간이 넘는 가혹한 특수분장을 견뎌내며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육체적 압박도 상당했지만, 진짜 위기는 캐릭터의 내면이 배우를 잠식해 들어가면서 찾아왔다. 노시인의 깊은 고독과 절망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시종일관 침전하는 캐릭터의 우울함이 실제 배우의 내면과 겹쳐진 것이다.

영화가 캐릭터에게 주는 상처들이 해소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박해일은 실제로도 위태로운 우울증 증세를 겪게 되었다. 촬영 중후반, 배우의 심각한 상태를 감지한 정지우 감독은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제작비와 스케줄이 실시간으로 압박해오는 상업영화 현장임에도 "배우의 건강이 최우선"이라며 촬영을 전면 중단하고 열흘간의 휴식을 준 것이다. 정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감독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게 그 정도라 새삼 미안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과감한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인간 박해일'로 돌아가 재정비 시간을 가진 그는 감정을 추스르고 건강하게 복귀했다.
비록 과정은 아프고 위태로웠지만, 주연 배우들은 인터뷰에서 "정지우 감독만 믿었다"며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감독은 박해일과 함께해 행복했고 미안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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