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할리우드 담았는데 흥행 참패한 영화, 왜?

조회수 2023. 2. 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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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빌론> ⓒ 롯데엔터테인먼트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715] <바빌론> (Babylon, 2022)

글 : 양미르 에디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바빌론>은 공개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력한 다관왕 후보 및 수상작으로 손꼽히던 작품이었다.

할리우드의 역사를 담아냈다는 점 자체로, '아카데미 회원'들로부터 가산점을 얻을 만한 작품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비평의 날선 반응(로튼 토마토 비평가 지수 56%/이하 통계 2/6 기준)은 아카데미 후보 지명과 영화 제작자들이 더 중요하게 여길 '흥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약 8,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바빌론>은 그보다도 못한 약 5,0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뒀고, 아카데미에서도 음악상, 미술상, 의상상 등 '메인 분야'의 후보 진입에 실패하고 말았다.

29살의 나이에 <라라랜드>(2016년)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기가 꺾이는 일처럼 들리겠지만, <바빌론>은 여전히 꺾이지 않는 감독의 작가 정신이 함유된 영화다.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도시이면서, <성경>에서는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했던 도시로 묘사된 '바빌론'에서 따온 작품답게, 영화는 처음부터 100여 년 전인 1920년대에 '오지'(영어사전에서는 '진탕 먹고 마시며 난잡하게 노는 잔치'를 의미한다)를 하는 '할리우드' 사람들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흥청망청에 가까운 시퀀스들이 30분이 지나서야, 영화는 '로고'를 보여주면서 본격적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는 큰 줄기로 3명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전개한다.

무성 영화의 시기, 찬란한 전성기를 누리는 당대 최고의 스타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영화인들의 '오지' 파티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스크린 데뷔의 기회를 얻은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그리고 '잭'을 통해 꿈꾸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하게 된 청년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가 있다.

큰 줄기 옆에는 서브 캐릭터들도 있기 마련인데, 할리우드의 가십을 만들어내는 칼럼니스트 '엘리노어 세인트 존'(진 스마트), 더 넓은 무대를 원하는 흑인 트럼펫 연주자 '시드니 팔머'(조반 아데포), 그리고 독특한 매력의 가수 '레이디 페이 주'(리 준 리) 등이 등장한다.

<바빌론>은 그간 주인공의 서사에 집중하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처음 연출한 '군상극'이다.

장편 데뷔작 <위플래쉬>(2014년)가 신입생과 교수의 치열한 대결에 집중했고, <라라랜드>도 꿈과 사랑 사이에서 결정해야하는 남녀의 이야기에 집중했으며, <퍼스트맨>(2018년) 역시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의 시각에서 본 달 착륙의 과정에 집중했다.

그간 절친인 저스틴 허위츠 음악 감독의 수려한 스코어 제작 실력(<바빌론>의 일부 스코어는 <라라랜드>의 스코어와 유사한 리듬을 보인다)과 뛰어난 편집술로 마법과 같은 순간을 연출했던 그는 6명 이상의 다양한 인물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바빌론>은 필연적으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연출한 작품 중 가장 긴 상영 시간인 '3시간 9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감독 본인이 열렬히 사랑하고, 동시에 저주한 할리우드를 이야기한다.

단적인 예로, <바빌론>은 인간의 신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온갖 액체를 흘려내는데, 여기서 나오는 '더러움'을 할리우드에 비유한다.

'오지' 파티의 서프라이즈로 사용되는 코끼리가 뿜어내는 배설물부터, 파티에서 공연가가 뿜어내는 정액이나, 오줌 패티시를 즐기는 중년 남성, 쾌락의 대가로 죽거나, 다치는 순간에 흘리는 피가 그러했다.

물론, 축제 이후 '넬리'가 큰 배역을 따내기 위해 자유자재로 흘리는 눈물, 더운 실내 촬영 환경에서 흘리는 땀처럼 '할리우드'의 영광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의 노고 역시 비유됐다.

이어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1920년대 '흑백 무성영화'의 시대에서 '컬러 유성영화'의 시대로 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변화는 '직설적'으로 그려냈다.

감독이 사랑했을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1952년)에도 나왔던 대목이지만, 유성영화가 대세인 시대에서 무성영화 스타 중 목소리가 좋지 않았던 배우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으나, 그런데도 '할리우드'는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청소년 관람불가'에 어울리는 장면들이 격하게 들어 있기 때문에, 혹은 인물 군상의 삶이 담긴 당시의 영화판이 큰 배경 설명 없이 지나가고, 인물의 삶 역시 중구난방으로 들어 있기 때문에 비평가의 선택, 혹은 관객의 선택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위플래쉬>, <라라랜드>가 그런 것처럼 '클라이막스'에 집중한 감독의 성향이 이번에도 발휘됐는데, 그간 주인공 캐릭터와 관련된 결말을 보여줬던 그가, 주인공이 아닌 '영화 자체'에 바치는 헌사로 이어지는 결말을 꾸몄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네마 천국>(1988년)처럼 자신과 관련된 이미지에서 나오는 카타르시스가 아닌, 이후 영화계의 변천사(다양한 영화들이 흘러나오지만, 흥미롭게도 2010년대 할리우드의 한 축이었던 '슈퍼 히어로' 영화는 없었다)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연출은 자의식 과잉처럼 보였던 것.

물론, 이런 <바빌론>마저도 사랑할 이들은 영화를 사랑하는 팬 밖에는 없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사랑과 증오를 빽빽하게 담아낸, 어쩌면 자신이 두 번 다시 못 할 것 같으니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펼치고 싶었던 데이미언 셔젤의 고백이 <바빌론>에서는 진심 어리게 느껴졌다.

그 진심을 표현하는 방식에선 호불호가 갈릴지라도.

2023/01/26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바빌론
감독
데미안 셔젤
출연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디에고 칼바, 진 스마트, 조반 아데포, 리 준 리, 토비 맥과이어, 올리비아 와일드, 사마라 위빙, 캐서린 워터스톤, 에단 서플리, 에릭 로버츠, 맥스 밍겔라, 포이베 톤킨, 루카스 하스, 제니퍼 그랜트, 스파이크 존즈, 패트릭 후짓, P.J. 바이른, 루이스 탄, 사라 라모스, 플리, 제프 갈린, 클로이 파인먼, 프레드릭 콜러, 카롤리나 스짐차크, 토드 기에벤하인
평점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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