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관세 장벽에 막힌 EV6 GT, 미국 시장서 판매 보류
기아가 2026년형 EV6 GT의 미국 판매를 무기한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공식 발표는 지난 3월 초에 이루어졌으며, 기아 측은 "한국산 차량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정적 요인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EV6 GT에는 약 15% 수준의 수입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기아는 이번 결정이 '단종'이 아닌 시장 상황이 개선될 경우 판매를 재개할 수 있는 '추후 공지 시까지의 보류' 임을 분명히 했다.

◆ 65,000달러짜리 차에 관세까지… 가격 경쟁력 '제로'

2025년형 EV6 GT의 미국 판매가는 이미 65,275달러(약 9,500만 원)였다. 여기에 관세 부담까지 반영될 경우, 소비자 가격은 경쟁 차량 대비 현저히 높아져 판매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기아는 지난 수개월 동안 관세 부담을 내부적으로 흡수해 왔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공식 인정했다. 더욱이 EV6 GT는 한국 공장에서 생산되어 연방 세액공제(최대 7,500달러)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어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가격 혜택이 전무하다. 반면 조지아 현지 생산 트림인 EV6 일반 라인업은 동일한 세액공제 혜택을 유지하고 있어, GT 트림과의 가격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구조다.

◆ 641마력의 고성능 전기차, 어떤 차였나

EV6 GT는 기아 라인업 중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전기차다. 2025년형 기준으로 정격 최고출력 608마력(447kW), 부스트 모드 시 최대 650마력(478kW)의 사륜구동 파워트레인을 탑재했으며, 최대토크는 75.4kg·m(740Nm)다. 제로백(0~100km/h)은 약 3.5초, 최고속도는 시속 260km에 달한다. 차체 중량이 약 2,200kg에 달하는 고중량 패밀리 전기차임에도 이 같은 퍼포먼스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 조지아 생산 트림은 계속 판매

판매 보류는 EV6 GT에만 해당된다. 기아는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공장에서 EV6 일반 트림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들 모델은 미국 수입 관세를 피할 수 있어 딜러망을 통한 정상 판매가 유지된다. 현지 생산 모델은 연방 세액공제 혜택도 적용받을 수 있어 GT 트림과의 가격 역전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기아는 EV6 외에도 EV9 등 현지 생산 전기차 판매는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 기아 전기차 판매 통계가 보여주는 불균형

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 실적은 극심한 부진을 드러내고 있다. 2026년 1월 기준으로 EV6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65% 폭락한 540대에 그쳤으며, EV9 역시 45.3% 감소한 674대 판매에 머물렀다. 반면 기아 전체 판매는 같은 기간 13% 증가하는 등, 하이브리드를 중심으로 한 전동화 모델이 선전하면서 브랜드 전체 실적을 방어하고 있다. 전기차만 놓고 보면 시장 수요 약화와 관세 압박이 겹치며 이중고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 EV4·EV3도 미국 출시 연기… 전선 확대
EV6 GT의 판매 보류는 기아의 미국 전기차 전략 전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아는 이미 2025년 10월, 약 3,000만 원대 가격으로 주목받았던 소형 전기 세단 EV4의 미국 출시를 '추후 공지 시까지'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관세 리스크뿐 아니라 전반적인 EV 수요 둔화, 수익성 악화 등 복합적인 시장·재무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소형 전기 SUV인 EV3의 미국 진출 역시 사실상 불투명한 상황이며, 한국 생산 모델에 불리한 관세 환경이 지속되는 한 이 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 현대차도 같은 처지… 아이오닉 6는 단종, N은 유지

모회사인 현대차 역시 유사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현대차는 2026년형 아이오닉 6의 미국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오닉 6는 세계 올해의 차를 수상한 모델임에도 2025년 미국 내 판매 대수가 1만 478대로 15% 감소했고, 2026년 들어서는 1월에만 573대 판매에 그치며 사실상 시장에서 외면받는 상황이 됐다. 반면 고성능 버전인 아이오닉 6 N은 미국 판매를 유지하기로 했다. 고성능 모델일수록 높은 가격 프리미엄을 통해 관세 부담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 한국 시장 출시 전망은?

EV6 GT는 현재 한국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지 않다. 기아는 2026년 초 한국 시장에서 EV6 전 트림의 가격을 300만 원 인하하며 시장 방어에 나섰으나, 고성능 GT 트림의 국내 출시 계획은 공식화된 바 없다. 기아가 미국에서 EV6 GT 판매를 재개하거나 생산 구조를 현지화할 경우, 한국 시장에서도 GT 라인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동반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향방이 불확실한 현 상황에서, EV6 GT의 한국 정식 출시 시점을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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